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녀 수행

 

박영자

 

딸아이가 교수를 만나기 위해 러시아로 떠나기로 하였다. 관광이 아닌 개인적인 일로 떠나는 길이라 여러 면으로 부담이 가는 일인데 딸은 제 딸과 함께 떠나고 싶어 했다. 어린 것이 벌써 해외 나들이냐고 남편은 말렸으나 딸은 자식을 잘 키우려면 여행을 보내라는 말이 있다며, 돈이 들더라도 여행에서 본 추억을 초등학교입학 전 꼭 보여주고 싶다는 것이다. 아이 괄시는 하는 것이 아니라는 할머니의 말씀이 생각나 나는 아무 말을 하지 않고 있다가 그렇다면 나도 동행을 하겠다며 나섰다.

세 사람의 경비도 부담스러운 일이었지만, 소련은 이념이 다른 우리와 단절되었던 나라가 아니었든가. 공항에서부터 검시관의 까다로운 절차가 있다는 것, 출국 전 머물게 되는 주소와 입국 후엔 관할 경찰서에 거주자 확인서를 제출해야한다는 것 등은 떠나기 전부터 긴장감을 주는 일이었다. 호텔이 아닌 원불교 교단에서 아침과 저녁만 해결하기로 하여 짐을 챙기는 일은 관광과는 다른 준비였다. 이것저것 챙겨 놓은 물건이 옷보다 음식물이 더 많다. 비닐에 싸고 보자기에 싸는 데 까다로운 공항심사라는 말이 생각나 싸고 풀기를 반복하다 음식물은 꺼내놓고 선물용 인삼차와 두툼한 겨울옷만 챙겨 현관에 내 놓으니 실속 없이 가방만 크다.

아홉 시간을 타고 내린 모스크바 공항은 어둡고 스산했다. 하지만 회색빛 긴 대리석 기둥은 부강했던 역사의 흔적을 말없이 보여주고 있었다. 지은 죄도 없는데 긴 입국심사대기 줄에 서서 기다리려니 공연히 두려움이 앞선다. 한 손은 여권을 들고 또 한손은 손녀의 손을 잡고 섰는데 헌칠한 키에 60년대 영화배우 록허드슨을 닮음직한 직원 한 사람이 성큼 성큼 다가와 앞서 나가라고 정중하게 두 손을 옆으로 모아 대각선으로 앞줄을 가리키는 것이다.

끝줄에서 앞줄로 나선 딸과 손녀가 심사관 앞에서고 나는 노란 선에 지켜 서서 몸집이 큰 검시관을 두려운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투시라도 하려는 듯 안경을 벗어라 모자를 벗어라 지문을 찍으라고 딸아이에게 요구를 했다. 그 모습을 보던 손녀가 호기심에 발끝을 들고 폴짝 뛰었다. 그는 방금 전의 엄격했던 표정과는 다르게 헤식게 웃으며 몇 살이냐고 묻는 것 같더니 기분 좋게 여권에 도장을 쾅 찍어 주는 것이 아닌가.

사마천은 어려서부터 여행을 함으로 회강의 파도를 보았고 전지의 회고를 봄으로써 자기 문장으로 옮겼다고 한다. 먼 훗날 러시아를 방문했던 손녀의 기억 속에는 어떤 추억이 남게 될까.

계단을 내려와 짐을 찾고 다시 검사를 받기 위해 줄을 섰다. 앞사람의 가방은 이 잡듯이 털어보고 쏟아 보는데 우리를 본 직원이 어서 나가라고 출구까지 알려주는 것이다. 이럴 줄 알았다면 김치와 고추장은 가져 왔어야 했다는 후회가 따랐다.

마중 나온 박사장에게 선입견과 다르게 이곳 사람들이 친절하다고 하였더니 “아이 덕을 톡톡히 보신 것입니다. 이곳은 노인보다 어린이를 우선으로 생각하는 나라입니다. 아이와 함께 올 때는 줄을 서지 말고 맨 앞자리에 서십시오.” 하는 것이다. 아이는 어른의 아버지라는 말의 진정한 의미를 알듯 한 나라였다.  

원불교에서 묵는 일이 불교와 기독교라는 종교적 이질감에 불편하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앞섰으나 그것은 부질없는 기우였다. 교무님은 식사 때면 잘 먹겠습니다라는 말 한마디뿐 신앙적인 이야기는 의식적으로 피하는 것 같았다. 일주일이 지났지만, 교리에 관한 이야기를 한 번도 내게 말하지 않은 것은 긴장감을 풀어주는 자유로움이었다.

묵고 있는 방에서 식당을 가려면 24개의 계단을 오르고 내려가야 하는데 법당을 지나가면 바로 식당에 닿을 수 있는 건물구조다. 내가 조심성 있게 손녀의 손을 잡고 한 계단 씩 오르고 내리는 것을 본 교무님은 편하게 지내라며 법당을 가로 질러 가도 무방하다고 일러 주는 것이다. 부처님은 아이들을 우선으로 하기 때문에 아이가 원하는 것은 예의를 차리지 않아도 괜찮다는 말이었다. 그날은 저녁을 먹기 위해 정해진 시간보다 5분 일찍 도착하였다. 컴퓨터를 하고 있던 교무님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손녀를 덥석 안아 무릎에 앉혔다. 손녀가 마음이 편했던지 교무님이 묻는 말에 동문서답이다. 그 모습을 바라보며 나는 교무님이 성직자가 아닌 인자한 한 어머니의 모습으로 보였다.  

오늘은 딸이 가는 학교를 방문하는 날이다. 딸은 교수실에 들어가고 나는 손녀와 함께 아래층 로비에 앉아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혜진아” 하는 우리말이 러시아 말 속에 또렷이 들렸다. 앞서 가려는 딸을 부르며 로비로 들어서는 낯익은 한국 엄마였다. 자식에게 쏟는 한국 어머니의 교육열은 이곳이라고 해서예외는 아니다. 예능학교에 입학한지 일 년이 되었고 굳이 모스크바로 유학 온 것은 기초를 중요시하는 교육 때문이라고 한다. 특히 예능은 학년이 낮을수록 이름 있는 선생님이 맡아서 지도해 준다는 것이다. 공부를 잘하는 학생은 돈 한 푼 내지 않을뿐더러 용돈까지 받으며 공부를 할 수 있고 각자의 등록금은 성적 순위에 따라 지급된다고 하니 어느 나라이든 아이들이 받는 스트레스가 쉽지 않음을 말해준다.

모스크바에서 맞는 초여름의 아침은 쾌적하고 싸늘하다. 스웨터를 걸치고 손녀와 함께 붉은 광장을 가기위해 나섰다. 출근 시간을 빗겨 나왔는데도 사람들의 발걸음이 어찌나 빠르고 힘찬지 전쟁터를 나가는 무사 같다고나할까? 보폭이 큰데다 힘찬 발걸음은 종종걸음으로 달려가는데도 앞사람을 따를 수가 없었다. 군중 속에 나들이가 바쁠 것도 없는데 아이를 재촉하며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게 군중을 따라가고 있는 나를 깨닫고 멈춰서니 써놓은 알파벳이 눈을 떠도 감고 있는 형국이다. 한 젊은 청년에게 서툰 영어로 크래 물린 광장을 물으니 턱을 왼쪽방향으로 가리키며 무표정하다. 몇 걸음을 가다가 뒤 돌아보니 청년은 연민의 정으로 우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지하철에서 마지막 계단을 내려서려는데 지하철 문이 열려 있었다. 서둘러 타려는 우리에게 한 청년이 앞을 막으며 위험하니 타지 말라는 몸짓을 하였다. 그의 표정을 보는 순간 지하철 문이 순식간에 닫히는 것이 아닌가. 2분마다 연이어 도착하는 지하철은 차체도 육중하지만 닫히고 열리는 소리만으로도 위압감을 주었다. 타고 내리는 사람들의 동작도 빨라 상식 없이 지하철을 타는 것은 위험한 일이다.

사람들에 밀려 마침 선 자리가 노인 석 앞이었다. 70은 돼 보이는 노인이 우리를 보자 자리에서 일어나며 손녀에게 앉으라고 손짓을 하였다. 앉지 않겠다는 손녀를 굳이 앉히려고 애를 쓰는 노인이 고마워 내가 그렇게 하라고 하였지만, 노인 석에는 앉는 것이 아니라고 가르쳤던 때문인지 손녀는 웃기만하고 서 있었다. 그것이 사양인 줄 모르는 노인은 그렇다면 아이를 안고 내가 앉으라며 굳이 안치려고 한다. 그 노인에게서는 나라간의 상반된 이념이나 문화적 이질감과는 무관하다.

손녀는 러시아의 기억은 아랑곳없고 붉은 광장에서 사온 마트로슈카(크고 작은 인형이 층층이 들어 있는 마스코트)를 층층이 꺼내놓고 무어라 종알대며 놀고 있다. 노는 손녀 곁에 앉아 걸핏하면 러시아를 떠올려 본다. 사상과 이념, 전쟁과 평화, 아이 곁에선 모든 것이 하찮아 보이고 그저 평화롭기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