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철을 타면

 

 

                                                                                   변해명

요즘 같은 삼복에는 버스나 전철을 타는 시간이 즐겁다. 에어컨 바람이 얼마나 시원한지 차에서 내리기가 싫을 정도다.

서울서 천안까지 전철이 개통된 뒤에 많은 노인들이 더위를 피해 전철을 타고 천안까지 다녀온다고 한다. 차비도 들지 않고(65세 이상 노인은 무임승차다) 너무 지루하지도 않고 종로에서 타고 천안에 내리면 1시간 40분 남짓, 점심을 먹고 좀 쉬었다 다시 타고 오면 한낮의 더위도 피할 수 있고 친구들과 여행의 즐거움도 누릴 수 있어서 한 번씩 다녀온단다. 고속철이 생긴 뒤로는 부산에 가서 점심을 먹고 일을 보고 서울로 돌아와도 하루해가 남는다고 하는 사람들도 있다. 올 여름에 그런 여행도 꿈꿔보지만 기회를 얻어내지 못하고 더위에 시달리고 있다.  

나는 지방에 있는 고등학교에 근무할 때 한 시간에 한번 다니는 기차를 타고 출퇴근을 했는데(전철이 생기기 전) 자주 서울역 그릴을 이용하던 때가 있었다. 대합실은 너무 복잡해서 사람들에게 시달리게 되고, 차 시간에 맞추어 나온다는 것은 불안하고 해서 늘 일찍 나와서 기차 시간을 보며 이층 그릴에서 차를 마셨다.

토요일 오후면 그곳에서 사람들도 만났다. 퇴근 하고 서울까지 오면 서울에 근무하는 사람들보다 언제나 한 두 시간은 늦어서 서울 사람이 서울역으로 오면 엇비슷하게 만날 시간을 맞출 수 있어서였다. 그곳에서 만나 교외선을 타고 차안에서 이야기꽃을 피웠고, 어디고 가고 싶은 곳이 있으면 쉽게 떠나곤 했었다. 그때는 차에 에어컨도 없고 승객이 만원을 이루는 복잡하고 짜증스런 차 타기였는데도 나는 즐겁던 기억만 남아 있다.   

나이가 들고 세월이 좋아지면서 남들에게 질세라 운전을 하기 시작했다. 운전은 사람을 공상에 빠진다든가 어떤 생각에 몰두하게 놔두지 않았다. 언제나 앞을 향해 정신을 집중시키고 앞 뒤 옆을 살피며 늘 긴장하고 있어야 하는 중노동이다. 그러니 새로운 풍경에 정신이 팔리거나 메모를 한다는 것은 생각할 수도 없는 일이다.

대중교통을 타고 다닐 때는 사람을 만날 때 기다리는 지루한 시간도 메모하며 즐겨 왔는데 차를 가지고 가서 기다리면 주차비가 억울한 생각부터 들기도 한다.  

대중교통 속에서는 사람들에게 시달리는 것이 짜증나고 지루하게 느껴지기도 했지만 그럴 때면 사람들의 얼굴들을 바라보며 우리 삶의 다양한 모습을 관찰하는 즐거움도 가져보는데 그런 사람 사는 냄새도 가질 수조차 없다.

차를 가지고 거리로 나서면 앞차와 길만 바라봐야 하고 마음의 여유를 누릴 수 없다. 또 길이 막혀서, 주차하느라고 쩔쩔매는 시간으로 약속시간을 넘길 때도 있다.

그뿐만이 아니다. 내가 아무리 조심운전을 한다 해도 다른 차의 부주의가 나를 위협하니 앞 뒤차가 모두 흉기로 보일 때도 있다. 진로방해가 되었을 경우 살벌하게도 서로 욕설과 삿대질이 오간다. 그러면서도 운전대에서 내려서지 못한다.    

지난 5월 한낮에 올림픽대로 끝자락에서 부천 쪽으로 방향을 잡으면서 첫 번째 건널목 앞에서 속도를 줄이고 신호등을 보며 서는데 속도를 줄이지 않고 달려온 차가 앞에 있는 내 차를 받는 사고가 있었다. 마른하늘에 날벼락이라더니 느닷없이 당한 충격에 밀려 나는 앞차를 받았고 앞차는 또 그 차의 앞차를 받는 4중 추돌사고로 여러 사람이 다치는 사고가 있었다. 죽지 않은 것만 감사해야할 지경의 도로상의 위협은 내 경우만이 아니고 수시로 일어나고 있는 형편이어서 이제는 운전을 하고 다닌다는 것이 두렵기까지 느끼게 되었다.   

 

오랜만에 전철을 탔다. 인천까지 가는데 문고판 책 한 권을 거의 읽었다. 옛날 출퇴근하면서 차안에서 책을 읽던 기억이 되살아나서 감회에 젖기도 했다. 아무리 바빠도 차 속에서는 한없는 여유를 즐기며 사유하고 행복한 시간을 얻어 누리던 때처럼.  

오늘도 나는 먼 길을 가기 위해 전철에 오른다. 차를 타고 가는 동안 꿈꾸는 나그네가 되는 기쁨을 만끽하게 될 것이다. 편안하게 목적지까지 가도록 전철에 의탁하는 나를 위해 봉사하는 사람이 있음을 새삼 깨닫는다.   

내가 먼 길을 가기 위해 운전하는 수고를 대신해서 수고하는 그 누군가가  있기에 내가 여유로운 시간을 즐기고, 내가 땀을 식히는 동안 그 누구는  긴장하고 땀을 흘리며 수고할 것이다. 자신의 시간을 모두 바쳐 타인에게 만족한 시간을 마련해 주기 위해서 봉사하는 사람들.   

내 모든 것을 내려놓고 여유롭게 서 보는 시간, 그런 시간은 내게 더없이 편안한 시간이나 그에게는 힘들고 고달픈 시간일 것이다.

모두의 일상이 더불어 살아가는 사람들을 위한 봉사라는 것을, 더불어 살아가는 세상에서 자신으로 하여 평안하고 행복해질 사람이 있음을 생각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은 보람으로 평생 후회 없는 길을 갈 것이다.

둘러보면 모두가 남을 위해 봉사하며 사는 사람들이다. 전철, 버스뿐만 아니라 모든 직종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모두 그러리라.

그들 사이에 서서 마치 누구의 도움도 없이 혼자의 힘으로 사회 속에서 살아온 것처럼 오류를 범하며 살아오지는 않았는지 내 자신을 돌아본다.  

이 더운 날 이토록 편안하게 길을 갈 수 있음은 세상 덕을 너무 많이 보고 산다는 느낌이다. 비로소 내가 남과 더불어 나눌 수 있는 것이 무엇일까 생각해 보며 묵주를 꺼내든다. 오늘 전철 안에서 여유로운 시간은 그런 시간을 만들어 주는 이들을 위한 기도를 바치기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