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사진

 

 

                                                                                     류창희

엄마를 잃어버렸다. 칠 남매나 되는 그들은 고향에 홀로 계시는 엄마에게 전화를 해, 자식을 키우는 하소연을 하고 다른 형제들 소식도 물어본다. 명절 때는 어김없이 찾아뵙고 합심하여 해외여행도 보내드렸다. 엄마는 채마밭을 일궈 해마다 고춧가루와 마늘을 보내준다. 흙냄새를 풍기며 언제든 자식을 반갑게 맞아준다. 그런데 그 고향마을에 늘 흐르는 개울물처럼 그림 한 장 같던 엄마가 없어졌다.

한마디 말도 없이 한 장의 쪽지도 없이, 흔적도 없이 사라진 엄마를 찾으러, 자주 다니던 약국으로, 친척집으로, 야산으로, 방죽으로 찾아다니다, 급기야는 전국의 무연고자 시신 안치실까지 전단지를 뿌리고 찾아다닌다.

엄마는 어느 곳에도 없었다. 각자의 생업으로 돌아가 마음속으로 엄마를 부를 수밖에 없을 즈음, 동네 아주머니 중에 체구가 비슷한 분을 모셔와 자식들의 가운데 자리에 앉혀놓고 사진을 찍는다. 그리고 그 아주머니 얼굴 위에 엄마의 사진을 덮어 컴퓨터 합성으로 가족사진을 완성시키는 장면으로 TV <인간극장>은 끝났다.

우리 집 형제들은 토 일요일마다 어른들이 계신 본가에 모인다. 언제나 식구가 마당 가득하다. 사계절마다 형형색색의 꽃이 피듯 삼 형제에 여섯 손자손녀들이 배경화면처럼 화목하게 잘 돌아가고 있다.

벚꽃이 화사하게 핀 날 사진을 찍자고 했다. 영산홍이 더 곱다고 나중에 찍자고 하신다. 영산홍이 병풍처럼 핀 날은 누가 여행 중이거나 어떤 연유라도 있어 한 두 명은 빠지게 마련이다. 이래저래 차일피일 몇 년의 세월이 흐른다. 명절에 옷이라도 갖춰 입었을 때 가족사진을 찍자고 하면, 오늘만 날이냐며 당최 어른들이 협조를 안 하신다.

하기야, 사진이 뭐 그리 중요하겠는가. 남의 집 거실 벽에 걸려있는 정지된 사진 한 장보다 늘 한 울안에서 벅적거리는 활동장면이 더 소중했을지 모른다. 굳이 정지시켜 그림으로 남길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사진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다. 어머님 회갑 때와 아버님 칠순 때 찍은 사진이 있다. 그 사진 속에는 동서가 갓 시집와서 아직 아이들이 태어나기 전이니 막내 손자와 손녀가 빠졌다.

그런데 느닷없이 어머님이 병원에 입원하셨다. 워낙 건강하셨던 터라 허리가 삐끗한 정도로 금방 나으려니 여겼는데, 혼자서 일어나지도 걷지도 못하는 위중한 상태가 되었다. 병원생활을 하신 지 육개월 정도가 되었을 무렵, 분가해 살던 형님 댁과 어른들이 합가를 하던 날, 환시 환청에 시달리며 사경을 헤매시는 어머님이 1박2일 외출을 나오셨다. 이삿짐을 한쪽 편에 부려놓은 채 갑자기 가족사진을 찍는다고 한다. 예약해 놓은 사진사가 어머님보다 먼저 와서 대기하는 비상사태가 되어 군에 간 장손도 배를 타던 손자도 바다에서 돌아왔다.

불안한 응급소리를 내며 앰블런스를 타고 모셔왔다. 병원용 간이침대에서 조심스럽게 휠체어로 옮겼다. 몇 개월 만에 별안간 앉으려고 하니, 고개가 허리가 자꾸 기울어지고 미끄러진다.

급한 마음에, 환자복 위에 편안하게 입으시던 자주색누비저고리를 걸쳐드렸다. 어머님은 순간순간 급하게 서두르는 눈빛들 속에서 ‘무슨 일이 있나. 왜들 이렇게 서두르는지… ’ 하시듯, 오히려 구경꾼처럼 우리를 물끄러미 바라보신다. 그러면서도 덧저고리를 손으로 자꾸 벗으려는 시늉을 하신다. 은은한 비둘기 빛 생고사 깨끼 한복을 찾아 갈아 입혀드리니, 그때서야 빙긋이 웃으신다. 평소의 자태처럼 온화한 품위가 있다. 나는 새끼손가락에 립스틱을 묻혀 어머님 입술에 살짝 발라드렸다. 화색이 도는 듯 금세 고우시다.

계절마다 꽃 같은 날들도 많았건만, 시時를 다투는 이 소란이 대체 뭐란 말인가. 엄마를 잃어버리고 나서야 찾아 헤매던 그들과 무엇이 다른가. 어머님이 잠시를 힘들어하시니 사진사까지 마음이 급하다. “자 한번만 더 웃으세요. 하나, 둘, 셋!” 구령에 따라 입가에는 웃음도 살짝 지어보건만, 14명 각자의 가슴에는 굵은 빗줄기가 후드득 후드득 때리고 있었다.

묵은 잎과 가지에 꽃피고 새 울고 봄이 오고 봄이 가고 또 봄이 오고. 잠시 정지화면이 되었다가 다시 돌아가는 CCTV처럼 일상이 돌아간다. 특별한 행사가 아니면 전처럼 한 울안에서 북적이는 일이 드물어졌다. 각자의 집안 베란다 화분에 물을 뿌리듯 가슴속을 적셔줄 뿐이다. 그 촉촉함에는 어머님께서 바라는 화기애애한 향기는 점점 멀다.  

형제들 거실에는 아무 이상 없었다는 듯, 그 날 찍은 가족사진이 걸려있다. 난 그 사진을 꺼낼 수가 없다. 그 날 그 순간의 긴박함이 가슴에 걸린다. 시간이 지나 어머님이 뵙고 싶어 그리운 날, 그 때 ‘저 사진이라도 잘 찍었지. 그 날처럼이라도 어머님이 우리 곁에 계시다면 얼마나 좋을까.’라는 생각이 들 때까지 차마 나는 걸지 못할 것이다.

 

 

《에세이문학》 , ( 2001년),  

수필집으로  《매실의 초례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