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가을에 띄우는 편지

 

 

                                                                                           김규련

K형

안녕하세요. 소슬바람 불어 가을이 깊어졌습니다. 나는 시방 팔공산에 와 있습니다. 낙엽수 잎새들의 귀토의식歸土儀式을 보기 위해서입니다.

늦가을의 풍광은 장엄한 빛깔의 향연이라 하겠습니다. 황금빛깔, 진홍빛깔, 갈색빛깔의 혼융한 무늬가 온 산야에 불타고 있습니다.  

나는 해마다 두 번은 광기가 발작합니다. 신록이 번질 때와 낙엽이 질 때입니다. 이 난치병이 발동하면 비록 늙고 병약한 몸이지만 팔공산을 찾아옵니다.

오늘은 갈잎이 산화하기에 좋은 쪽빛 하늘입니다. 곱게 물든 수많은 잎새들이 떨켜에 달려 나부끼고 있습니다. 저마다 가벼운 몸짓과 미세한 소리로 아쉬운 고별을 나누나 봅니다.

나는 한 그루 단풍나무가 되어 그들 곁에 가까이 다가가 봅니다. 찡하는 울림이 온 몸에 와 부딪칩니다. 화학변화가 인다고 할까요. 내 심금 열두 현이 광란하듯 소리 내어 공명하기 시작합니다.

느닷없이 명창 김소희의 정한 깊이 사무친 남도창이 붉게 물든 계곡으로 번져 나갑니다. 앵삼에 빨간 띠 두르고 화관에 7색 한삼을 손목에 낀 궁중 무희들이 원무를 펼칩니다. 한삼 언저리에 이는 바람이 괜히 서럽습니다.

다음 순간 뜻밖에도 사라사테의 바이올린 <지고이네르바이젠> 높은 음이 사람의 가슴을 찌르듯 쏟아져 나옵니다. 샤갈의 <집시 여인>이 어깨끈 반쯤 흘러내린 야성적인 매혹의 자태로 플라맹고 춤을 춥니다. 내 마음도 밖으로 뛰쳐나와 그녀와 함께 열정 넘치는 춤을 춰 봅니다.

세찬 바람 한 줄기 스쳐  갑니다. 나부끼던 잎새들이 우수수 떨어집니다. 쏟아져 내리는 낙엽 비를 맞으며 황홀과 우수가 오감을 느낍니다.

바람은 왜 불고, 낙엽은 왜 지고, 물은 왜 흐르는가. 지구가 살아 있음을 알고 비로소 평상심을 찾았습니다.

이 가을이 가고 겨울이 오면 잎새 털어버린 나목들은 성자처럼 서서 동안거에 들고 나는 숙주宿主의 겨울노래를 음미하며 조용히 칩거할 것입니다.

파계사 쪽으로 발길을 떼어 놓습니다. 길에는 수많은 사람들과 자동차가 물결쳐 흐릅니다. 온갖 소음으로 마냥 어지러워도 오늘은 되레 즐겁다고 할까요.

어느덧 파계사 진동루 앞뜰에 와서 서성거리고 있습니다. 수령 250년의 영조대왕 느티나무가 갈잎을 떨구며 표표히 서 있습니다.

사람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이것을 화두로 붙들고 사유와 명상에 꾸준히 몰입하면 허실불이虛實不二의 선미禪味를 느낄 수 있다고 하더이다. 허나 나는 말로만 들었을 뿐 감히 흉내도 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K형

내려오다 절 집 밑 작은 연못가에 발이 멎었습니다. 이 가을 그토록 많은 말을 쏟아내며 내 깊은 속정까지 뒤흔들어 놓던 갈잎들이 물 위에 떠 있습니다. 물이랑이 일 적마다 온갖 단상이 일렁입니다.

저 만치 억새풀 꽃이 지천으로 피어 있습니다. 바위 담쟁이에 단풍이 깃들면 억새는 이미 만발하여 희뿌연 머리 풀어 바람결에 나부낍니다.

문득 하늘에 떠가는 구름을 바라봅니다. 지나온 세월이 구름 사이로 번득번득 지나갑니다. 길흉화복의 산맥도 넘고 영고성쇠의 강도 건넜으며 희로애락의 초원도 지나왔습니다.

그 동안 아프게 겪고, 깊이 느끼고, 홀로 고뇌했던 것들이 곰삭고, 녹고, 발효해서 내 영혼에 맑은 샘 하나를 만들었나 봅니다. 그 샘이 강물 되어 흐르고 어쩌다 무지개 뜨면 비로소 수필을 생각합니다.

나의 수필은 지성과 감성과 심혼을 쏟아 부어 빚어낸다고 하겠습니다.

나의 수필창작은 문장으로 산수를 그리는 수묵화의 기법을 원용한다고 하겠습니다. 구도며, 선이며, 원근, 농담은 남종화南宗畵를 닮으려 합니다. 남종화는 화畵이면서 시요, 시이면서 서書라고 하지 않습니까. 이러한 남화삼절南畵三絶의 멋이 수필에도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늘 실패할 뿐 한 작품도 제대로 되지 못해 안타깝습니다.  

수필에서 연상되는 기물이 있다면 나의 수필은 고려청자도 아니고 이조백자도 아닌 대가야의 빗살무늬 토기일지도 모릅니다.

수필이 주는 감동에서 음향을 느낄 수 있다면 나의 수필은 결코 슈베르트나 모차르트의 관현악은 아닙니다. 정한과 비통과 절규가 뒤섞여 울부짖듯 토해내는 남도창 한 가락이면 좋겠습니다.

수필에서 색감을 발견할 수 있다면 나의 수필은 맑고 드높은 가을 하늘이나 오월의 신록 빛깔이 아니라 달빛 축축이 젖어있는 메밀꽃 빛깔이 아닐까 합니다.

수필에서 내음새가 난다면 나의 수필은 춘란의 향기도 아니고 동매의 암향도 아닌 내 고향 섬진강변의 풀꽃 내음이기를 원합니다.

수필에서 떠오르는 사람이 있다면 나의 수필에서는 몸맵시 날렵한 중년여인도 아니고 조선조 사대부가의 마님도 아닌 밭에서 돌아와 사립 밀고 들어서는 시골 아낙네이기 바랍니다.

붉은 낙조가 발등에 떨어집니다. 곧 땅거미가 깔려올 것입니다. 사람들은 저마다 발길을 돌려 보금자리를 찾아가고 있습니다.

책상머리에 앉아 글밭을 일구고 있는 K형의 고결한 모습이  봄날의 아지랑이처럼 불현듯 눈앞에 피어오릅니다. 더러 고향 생각도 나시겠지요. 탯줄 묻힌 흙냄새 그립고 마음 옛정에 흔들릴 때 훌쩍 한번 다녀가세요.

인생의 한 뉘 낙엽 지듯 무상함을 우리 서로 알고 있지 않습니까.

늘 건승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