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풍

 

               - 태풍이 나의 마음을 끄는 것은 이 자연현상이

                       빚어놓는 결과의 선악과는 무관하다.

 

                                                                                 남기수

1

북촌대가로 옮겨든 후의 일로, 태풍이 가까이 다가오고 있다는 기상예보를 대하는 때면 나의 마음은 한 곳으로 쏠리기 시작했다. 하늘과 바다 사이에서 태어나는 이 난폭자를 직접 대면해보고 싶었던 것이다. 나는 바람의 방향을 주시하면서 태풍의 위치를 짐작해 보겠다고 마음을 굳히는 것이었고, 태풍의 상륙이 임박했다는 보도에는 형용할 수 없는 전율이 몸 안을 스쳐갔다.

태풍이 다가오는 때면 밝은 기운이 알게 모르게 물러가고 한낮에도 적막한 기운이 어느덧 주위에 감돌았다. 남쪽 하늘을 덮어오는 구름들은 길게 벋어 내린 한라산 능선 너머에서 하늘로 일제히 솟아오르는 듯이 보였다. 모양이 크고 음영도 두터운 구름들이 하늘에 들어차고, 밖은 점차로 어둑해졌다. 방향과 빠르기가 서로 다른 구름들이 층져서 원호를 긋듯이 움직이는 모양을 올려다보고 있으면 둥글게 나누어진 하늘조각들이 맞물린 톱니바퀴처럼 돌고 있는 것 같았다.

 

2

철 대문이 마구 흔들리고 자지러지는 소리를 내면서 비로소 몰아치는 바람의 큰 기세를 실감하기 시작한다. 밖에는 바람에 들썩거리는 것들이 있기 마련이고, 풀려서 늘어진 것들은 숨을 몰아가는 바람 끝에 달려서 온 몸을 떨어댄다. 바람도 구름도 방향이 수시로 바뀌고, 전선들은 종작없는 잔바람에도 한껏 켕겨서 실성한 듯 윙윙거린다. 담 밖 서쪽 긴 방파제 앞 바다는 체로 흔들어 놓은 듯 물결이 주된 방향이 없이 사납게 출렁인다. 하늘을 날던 새들은 종적을 감춘 지 이미 오래다.

태풍이 제주도 남쪽까지 좀 더 가까워 졌는가…. 바람이 이제는 방향을 정하면서 일각일각 세어진다. 낮은 구름이 분주하게 눈에 들어오고, 철 대문을 남동풍이 몰아치기 시작한다. 허공에는 기괴한 음향이 몰려다니고, 주변은 급박한 움직임 안으로 겉잡을 수없이 빨려 든다.

태풍이 머리 위쯤 와 있는 것일까. 변덕스런 빗줄기들이 물가, 돌담 위, 숲 가운데를 사정없이 훑때린다. 온 세상이 훌치는 비바람 속에서 거뭇한 짐작일 뿐, 천지 사방이 바람을 거슬러서 흘러가고 있다.

엇비스듬히 바람을 등지고 서서 한라산 산정 쪽을 올려다본다. 허공에서 순간순간 돋아나오는 거뭇한 점들이 눈높이에 이르면 빛의 점 구슬이 되고 바람의 휘몰이로 눈앞을 벗어나서 다시 허공으로 날리며 물안개를 이룬다.

물안개는 희끗희끗 눈발 같이 쓸리며 급히 몰리다가 멈칫 돌아서며 긴 허리 중도막이 맥없이 풀리더니 다시 한 데로 어우러지며 뿌옇게 날린다. 은회색의 음영이 하늘에서 드리운 휘장 같이 비바람의 태를 나붓나붓 그려 보인다. 나는 긴장한 가운데서도 어딘가 풀어져서 물안개의 신비로움 가운데서 태풍의 거친 숨결을 대하며 한참을 서 있다.  

 

3

미친 듯한 바람자락이 뒷담 안 텃밭을 사납게 휘돌며 빗줄기를 몰아친다. 13밀리미터 두께의 통유리.

 창은 비닐 막처럼 떨고, 창유리 겉면에는 뿌려드는 빗줄기가 양동이로 봇물을 퍼붓듯이 흘러내린다.

나는 옥상으로 올라가서 몸을 낮추고 주위를 둘러본다. 온 바다가 주름주름 밀려드는 물결-물 언덕이다. 해동 앞에서 물개 섬을 지나 멀리 동복 해안에 이르기까지 바다는 뒤집혀서 옥돌 색깔로 끓고 있고, 사방은 허공을 째는 거친 기운으로 가득하다. 장관이다. 그런데도 나는 어쩐지 단조롭다는 느낌이 떠나지 않는다. 바람과 파도와 물보라가 거듭하며 하나로 되어서 자아내는 소리들. 물 언덕이 바위를 만나면 물보라가 솟구치고, 선착장에서는 파도가 등대 키를 넘고 또 넘고…, 되풀이 되는 가운데서 시간은 정지되고 바다는 예제가 다름이 없다.

나는 파격을 찾는 심정이었다고나 할까, 좀 더 새롭게 바람의 맛을 보고 싶어졌다. 하지만 머리가 난간 높이 그 위로 들리는 순간 고개가 꺾이듯이 뒤로 잦혀지며, 동시에 두 눈이 튀어나오는 듯 팽만한 압력에 숨이 칵 멎었다. 터질 듯한 가슴에 날카로운 아픔이 금이 가듯 뒤따르고 나는 떨어지듯이 털썩 주저앉았다. 순간이었지만 심폐가 마비된 듯 몸을 추스르기가 어려워져서-두 눈을 감고 어두움 가운데에서 가만히 의식을 모으면서-답답한 가슴으로 숨결을 조심스럽게 고르기 시작하고-호흡이 가능한 것을 확인하고 나서도 그대로 움직이지 않고-눌린 듯이-있었다.

머리를 숙이고 그렇게 앉아 있는 몸 위로, 난간으로 둘러친 하늘이 허공에 열려있었다. 하늘은 뒤틀린 소리로 가득했다. 그 소리는 질감도 색깔도 선명해서 소리가 긋고 지나가는 윤곽을 두 눈을 감고도 그려낼 수 있을 것 같았다. 두 귀에 들리는 것이 두 눈으로도 보이는 만큼 몸은 태풍의 느낌으로 가득했다.

 

4

나는 집안으로 들어와서, 잠시 몸과 마음을 추스르기로 한다.

바위 위에 서 있는 북촌대가는, 바람의 큰 소용돌이 아래서도, 묵중하다. 태풍이 온 몸을 훑고 지나가는 동안 북촌대가는 거대한 기관汽罐의 소리도 같고 지축을 흔드는 무한궤도의 먼 진동 같기도 한 울림에 잠겨 있다. 고유의 떨림으로 큰 바람을 대하고 있는 북촌대가의 이 울림은 일상의 그 고요함 못지않게 정밀靜謐하다. 북촌대가는 태풍을 맞이하여 혼魂의 노래를 이처럼 들려준다.

 

5

나는 다시 옥상으로 올라간다. 산허리 위로 뒤엉키어 움직이는 큰 바람의 모양을 두 눈에 담아보려고 한다. 빗줄기들이 산 중턱으로 몰리는 동안 오름들이 문득 문득 드러나 보이고, 골진 곳으로 휘어 들어간 물안개가 무리무리 머무는 곳에서 바람과 비의 신들은 궁전을 짓고 잔치를 벌인다. 비구름과 큰바람 가운데에 떠 있는 이 궁전은 그 상도 맺혔다 풀렸다 해서, 밀고 당기는 원근의 느낌이 바라보는 마음을 늦췄다 조였다 끌어들인다. 나는 운무 가운데의 야단스러운 이 법석을 좀 더 가까이 하려는 듯 나도 모르게 옥상 가운데로 몸을 옮긴다.

 

허나 몸을 조금 일으키는 순간, 보이지 않는 손이 휘-익 나의 허리를 감아 올려서 몇 발자국 앞으로 홱 던져버린다. 나는 훌쩍 들려서 서너 걸음 앞에 넘어지듯이 떨어진다. 돌연한 바람 몇 자락이 난간 너머에서 몰려와 나를 휘감은 것이다. 사방 십여 미터의 좁은 옥상에서도 바람은 몸을 이처럼 낚아채서 허공으로 날려버릴 수도 있다. 나는 가슴을 진정시키며 옥상 바닥에 눌러 앉았다가 조심스럽게 층계를 내려온다. 바람은 꾸준히 지속되는 것이 아니고 몇 바람씩 길게 이어져 있는 것도 아니지만, 바람 바람이 갑자기 표변하여 나의 빈틈을 이처럼 헤집고 달려든다.  

나는 숨을 돌린 뒤, 한 번 더 밖으로 나와서 이번에는 돌담 쪽으로 향한다. 그러나 바람벽과 돌담 사이로 들어서는 순간 조붓한 공간에서 온몸을 세차게 밀어내는 압력과 함께 안면을 모질게 후려치는 힘을 느낀다. 쏟아붓듯이 밀려든 자극이 무수한 침 끝에 얼굴이 노출된 것 같다. 살갗이 밀리면서 얼굴이 찢어지는 듯 아픔이 이를 데 없다. 그러나 나는 태풍의 힘이 얼굴 위에 끼쳐놓는 불같은 자극을 승리를 예견하는 전사의 인고와도 같은 자세로 단호하게, 당연하게 받아들인다. 그리하여 바람에 날리는 빗방울이 모래바람처럼 세차게 얼굴에 뿌려대는 촉감을 오히려 상쾌하게 여기기까지 한다.  

 

6

하늘 아래 땅 위를 휩쓸던 바람과 빗줄기의 소요는 저녁나절이 되면서 이울기 시작했다. 태풍은 해협 건너로, 육지로 옮겨갔다. 나는 안도감 가운데서도 일종의 허전함을 금할 수 없었다. 기다려왔던 무엇을 소홀히 대한 것 같았고 제대로 대하지 못한 것 같았다.

태풍은 생겨나고 사라지는 자연의 한 현상에 불과하다. 그런데도 태풍이 지나가는 동안 내가 들떠 있었던 까닭은 무엇일까. 루사가 지나가던 추석 무렵 그 때와 그 다음 해 비슷한 시기에 매미가 지나가던 때를 회상해 보는 지금은 그 때 내가 왜 그렇게까지 태풍에 끌렸었는지 좀 더 분명하게 짚어볼 수 있을 것 같다.  오래전의 일로 기억이 흐려진 덕분에 태풍에 깊이 눌려있던 마음이 드러나 보이기 때문일 것이다. 지금은 그 까닭이 태풍 한 현상이 야기하는 변화의 규모와 자연에서 쟁취한다고 여기는 인간적 성취의 규모를 대비하여 볼 수 있기 때문이었다고 하지 않겠다. 자연의 우연한 현상이 학교에서 배운 대로 작용한 것에서, 인간 지혜의 우월감을 몸으로 직접 느껴 볼 수 있기 때문이었다고도 하고 싶지 않다. 루사나 매미가 그때의 주변 삶에 끼치던 위력과 규모는 나에게는 지금도 여전히 생생하고 큰데, 이에 반해서 그 안에서 사뭇 들떠 있었던 나는 태풍을 배경으로 한 천진한 아이로 비춰 보인다. 내가 그때 들떠있었던 것은 자연 가운데에 엄존하는 초월적인 존재에 대하여 외경심이 나도 모르는 중에 드러난 행위는 아니었는지…. 나는 그때 긴장한 상태에 내내 있었으나, 불안이나 두려움은 없었다.  

태풍은 지나간 뒤에도 그 여파가 한 동안 남아 있었다. 서북풍으로 바뀐 뒷바람에, 서우봉 앞바다는 해동 천에서 유입된 황톳물로 누렇게 끓듯 하였고 높은 물결이 해녀 탈의장 앞으로 밀려드는 것 또한 여전했다. 물보라는 마을 깊은 곳까지 소금물을 여러 날 뿌렸다. 해동마을을 지나서 서우봉 앞바다에 이르기까지 바다로 환하게 열려있는 북촌대가는 태풍이 지나가고 나면, 햇볕 아래에서 하얗게 새로 태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