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두칼럼

 

수필을 써야 수필이 된다

 

 

                                                                                     고봉진

미당未堂 은 <시창작법> 강좌에서 시인이 되기를 지향하는 사람들에게 「시를 써야 시가 되느니라.」고 했다. 미당의 특유한 해학까지 느껴지는 이 말은 우선 ‘시를 쓰는 것이 시를 쓰는 것’이라는 동의어 반복처럼 느껴진다. 그러나 사람이 어떤 시심詩心을 지니고 있다 하더라도 언어로 그것을 구체적으로 표현하지 않으면 시가 탄생할 수 없다는 사리를 가리키는 말이다.

미당의 명언을 감히 패러디하겠다는 의도는 전혀 없다. 그러나 수필을 쓰거나 수필 쓰기를 의도하는 우리들이 마음속으로 새기고 있어야 할 것도 또한 “수필을 써야 수필이 된다.”는 당연한 사리인 것 같다.

지금 우리는 수필이 가장 양적으로 융성을 극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그 어느 때보다도 많은 수필 전문지들이 발행되고 있고, 그 잡지들이 정기적으로 많은 신인들을 발굴해서 등단시키고 있으며, 그렇게 등단한 사람들이 다투어 수필집을 내고 있다. 그러나 이런 양적 풍요 속에서도 수필의 질이 그 어느 때 보다 높아졌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드문 것 같다. 인구에 회자 되고 널리 읽히는 수필이 좀처럼 나타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 수필이 이래서는 안 된다는 논의가 수필과 관계된 각종 세미나에서 활발하게 전개되고 있다.

그 가운데 가장 널리 행해지는 논의가 ‘수필은 이런 것’이라고 하는 수필의 정의에 대한 갑론을박이다. 그러나 그러한 논의를 하나하나 들어보면, 각자가 <수필은 이런 것이 되어야 한다>고 자기가 지니고 있는 원망願望을 일방적으로 표백表白하고 있는 것에 지나지 않음을 알 수 있다. 다시 말하면 ‘내가 좋아하는 수필, 내가 읽고 싶어 하는 수필, 내가 쓰고 싶어 하는 수필’ 은 이런 것이라는 주장을 하고 있을 뿐이다.

이런 주장들과 당연히 연관되어서 자주 등장하는 것이 ‘수필의 소재’에 대한 논의다.

수필은 픽션을 기본으로 하는 소설이나 희곡과는 달리 기본적으로 자기가 실제로 살고 체험해온 자기 생활 속의 일들을 소재로 삼기 마련이다. 물론 하나의 단편적인 사물에서 보편을 읽어내고, 한 순간에서 영원을 감지해 내는 능력은 사람마다 다르지만, 그 누구도 자기가 살아오고 살아가고 있는 실생활의 울타리를 근본적으로 초탈할 수는 없다. 그래서 수필작품들에 대해 끊임없이 이어지는 시비가 ‘신변잡기’에 머물렀느냐, 문학작품으로 성공하였느냐, 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평가에 적용할 객관적으로 타당한 기준이란 애초부터 성립할 수 없기 때문에, 흔히 “자기가 하고 있는 사랑은 로맨스고, 남이 하고 있는 것은 스캔들이다.”라는 아전인수의 범주를 벗어나지 못해서, 별 설득력도 없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다시 이 문제와 함께 흔히 제기되는 것이 수필을 쓰고 있는 작가의 작가정신이나 집필 자세에 관한 논의다. 걸핏하면 ‘치열한 작가정신’을 지니고 있느냐 없느냐를 문제 삼는데, 이 ‘치열한 작가정신’ 이란 말처럼 어떤 구체적인 지시 사항도 담고 있지 못한 빈 소리도 드물다. ‘치열한 작가정신’을 강조하는 것은, 학생 보고 어떻게 하라는 아무런 방침 제시도 없이 오직 ‘공부 열심히 해라’고 욱지르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설마 수필 쓸 때 머리에 머리띠를 두르고 쓰라는 말은 아닐 것이다.

릴케는 작가가 되기를 희망하며 번민하는 한 청년의 편지에 「한밤중에 홀로 스스로에게 물어 보라. 쓰지 않고는 못 견디겠느냐고, ‘그렇다’는 대답이 나오면 그 때는 그 필연에 따르도록 해라.」라고 답장했다. 작가가 갖추어야 할 작가정신은 그 필연에 순종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이야기다.

 

수필을 쓰고 싶은 욕구를 지닌 사람은 수필을 쓰자.

수필이 무엇인가는 묻지 말고 구체적으로 나와 있는 작품들 가운데서 그 전형典型을 찾자. 수필에 대한 언제나 참된 정의는 유감스럽지만 ‘수필은 수필이다’라는 동의어 반복뿐이다.

‘수필을 써야 수필이 된다’가 참이라면 ‘좋은 수필을 써야 좋은 수필이 된다’도 참이다.

좋은 수필은 독자와 세월이 가름해 준다.

 

                                                                  (본회 부회장, 본지 편집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