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知의 사랑

 

이종화

 

 

너를 썼다 지운다. 이젠 정말 안녕. 이별이 아닌 듯, 이별을 고했다. “또 봐.” “으응, 연락 줘.” 온 몸에 힘이 빠졌다. 그래, 사랑한다는 건 판도라의 상자를 여는 일. 알지 못했던 서로의 어두운 진실이 속살을 보이는 순간, 우리의 사랑은 언제나 시험대 위에 올랐다.

가슴으로 하는 게 사랑이라지만, 머리는 종종 그 가슴을 짓누르곤 했다. 사랑에 빠지긴 쉬웠지만 그 사랑을 지키긴 참 어려웠다. 몸이 불편해서, 닫힌 지역색地域色으로, 법의 테두리 그 밖에서 서성이는 가족을 두었기에, 지난 인연들은 내 것이 아니었다. 사랑은 객성客星처럼…. 곁에 왔다 사라지는 한 떨기 꽃이었다.

인간의 사랑은 知의 사랑, 우린 ‘생각하는 사랑’을 한다. 너와 나, 둘을 제외한 모든 결핍. 그걸 품어주는 기꺼운 마음이 사랑이라면, 우리의 사랑은 온전할 순 없는 것 같다. 학벌에 직업, 타고난 배경까지. 종종 종교를 들먹이고 외모를 호감의 잣대로 삼는 우린, 해맑은 감성을 이성의 울타리 안에 가둔 채 그걸 사랑이라 부른다.

콩알만 한 진심을 서로의 기다림 속에 키우기 시작한 시절부터, 천성天性이 자유로운 감성은 제약을 느끼기 마련이었다. 그렇게 연인을 향한 ‘불편한 진심’은 그 구속을 이기지 못해 기어이 사랑선love line을 이탈하곤 했다. 기실, 인간이 지닌 이성의 영역이란 감성이 뛰놀기엔 턱없이 비좁았다. 사랑에도 경제학이 있다면 서로의 효용함수엔 너 아닌 나만 있었다.

사랑하고픈 우린, 언제나 보색補色을 찾는다. 청靑과 홍弘의 어울림처럼, 다르지만 함께 있을 때 더욱 빛나는 두 사람의 결합을…. 헌데 슬픈 건, 대부분은 그런 보색을 만나지 못한다는 사실이었다. 인간은 보색 찾기에 열중했을 뿐 정작 자신의 색깔을 몰랐다. 나의 색깔, 그것도 모르는데 그 보색을 어찌 알까. 빛깔을 알아도 찾을까 말까한 이 드넓은 세상에서. 그래서 우린 이름 없는 색이었고, 우리의 보색은 슬픈 색이었다.

유약한 감성과 빈약한 이성. 불완전한 인간은 知의 사랑을 한다. 조건 따지고 느낌을 퍽도 중시하는 우린, 연인과 나의 무차별곡선이 하나로 수렴하는 점. 그 포화점에서 결혼이란 걸 한다. 그렇게 만난 X축과 Y축은 보색일 수도, 그 반대일 수도 있었다. 진실한 사랑이든 말든, 그건 별로 중요치 않을 지도 몰랐다.

진심은 오래 두고 볼 일이다. 어머니가 눈물로 진주를 만드시듯, 어느 수행 깊은 선사禪師의 외롭고 고단한 밤이 터키색Turquoise 사리를 잉태하듯, 오랜 진심은 핑크빛을 걷어내고 투명한 유리알이 된다.

핑크빛 사랑에 젖어 연인의 맘을 여는 순간, 모든 불행과 모든 행복은 시작된다. 사랑의 묘약, 그 각성의 약효가 다할 때 비로소 판도라의 상자는 열린다. 진실한 사랑은 바로 그 때부터 깊은 상처를 어루만지고 기갈난 욕구를 채워주는 ‘그 사람’과 우리는 사랑을 한다. 빠지지 않고.

 

 

《계간수필》로 등단(2006년).

한국산업은행 근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