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상

 

김솔립

 

 

『단원풍속도첩檀園風俗圖帖』을 넘기다 보니 초라한 부부가 막 행상을 떠나려는 듯한 그림 한 폭이 눈에 띈다. 배경도 없이 간결한 수묵의 선으로만 묘사한 평범한 일상! 조선 후기의 풍속화가 단원檀園이 그린 「행상行商」도이다.

이립而立에 이르렀을 남편은 밧줄로 묶은 곡물 함지를 지게에 지고, 작대기는 그 무게를 줄이려는 듯 가슴으로 가로 질러 간신히 버티고 서 있다. 갈 길이 바쁠 터인데도 아내의 등에 업혀 잠든 아기에게서 눈길을 떼지 못한다.

처네도 마련 못한 까닭인가? 아내는 윗저고리 속에 아기를 넣어 업었다. 등 뒤에 업힌 아기가 불거져 나와 마치 곱추 같은 모습이다. 남편이 서툰 솜씨로 엮어주었을 대광주리에 짐을 담아 이고 있는 여인은 버거운 무게 때문에 목울대가 기울어져 고개를 제대로 가누지도 못하고 있다.

한 사람 감량感量의 옷깃에 엄마와 아기가 함께 들어간 탓에 저고리 깃 위로 여인네의 뒷목이 요량 없이 드러났다. 목선 위에는 여인의 고단한 삶이 고스란히 묻어 나오고 있다. 차라리 앞깃이 풀어졌다면 여인네의 훈훈한 젖가슴 내음이라도 배어나련만 진솔한 화백은 어미의 고단함을 놓치지 않았다.  

단원과 쌍벽을 이루었던 혜원蕙園은 양반이나 기생을 등장시켜 도시적인 낭만과 남녀 간의 애정을 신명나게 그려내고 있다. 수려한 경관을 배경으로 다홍의 치맛자락 나부끼며 그네 뛰는 여인의 유희적 낭만은 화려하고도 멋스럽다. 선명하고 고운 색채와 섬세한 필체로 그린 「연소답청年少踏靑」속, 윤기 흐르는 가채머리를 한 관능적인 여인에게 젊은 선비가 흐물거리는 눈길을 보내고 있다. 아름답고 화려한 여인네들과 어울려 노니는 「뱃놀이」에서도 그들의 눈길은 높은 배경을 이루는 청산의 한낱 풀 자락에도 미치지 못해 보인다.

청산은커녕 밋밋한 구릉 같은 배경도 아니 깔린 단원의 「행상」 속, 초라한 부부한테로 눈길이 끌리는 이유는 무언인가?   

전후의 가난한 살림을 꾸리던 어머니는 자식들 굶기지 않으려고, 문맹에서 눈 띄우려고, 희생을 단자처럼 끌어안고 살다 가셨다. 새벽이면 인근 번개시장에다 한 해 동안 농사 지은 파를 내다 파셨다. 늦가을 밭뙈기로 도매상들이 와서 넘겨가는 것이 통례였지만 조금이라도 이윤을 더 남겨 자식들 가르쳐 보겠다고 기꺼이 행상을 감내하셨다.

헛간에 비닐을 씌워 저장해 둔 파가 노란 움이 트는 한 겨울이면 어머니는 눈썹 위에 졸음이 고단하게 내려앉는 겨울 밤 내내 파를 다듬으셨다. 하얀 파뿌리를 명주실 고르듯 가지런히 정리해서 물 추겨져 나릿나릿해진 노란 햇짚으로 단을 묶었다. 도매상들이 경매로 들이는 물건보다 단이 넉넉하고 모양새가 고우니 주문은 날로 늘었다. 한 두 해 재미를 붙이시더니 수년간 어머니는 그 일을 계속하셨다. 고니白鳥도 짚가리로 파고드는 겨울 새벽 찬바람에도 아랑곳 않으시고 이불 보따리만한 파 보퉁이를 머리에 여 나르셨다. 보퉁이의 무게에 눌려 목울대에 잔뜩 힘이 들어 기울어졌던 어머니의 목선이 「행상」 속에 고스란히 들어가 있다.

어머니의 삶을 보면서 나는 결코 엄마처럼 살지 않으리라 자신했다. 고단한 풍속화의 주인공은 되지 않으리라. 풍속화라면 적어도 「뱃놀이」나 「연소답청」같은 낭만이라도 넘쳐나리라 여겼다. 꿈결 같은 산수가 멋들어지게 그려진 이상산수화理想山水畵마냥 고매하거나, 검은 비단 천에 노란 금빛이 도드라지는 이금산수화泥金山水畵처럼 화려하리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하지만 아이가 태어나고 그 웃음소리가 고요한 달밤 연못에서 연꽃봉오리 벙그는 소리마냥 신비하고 귀하게 여겨지면서 ‘엄마처럼 살지 않으리라’ 자신하던 목소리는 처네 자락에 말려 꼬리를 감추었다. 삶은 어느 순간 진경산수화眞景山水畵의 주인공이 되어 가감 없는 삶의 녹이 드러나는가 싶더니 고단한 때가 환산 덤불같이 얽혀든 풍속화가 되고 말았다.

사오 년에 한 번씩 이 학교 저 학교를 옮겨 다니며 아이들을 가르치던 내 일과 힘에 겨운 보퉁이를 여나르시던 어머니의 삶, 그리고 조선 시대 후기에 천륜처럼 고단한 행상을 견뎌내는 여인네의 삶이 선로처럼 팽팽하게 놓여 같은 곳을 향하고 있음을 깨닫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첫 아이가 두 살 되던 삼월 자정 녘에 요란하게 전화벨이 울렸다. 아이를 돌보아 주던 아주머니가 갑자기 사고가 생겨 나오시지 못하게 되었다고. 남편은 지방에 있고, 나는 너 댓 시간 후면 출근을 해야 하는데…. 아이들 쉰 여명이 나 하나만 기다리고 있을 교실을 생각하면 아파도 쉴 수가 없다.

내 가슴은 영등 날 올리던 마른 소지처럼 오그라들며 타들어 갔다. 그 순간 머릿속에 떠오르는 얼굴은 오로지 어머니! 대관령 굽이굽이 넘어오시려면 서너 시간은 족히 걸릴텐데……. 이미 남의 아이들이 아닌 내가 담임을 맡은 내 아이들을 가르쳐야겠기에 아이를 업고라도 출근은 해야 했다. 전화를 받으신 어머니는 남의 자식 가르치느라 내 자식 못 돌본다며 애를 태우시더니 버선도 신지 않으신 채 영嶺을 넘어 새벽을 가르며 달려오셨다.

출근복을 입고 아이를 유모차에 태운 채 교문 앞에서 노심초사 기다리던 나는 첫 교시 수업 종이 울리기 직전에야 교실에 들어갈 수 있었다.   

「행상」 그림 속에서 가없는 사랑으로 잠든 아이를 바라보는 아비의 자애로운 눈길에 커튼콜을 보내고 싶다. 그 따스한 눈길이야말로 그림의 여백을 가득 채우고도 남으리라. 어쩌면 그 공간 어디쯤에 여인이 어머니로 살아야 하는 이유가 굽이굽이 풀어져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이제 남은 시간, 비단 같이 고운 행장行裝꾸렸다가 내가 지나는 길목마다 바리바리 풀어내며 살다가 행상 끝나는 날 되돌아보며 엄마처럼 살길 잘했노라 볼우물 지을 수 있다면, 추사의 「불이선란도不二禪蘭圖」처럼 난초와 참선의 세계가 둘이 아니듯 군자와 여인의 삶이 그리 다르지 않았다 말할 수 있지 않겠는가.

 

 

2007년 10월 《에세이 플러스》 <압구정에는 두 가지 숲이 있다>로 등단.

초등학교 교사 역임(1982~2006년).

현 에세이플러스 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