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전여전 모전여전

 

강영선

 

 

버스와 지하철을 번갈아 타야하는 등교 길 때문에 딸아이는 일찌감치 집을 나서곤 한다. 신발 끈을 매려다 생각난 듯 오늘은 신입생 환영회가 있어서 늦을 것 같다고 했다. 요즘 신입생 환영회를 생각하면 걱정이 앞선다. 폭탄주라 이름붙인 술을 반 강제로 마시게 해서 인명사고까지 났던 일 때문에 더 그렇다. 아이의 등을 바라보며, 선배가 권한다고 다 마셔야하는 건 아니니까 눈치껏 둘러대라고 몇 번씩 당부했다. 종일 신경이 쓰였지만 대신 해줄 수 있는 일도 아니기에 국거리라도 장만할까하고 장바구니를 들고 시장으로 향했다.

 

동네 어귀에 재래시장이 있다. 대형마트에 진열된 상품을 카트에 담아 신용카드로 계산하는 것도 편리하지만 시장에 오면 한 줌 더 주는 정이 있고 애교 섞인 에누리가 있어 정겹다. 장바구니와 지갑을 들고 편안한 차림으로 올 수 있는 것도 좋다. 꽃게가 제철인지 광주리 가득 살아서 꿈틀대는 생선가게 앞을 지나다 물속에서 까맣게 반들거리는 것이 내 발목을 잡는다. 재첩이다!

“재칫국 사이소오~”

40여 년 전 부산 대신동에는 재첩국 파는 아지매가 다녔다. 밤새 끓인 재첩국 양동이를 이고 다니며 외치는 소리는, 새벽어둠을 걷어내고 집집마다 아침을 알렸다. 나는 잠결에 그 소리를 노래처럼 듣다가 지나가고 나면 다시 새로운 꿈을 꾸곤 했다. 그러다 아버지가 약주를 든 다음 날 아침이면 골목을 돌아나가는 재칫국 아지매를 놓칠세라 세수도 않고 빈 냄비를 들고 뛰어나가던 기억이 난다.

친정아버지는 술을 좋아하셨다. 술만큼 재첩국도 좋아하셨던 것 같다. 재첩 알갱이가 동동 떠다니는 국을 양은냄비에다 다시 한 번 팔팔 끓여 정구지(부추)를 썰어 넣어 드리면 “으~ 시원하다”며 밥보다 국을 더 많이 들던 아버지. 해장국이 시원하다는 것은 아버지 나이가 되서야 알았다. 나 역시 술 한 잔하며 대화하는 분위기를 좋아하다보니 문우들과 어울려 한 잔씩 할 때도 있다. 마실 때는 분위기에 취해 모르지만 다음날 새벽이면 영락없이 위통으로 고생한다. 웅크리고 있는 모습이 보기 싫은지 남편은 잔소리를 하면서도 국을 끓여 슬며시 들이민다. 자주 위염을 앓다보니 이럴 때는 대접을 받기도 한다. 뜨거운 해장국은 위벽을 다독거리며 편안하게 감싸준다. 시원하다. 하긴 어린 나이에 몰랐던 일이 어찌 시원하다는 말의 의미뿐이랴. 차가운 바람도 때로 뜨겁다는 것을 이제는 안다.

몇 년 전 부산에 갈 기회가 있었다. 처음 타본 KTX도 새로웠지만 몇 십 년 만에 내린 부산역은 어릴 적 기억과는 사뭇 달랐다. 역 앞 광장에서 두리번거리고 있는데 건물사이로 용두산 공원의 높다란 탑이 보였다. 예닐곱 살 무렵 아버지 손잡고 갔던 곳이다. 아슴아슴한 기억에 묶여 서있는데 오래전부터 불어왔을 바람 한 자락이 볼을 스쳤다. 비릿한 바람에선 친근한 냄새가 났다. 순간 목젖이 아릿하며 눈앞이 뿌예졌다. 고향의 바람은 차가와도 뜨거운 모양이다.

40여 년이 지난 지금도, 전차종점이 있던 대신동 부근엔 새벽이면 재첩국을 팔러 다닐까. 공설운동장이며 동아대 숲을 뛰어다니며 놀던 그 시절을 떠올리면 “재칫국 사이소오~”하는 가락이 배경음악처럼 흐른다. 이제는 어디에도 없는 아버지. 냄비를 들고 뛰어나가 사오던 그 재칫국 대신, 오늘 나는 시장에서 재첩을 사다 아버지의 외손녀를 위해 재첩국을 끓인다.

 

거의 밤 열두시가 되어서야 돌아온 딸아이는 의외로 씩씩했다. 왜 이리 늦었냐고 다그치자 하는 말이, 같은 과 남학생 한 명이 술에 취해서 그 친구를 집까지 바래다주고 왔다고 한다. 그러면서 신입생들은 다 비슷하게 마셨는데 왜 자기는 멀쩡한 지 묻는다. 은근히 웃음이 났다. 엄마 딸이니까 그런 거지라고 하고 싶었지만 꾹 참았다. 친정아버지가 오늘 일을 보셨다면 부전여전, 모전여전이라 했을까?

 

 

《계가수필》 등단(2007년).

[토방] 동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