어느 이등병二等兵의 묘비墓碑

 

정진권

 

우리 동네에 야트막한 산이 하나 있다. 이 산에 들어서서 한 30분 걸으면 현충원(동작동 국립묘지) 후문에 이른다. 길은 비교적 평탄하고 후문은 늘 열려 있다. 현충원 안은 사방으로 난 아스팔트길이 어디나 깨끗하다. 나는 한 주일에 두어 번 아내와 함께 한 시간쯤 이 길을 걷다 돌아온다. 걷는 사람은 우리 말고도 많다.

걷노라면 띄엄띄엄 쉼터(나무 의자)가 나타난다. 우리는 이따금 거기 앉아 저 아래를 내려다본다. 하얀 묘비들이 줄지어 서 있다. 잠시 눈을 감았다 뜨면 저만치 한강이 길게 흐른다. 푸른 한강, 더러는 그 위에 흰 구름이 날기도 한다. 어느 날 우리는 천천히 내려가 그 묘역을 돌아보았다. 그때였다. 육군 二등병의 묘비 하나가 내 눈에 확 들어왔다. 뒷면엔 ‘一九五○년八월十一일 의성지구에서 전사’. 전쟁이 일어난 지 겨우 한 달 보름 만이다. 나는 발길을 옮기다 뒤돌아보았다.

푸른 잔디, 하얀 묘비─. 청순한 열아홉이 싱긋 웃으며 그 옆에 서 있다. 해맑은 얼굴에 까만 두 눈이 서글서글하다. 대학 1학년─. 무슨 과일까? 아니, 그런 건 상관없다. 다음은 강의실, 많은 학생들 속에 그가 보인다. 노트에 열중하는 그의 얼굴이 퍽도 진지하다. 이번엔 그 위에 푸른 숲 우거진 캠퍼스가 겹쳐 온다. 그는 지금 새로 사귄 여학생과 나란히 걷고 있다. 녹음 속이다. 정다운 모습이다.

학문과 예술의 드넓은 바다는 그에게 늘 경이로웠을 것이다. 새롭게 펼쳐지는 지식 앞에 경탄도 하며, 비범非凡한 운율韻律이 혈관을 타고 들어올 땐 전율도 하며, 그는 그 경이로움 속에 하루하루가 행복했을 것이다. 그리고 하나 더 행복한 것은 밤하늘의 별들을 우러르며 몰래 그리움에 잠길 때─. 그때 함께 걷던 그 아이가 잔잔히 웃으며 다가왔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그곳을 떠나야 했다. 전쟁이 일어난 것이다. 그날, 학교는 떠나는 학생들과 보내는 학부모들로 입추의 여지가 없었다. 드디어 그가 탄 트럭이 움직일 때 어머니는 흰 앞치마로 눈언저리를 훔치며 한 손을 흔들었다. 그도 말없이 한 손을 흔들었다. 무사해야 한다, 탈 없이 계셔요, 그 간절한 기원─.  

나는 전쟁이 끝난 뒤에 군엘 갔다. 유월 염천의 논산 훈련소, 땀에 전 군복은 소금가루가 허옇고 배는 늘 허기가 졌다. 훈련은 힘들었다. 포복, 총검술, 행군, 또 무엇─. 기고 찌르고 그러다보면 대망의 10분간 휴식, 연병장 가에 어린 코스모스들이 하늘거리고 있었다. 거기 손수건을 널면 얼굴 하나 가릴 만한 그늘이 땅에 졌다. 나는 그 그늘에 철모를 베고 누워 화랑담배 한 대를 피웠다. 후욱 연기를 뿜으면 그리움의 무한차곡선無限次曲線, 그 파르스름히 피어오르는 연기 위로 그리운 얼굴들이 명멸했다.

우리의 주인공도 물론 불볕 아래 고된 훈련을 받았을 것이다. 군복은 땀에 절고 배는 늘 고팠을 것이다. 그도 철모를 베고 누워 화랑 한 대는 피웠을까? 아니, 촌각을 다투는 급박한 상황, 그리운 얼굴들을 그리워할 겨를도 없이 어느 날 급히 군용트럭에 올랐을 것이다. M1 소총도 아직 손에 설었을 것이다. 낯선 산야, 전선이 가까워지면서 포성은 점점 크게 울렸을 것이다. 얼마나 불안했을까?

전쟁은 치열했다. 불볕 하늘, 총알들이 쉭쉭 머리 위를 날았다. 참호 앞에도 날아와 퍽퍽 꽂혔다. 그럴 때마다 흙먼지가 풀썩 일었다. 우리의 주인공은 정신없이 방아쇠를 당겼다. 그러노라면 어느덧 밤, 칠흑 같은 정적에 숨이 막혔다. 그때 갑자기 따따따 총성이 울렸다. 밤하늘에 펑펑 조명탄이 터졌다. 저 만치선 포탄이 쉼 없이 작렬하고-. 굉음이 천지를 쪼개는 듯했다. 삶과 죽음의 갈림길─.

나는 눈을 감았다. 정신 차리라고 외치는 젊은 소대장의 품에 그가 안겨 있다. 총성은 콩 튀듯 끊임없고 포연은 여전히 자욱하다. 가슴에서 솟는 붉은 피가 그의 푸른 군복을 흥건히 적신다. 다음 순간, “어머니─.” 들릴 듯 말 듯 이 한 마디를 남기고 그는 고개를 떨어뜨린다. 흰 앞치마로 눈물 닦으며 한 손 흔들던 그 어머니, 젊은 소대장이 그를 누이고 다시 총을 잡는다. 탄피가 분노처럼 마구 튄다. 하늘은 무심한 듯 그저 푸르기만 하고─.

전쟁은 불리하게만 전개되었다. 국군은 후퇴를 거듭해야 했다. 지금 한 어머니가 길에 나가 그 후퇴하는 군인들을 살핀다. 총을 아무렇게나 메고 다리를 절며 가는 군인들이 수두룩하다. 부상당한 전우를 부축하고 가는 군인들도 수가 없다. 다들 지쳐 있다. 그런데 그 어머니의 아들은 보이지 않는다. 아무리 눈을 비비고 보아도 아들은 거기 없다.

우리는 묘역을 조금 더 돌다 올라와 아까 그 쉼터에 다시 앉았다. 그 동안 우리 이등병의 어머니는 얼마나 애를 태우며 그 어린 아들을 기다렸을까? 갑자기 전사통지서戰死通知書를 받았을 땐 내가 대신 죽겠다며 기절도 했을 것이다. 저 묘비 앞에 와 앉아서는 또 얼마나 한 맺힌 눈물을 뿌렸을까?

제 명대로 살다 가도 죽음은 슬픈 것이다. 하물며 열아홉의 그 청청한 나이이었음에랴. 이제 그 어머니는 이승의 한 맺힌 삶을 떠나 그 아들 곁에 가 있을 것이다. 생전에 옷깃 한 번 스친 일 없는, 내 친애하는 선배 저 二등병의 어머니, 이제는 다 잊으시고 아드님과 함께 명복을 누리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