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노드라마 & 관객

 

한경화

 

소리가 나지 않는 곳은 없을까. 소음을 견디지 못하겠다. 집 전화벨, 휴대전화벨, 인터폰소리, 작지만 내 귀를 파고드는 소리들. 마음이 편하지 않을 때는 그 소리가 증폭된다. 이럴 때는 청각이 닫히고 시각만 열렸으면.   

 

언제부터인지 친정어머니의 귀에 이상이 생겼다. 당뇨로 인한 후유증으로 알았는데, 병원에서는 노령이 원인이라고 한다. 외모는 나의 큰언니 정도로 젊어 보이지만, 귀가 들리지 않으니 영락없는 노인네다. 내 어머니가, 나보다 더 건강했던 어머니에게 청각장애가 오다니, 나이가 든다는 것이 두려움으로 다가온다.

어머니는 당뇨치료를 위해 3개월마다 부산에서 서울로 오신다.보청기를 착용하는 어머니는 그것을 자주 사용하면 청력이 더 나빠진다고 끼지 않을 때가 종종 있다. 그로 인해 주변 사람이 느끼는 불편은 안중에도 없는지 이번에도 보청기를 집에 두고 오셨다.

우리 집에서 어머니는 수험생인 아이가 있는데도 TV 볼륨을 높이고, 본인의 목소리도 크게 낸다. 다른 사람의 말이 잘 들리지 않아 혼자 끊임없이 이야기하는 것이 모노드라마를 보는 것 같다. 나는 관객이 되어, 보고 듣기만 한다. 아이들도 할머니와의 대화가 순조롭지 않으니 ‘수화’를 배우자는 농담까지 한다.

부산사람에 비해 서울사람은 목소리가 작아 듣기 힘들다고 푸념하고, 담당의사도 작은 소리로 말해 상담받기가 불편하다고 한다. 보청기를 가지고 왔으면 될 것을 괜한 남 탓만 하니 안쓰럽기까지 하다.

그런 내 마음과는 달리 어머니는 긍정적이다. 눈이 보이지 않는 것보다는 낫다고, 듣기 싫은 말은 듣지 않아도 되고, 골라서 듣고 대답하는 장점도 있다고. 아버지가 싫은 소리하면 들리지 않는 척하고, 전화를 받기 싫을 때는 받지 않아도 사람들이 이해한다고 한다.

무수한 소음에 시달려 스트레스 받는 것보다는 오히려 마음이 편할 수도 있지만,  잘 들리던 예전의 어머니 모습이 그립다. 잘 들려서 서로 의견 충돌도 할 때가. 이제는 그럴 일이 거의 없다.

귀는 공간감각과도 관련 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어머니는 가끔 길을 잃기도 하고 넘어질 때도 있다. 사우나와 쇼핑을 즐기는 어머니인데….

들린다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어머니를 통해서 알게 되었다. 갖가지 소음은 외부세계와의 소통을 의미하고 자신을 표현할 수 있게 만들어 준다. 시각과 청각을 함께 상실한 사람은 무엇보다도 듣지 못하는데 더 큰 고통을 느낀다고 한다. 헬렌 켈러는 그 절절함을 이렇게 표현했다.

나는 눈이 안 보일 뿐 아니라 귀도 안 들린다. (……) 귀가 들리지 않는 것이 훨씬 더 지독한 불행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가장 필수적인 자극, 즉 언어를 이끌어내고 생각을 불러일으켜 우리를 지적인 인간 집단 속에 있게 해주는 목소리의 상실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 만약 다시 살 수 있다면 나는 귀가 들리지 않는 이들을 위해 내가 해온 일보다 더 많은 일을 할 것이다. 나는 귀가 들리지 않는 것이 눈이 안 보이는 것보다 훨씬 더 큰 장애임을 발견했다.

일상이 피곤하다고 가끔은 들리지 않았으면 했던 내 자신이 부끄럽다. 어머니도 처음에는 자신의 현실을 받아들이기가 쉽지는 않았을 것이다. 본인은 자신의 장애를 극복했는데 자식이 받아들이지 못해 불만을 나타냈으니 죄송할 따름이다. 이제는 어머니의 모노드라마에 보고 듣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호흡하는 관객이 되고 싶다.

 

부엌에서 음식을 하는 어머니의 뒷모습이 낯설다.

외부세계와 차단된 듯 외로운 어깨다.

 

 

《현대수필》 등단. 《현대수필》 편집위원.

수필집  《내가 나인 이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