컴맹 탈출기

 

 

                                                                                    김소경

컴맹이지만 불편이 없다고 호언장담해 오다가, 어느 날 별수 없이 컴퓨터학원의 문을 두드리게 되었다. 원장과 인사를 나누고 마우스를 잡으면서 내심 좀 부끄러웠다. 살면서 장담할 일이 없다는 것을 회갑이 넘은 나이에 또 한 번 실감했기 때문이다.

그동안은 원고를 보낼 때 가족의 도움을 받을 수 있어서 컴맹을 대수롭지 않게 여겨 왔다. 한편으로는 시력을 보호한다고 오히려 다행이다 싶었다. 그러던 것이 사정상 도움을 받는 것이 좀 어렵게 되자, 외국에 있는 아들이 배우기를 권했다.

기계치인 내가 망설이다 결심한 것은 두 가지 이유에서다. 우선 원고를 보내는 방법이 이제는 육필원고가 허용되지 않는다. 글이 수작이라면 불문곡절하고 될 일이겠으나 그렇지도 못하니 편집자에게 부담을 줄 수는 없다. 둘 중 하나, 수작을 내던지 아니면 컴맹에서 탈출해야 한다. 이리저리 생각해 봐도 후자를 택할 수밖에 없는 처지이다. 또 하나는 집 떠나 있는 자식들과의 소통이었다. 전화는 시차도 있고 상황도 염두에 둬야 하지만 메일은 그런 면에서 자유롭다. 게다가 소식을 주고받으면서 서로의 거리감을 줄일 수 있다는 장점이 나를 유혹했다.

길 건너에 컴퓨터학원이 문을 연 것은 오로지 나를 위한 것이라 여겨졌다. 한 달 수강료를 내고 사십대 원장의 가르침을 받기 시작했다. 그녀는 물속을 헤엄치듯 능숙하게 가르치지만, 더듬더듬 익히는 내 과정은 만만치 않았다. 마침 수강생이 별로 없으니 어느 때나 들리라는 말은 내게 보너스였다.

일주일쯤 지나 아들과 지인들에게 몇 자 보냈더니 뭔 일이 난 듯 답장이 날아들었다. 경천동지할 일이라지 않나 비 내리는 풍경을 보내서 기를 죽이지 않나… 그동안 내가 얼마나 큰소리를 쳐 왔으면 이럴까. 어떻든 학원에서 듣지만 말고 공책을 준비해 메모하라는 충고까지 우정 어린 격려들이 고마웠다. 우리선생도 어느 때나 반갑게 문을 열어 준다.

예습을 하느라 동인 홈에도 들어가고 분주한 나날이 이어졌다. 초보인 선배가 방문을 안 하면 심심한 것처럼 후배들이 불러들이고, 몇 자 올리면 종달새들처럼 박수를 보낸다. 초등학생이 장난감 만지듯 하는 컴퓨터를  이렇게  시작을 했으니 좋은 결과를 만들어야 할 일이었다.

목표는 원고를 보내는 수준으로 잡았다. 너무 깊게 알려면 그만한 노력이 필요하고 건강에도 좋을 것 같지 않다. 세상일 다 알려고 들면 골치 아픈 결과도 오는 법, 더도 덜도 말고 내 깜냥만큼으로 만족할 일이었다. 글은 내가 아니더라도 쓸 사람이 많지만 내 건강은 가족의 건강이니까. 식후 한 시간 후에 시작하고 한 시간 이상 좌판을 치지 않기로 하면서, 행여 또 장담 못할 경우가 있지 않을까 싶어 혼자 생각으로 접어놓았다.

한 달 수강이 끝나는 날, 원장과 점심을 하면서 고맙다고 했더니 가르치는 게 재미있었다면서 언제든 들리라고 한다. 독일에 사는 아들에게  컴퓨터 다 배웠다고 하니까 이제부터 시작인데 하면서 웃는다.

아니나 다를까, 혼자 하다 보니 뭘 잘못 건드렸는지 속수무책 상태가 빈번해, 길 건너 학원으로 달려가고 AS기사가 오고 컴퓨터 선배에게 자문을 받기도 하고 체면이 말이 아니었다.  컴퓨터의 성품이 이렇게 예민한 줄 미처 몰랐다 할까. 지인들은 그렇게 혼자 하다 보면 익숙해진다나. 말대로 어느 때는 내가 의도하지 않은 화면이 떠서 놀란 적도 있다.

요즘은 환하게 웃는 아들사진을 바탕화면으로 보면서 하루를 시작한다. ‘구글 어스’에 들어 가 주소를 치면, 바다 건너 아들의 집이 나오니 참 대단한 세상이다. 요술 상자 같다 할까, 이렇게 편리한 것이 사용자의 인품에 따라, 어느 경우에는 소리 없는 무기가 될 수 있다니 마음을 잘 다스려야 할 일이다.

일주일에 한 번쯤,  자식들의  안녕을 비는 마음으로 집안 소식을 알맞은 분량으로 보낸다. 아들이 읽었다는 걸 확인하면 마음이 편안해 진다.

오늘은 바람도 불고 날씨가 쌀쌀 하기에, 대 놓고 말 하면 엄마의 잔소리라 할 내용을 좀 쓰고 마지막에  메일이 참  좋구나  용용…, 라고 한 다음 보내기를 눌렀다. 정상으로 전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