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4회 |집중조명 |

 

이광수의

우덕송牛德頌

 

금년은 을축년乙丑年이다. 소의 해라고 한다. 만물에는 각각 다소의 덕德이 있다. 쥐 같은 놈까지도 밤새도록 반자 위에서 바스락거려서 사람에게,

“바쁘다!”

하는 교훈을 주는 덕이 있다. 하물며 소는 짐승 중에 군자다. 그에게서 어찌해 배울 것이 없을까. 사람들아! 소 해의 첫날에 소의 덕을 생각하여, 금년 삼백 육십 오 일은 소의 덕을 배우기에 힘써 볼까나.

특별히 우리 조선 민족과 소와는 큰 관계가 있다. 우리 창조신화創造神話에는 하늘에서 검은 암소가 내려와서 사람의 조상을 낳았다 하며, 또 꿈에서 소가 보이면 조상이 보인 것이라 하고 또 콩쥐팥쥐 이야기에도 콩쥐가 밭을 갈다가 호미를 분지르고 울 때에 하늘에서 검은 암소가 내려와서 밭을 갈아주었다. 이 모양으로 우리 민족은 소를 사랑하였고, 특별히 또 검은 소를 사랑하였다.

검은 소를 한문으로 쓰면, ‘청우靑牛’ 즉 푸른 소라고 한다. 검은빛은 북방 빛이요, 겨울 빛이요, 죽음의 빛이라 하여 그것을 꺼리고 동방 빛이요, 봄빛이요, 생명 빛인 푸른빛을 끌어다 붙인 것이다. 동방은 푸른빛, 남방은 붉은 빛, 서방은 흰 빛, 북방은 검은 빛, 중앙은 누른빛이라 하거니와, 이것은 한족들이 생각해 낸 것이 아니요, 기실은 우리 조상들이 생각해 낸 것이라고 우리 역사가歷史家 육당六堂이 말하였다고 믿는다. 어쨌거나 금년은 을축년이니까, 푸른 소 즉 검은 소의 해일시 분명하다. 육갑六甲으로 보건대, 을축년은 우리 민족에게 퍽 인연이 깊은 해라고 할 수밖에 없다.

검은 빛 말이 났으니 말이거니와, 검은 빛은 서양 사람도 싫어한다. 그들은 사람이 죽은 때에 검은 빛을 쓴다. 심리학자의 말을 듣건대, 검은 빛은 어두움의 빛이요 어두움은 무서운 것의 근원이기 때문에 모든 동물이 다 이 빛을 싫어한다고 한다. 아이들도 어두운 것이나 꺼먼 것을 무서워한다.

어른도 그렇다. 캄캄한 밤에 무서워 아니하는 사람은 도둑질하는 양반밖에는 없다. 검은 구름은 농부와 뱃사공이 무서워하고, 검은 까마귀는 염병 앓는 사람이 무서워하고, 검은 돼지, 검은 벌레 모두 좋은 것이 아니다. 검은 마음이 무서운 것은 누구나 아는 일이요, 요새 활동사진에는 검은 손이 가끔 구경꾼의 가슴을 서늘케 한다. 더욱이 우리 조선 사람들은 수십 년 이래로 검은 옷을 퍽 무서워했다.

그러나 검은 것이라고 다 흉한 것은 아니다. 어떤 것은 검어야만 하고, 검을수록 좋은 것이 있다. 처녀의 머리채가 까매야 할 것은 물론이거니와, 이렇게 추운 때에 빨간 불이 피는 숯도 까매야 좋다. 까만 숯이 한 끝만 빨갛게 타는 것은 심히 신비하고 아름다운 것이다. 처녀들의 까만 머리채에 불같은 빨간 댕기를 드린 것도 이와 같은 의미로 아름답거니와, 하얀 저고리에 까만 치마와 하얀 얼굴에 까만 눈과 눈썹도 어지간히 아름다운 것이다.

빛 타령은 그만하자, 어쨌거나 검은 것이라고 반드시 흉한 것이 아니다. 먹은 검을수록 좋고, 칠판도 검을수록 하얀 분필 글씨와 어울려 건조무미한 학교 교실을 아름답게 꾸민다. 까만 솥에 하얀 밥이 갓 잦아 구멍이 송송 뚫어진 것은 더 말할 것도 없고, 하얀 간지(두껍고 질긴 종이로, 편지지로 사용하던 것)에 사랑하는 이의 솜씨로 까만 글씨가 꿈틀거린 것은 누구나 알 일이다.

이렇게 생각하면 구태 검은 소라고 부르기를 꺼려서 푸른 소라고 할 필요는 조금도 없다. 푸른 하늘, 푸른 풀 할 때에는, 또는 이팔청춘이라 하여 젊은 것을 푸르다고 할 때에는 푸른 것이 물론 좋고, 풋고추의 푸른 것, 오이지에 오이 푸른 것도 다 좋지마는, 모처럼 사온 귤 궤를 떼고 본즉, 겉은 누르고 큰 것이나 한 갈피만 떼면 파란 놈들이 올망졸망한 것이라든지, 할멈이 놀림 빨래를 망하게 하여 퍼렇게 만든 것이며, 남편과 싸운 아씨의 파랗고 뾰족하게 된 것은 물론이요, 점잖은 사람이 순사한테 얻어맞아서 뺨따귀가 퍼렇게 된 것 같은 것은 그리 좋은 퍼렁이는 못 된다.

그러니까 우리는 구태 검은 소를 푸른 소로 고칠 필요는 없다. 검은 소는 소대로 두고 우리는 소의 덕이나 찾아보자.

외모로 사람을 취하지 마라 하였으나, 대개는 속마음이 외모에 나타나는 것이다. 아무도 쥐를 보고 후덕스럽다고 생각은 아니할 것이요, 할미새를 보고 진중하다고는 생각지 아니할 것이요, 돼지를 소담한 친구라고는 아니할 것이다. 토끼를 보면 방정맞아는 보이지만 고양이처럼 표독스럽게는 아무리 해도 아니 보이고, 수탉을 보면 걸걸은 하지마는, 지혜롭게는 아니 보이며, 뱀은 그리만 보아도 간특하고 독살스러워 구약舊約 작자의 저주를 받은 것이 과연이다 ― 해 보이고, 개는 얼른 보기에 험상스럽지마는 간교한 모양은 조금도 없다. 그는 충직하게 생겼다.

말은 깨끗하고 날래지마는 좀 믿음성이 적고, 당나귀나 노새는 아무리 보아도 경망꾸러기다. 족제비가 살랑살랑 지나갈 때에 아무라도 그 요망스러움을 느낄 것이요, 두꺼비가 입을 넓적넓적하고 쭈그리고 앉은 것을 보면, 아무가 보아도 능청스럽다. 이 모양으로 우리는 동물의 외모를 보면 대개 그의 성질을 짐작한다. 벼룩의 얄미움이나 모기의 도심질이나 다 그의 외모가 말하는 것이 아닌가.

그런데 소는 어떠한가. 그는 말의 못 믿음성도 없고, 여우의 간교함, 사자의 교만함, 호랑이의 엉큼스럼, 곰이 우직하기는 하지마는 무지한 것, 코끼리의 추하고 능글능글함, 기린의 외입쟁이 같음, 하마의 못 생기고 제 몸 잘 못 거둠, 이런 것이 다 없고, 어디로 보더라도 덕성스럽고 복성스럽다. ‘음매’하고 송아지를 부르는 모양도 좋고, 우두커니 서서 시름없이 꼬리를 휘휘 둘러,

“파리야, 달아나거라, 내 꼬리에 맞아 죽지는 말아라.”

하는 모양도 인자하고, 외양간에 홀로 누워서 밤새도록 슬근슬근 새김질을 하는 양은 성인이 천하사天下事를 근심하는 듯하여 좋고, 장난꾼이 아이놈의 손에 고삐를 끌리어서 순순히 걸어가는 모양이 예수께서 십자가를 지고 가시는 것 같아서 거룩하고, 그가 한 번 성을 낼 때에 ‘으앙’ 소리를 지르며 눈을 부릅뜨고 뿔이 불거지는지 머리가 바수어지는지 모르는 양은 영웅이 천하를 취하여 대로大怒하는 듯하고 좋고, 풀밭에 나무 그늘에 등을 꾸부리고 누워서 한가히 낮잠을 자는 양은 천하를 다스리기에 피곤한 대인大人이 쉬는 것 같아서 좋고, 그가 사람을 위하여 무거운 멍에를 메고 밭을 갈아 넘기는 것이나 짐을 지고 가는 양이 거룩한 애국자나 종교가가 창생蒼生을 위하여 자기의 몸을 바치는 것과 같아서 눈물이 나도록 고마운 것은 물론이거니와, 세상을 위하여 일하기에 등이 벗어지고 기운이 지칠 때에, 마침내 푸줏간으로 끌려 들어가 피를 쏟고 목숨을 버려 내가 사랑하던 자에게 내 살과 피를 먹이는 것은 더욱 성인聖人의 극치인 듯하여 기쁘다. 그의 머리에 쇠메가 떨어질 때, 또 그의 목에 백정의 마지막 칼이 푹 들어갈 때, 그가 ‘으앙’하고 큰 소리를 지르거니와, 사람들아! 이것이 무슨 뜻인 줄을 아는가,

“아아! 다 이루었다.”

하는 것이다.

소를 느리다고 하는가. 재빠르기야 벼룩 같은 짐승이 또 있으랴. 고양이는 그 다음으로나 갈까. 소를 어리석다고 마라. 약빠르고 꾀 있기로야 여우같은 놈이 또 있나. 쥐도 그 다음은 가고, 뱀도 그만은 하다고 한다.

“아아! 어리석과저. 끝없이 어리석과저. 어린애에게라도 속과저. 병신 하나라도 속이지는 말과저.”

소더러 모양 없다고 말지어다. 모양내기로야 다람쥐 같은 놈이 또 있으랴. 평생에 하는 일이 도둑질하기와 첩 얻기밖에는 없다고 한다. 소더라 못났다고 말지어다. 걸핏하면 발끈하고 쌕쌕 소리를 지르며 이를 악물고 대드는 것이 고양이, 족제비, 삵 같은 놈이 있으랴. 당나귀도 그 다음은 가고, 노새도 그 다음은 간다. 그러나 소는 인욕忍辱의 아름다움을 안다. ‘일곱 번씩 일흔 번 용서’하기와, ‘원수를 사랑하며, 나를 미워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 할 줄을 안다.

소! 소는 동물 중에 인도주의자人道主義者다. 동물 중에 부처요, 성자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말마따나 만물이 점점 고등하게 진화되어 가다가 소가 된 것이니, 소 위에 사람이 있는지 없는지는 모르거니와, 아마 소는 사람이 동물성을 잃어버리는 신성神性에 달하기 위하여 가장 본받을 선생이다.

 

● 작     품 : 이광수의 우덕송牛德頌

● 참석인원 : 17명  

● 정     리 : 이경은

● 사     회 : 최병호

● 일     시 : 2008년 10월 18일

● 장     소 : 수필문우회 회의실

 

사회 : 안녕하십니까? 지금부터 《계간수필》 제 54회, 2008년 겨울호를 위한 합평회를 시작하겠습니다. 오늘 합평할 작품으로는 이광수의 <우덕송牛德頌>을 골랐습니다. 과거와는 달리 농업이 기계화 되면서 농경 및 운반의 주역이었던 소 역할이 뒷전으로 밀려버린 오늘, 우덕을 반추해 보는 것도 의미가 있을 것 같아 도마 위에 올렸습니다. 오늘 지정토론자로는 염정임, 김영만, 정태헌 선생님 세 분을 모셨습니다.

그러면 우선 염정임 선생께서 작가연보를 통해 이광수 선생의 작가로서의 생애를 살펴보겠습니다.   

염정임 : 이광수 선생은 평안북도 정주定州 출생으로, 한국근대문학의 선구자이며 계몽주의·민족주의 문학가 및 사상가로 한국 근대정신사의 전개과정에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아명은 보경寶鏡. 호는 춘원春園·고주孤舟라고 불렸으며, 어려서 한학을 배우고 1903년 동학에 입도하였으며, 1905년 일진회의 유학생으로 선발되어 일본에 갔다가 학비 곤란으로 귀국하였습니다. 이듬해 다시 일본으로 건너가 메이지학원 중학교 3학년에 편입, 미션 학교 분위기 속에서 그리스도교와 톨스토이의 인도주의에 심취합니다. 이 무렵 홍명희·문일평 등과 공부하면서 시·소설·문학론·논설 등을 쓰기 시작합니다. 1910년 귀국하여 정주 오산학교 교원으로 있다가, 그해 최남선이 주관하는 《소년》에 단편을 발표하면서 문필활동을 시작합니다.

1915년 김성수의 후원으로 일본 와세다 대학 고등예과에 편입, 이듬해 와세다 대학 철학과에 입학하여 광범위한 독서를 합니다. 그 뒤 귀국하여 1917년 한국 근대장편소설의 효시라 할 수 있는 <무정>과 <개척자>를 매일신보에 발표하였습니다. 1919년 다시 일본으로 건너가 조선 청년 독립단에 가담, 2·8독립선언서를 기초한 뒤 상하이로 탈출, 안창호의 민족운동에 공명하여 독립신문 발간에 참여하고 계몽적인 논설을 많이 씁니다.

1921년 귀국한 뒤 《개벽》에 <민족개조론>을 발표하는데 투쟁적인 독립운동에 대해 명백한 거부의 태도를 보이고, 1910년대까지의 민족운동의 의의를 부정함으로써 격렬한 비판과 반론을 야기하는 등 사회적 물의를 일으켰으며, 1923년 동아일보 편집국장을 지내면서 동아일보에 <마의태자>, <단종애사>, <흙> 등의 작품을 발표하고, 조선일보 부사장도 지냅니다. 1937년 수양동우회사건으로 투옥되었다가 출옥 후 <사랑>, <무명>을 발표합니다. 1939년 조선문인협회장이 되었고, 이어 창씨개명을 하면서 일본에 협력하였습니다. 광복 후 1949년 반민족행위처벌법에 의해 구속 중 병 보석되었다가, 1950년 납북되어 자강도 만포시에서 병사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춘원은 특히 그의 생애를 통해 천도교·기독교·불교로 이어지는 종교체험을 하는데, 그의 문학에는 이러한 종교의식이 다양한 양상으로 나타나 있습니다. 어려서 부모를 일찍 여읜 탓에 한 천도교도의 도움으로 천도교에 입문하고, 일본 유학에서 톨스토이의 문학과 사상의 영향을 받아 기독교에 접하게 됩니다. 1920~30년대 들어서면서부터는 불교적 색채가 작품 속에서 뚜렷해집니다. 또한 그는 도산 안창호를 사표師表로 삼았습니다.   

그의 초기 작품은 자유연애의 고취와 조혼폐습의 거부 등 반봉건·계몽적 성격이 강하며, <무정>에서는 신교육문제, <개척자>에서는 과학사상, <흙>에서는 농민계몽사상을 고취하였습니다. 한편 사회적 현실을 천착하지 못한 면을 보여 친일문학가와 일제에 앞장섰다 하여 친일파로 보는 부정적 평가도 있습니다. 춘원처럼 한국문단계의 큰 거목이 이렇게 된 사실이 참으로 안타깝기만 합니다.

정명환 선생은 이광수 선생이 역사의식이 없다고 했으며, 김붕구 선생은 이광수의 역사의식의 결여는 그가 시각형 지식인이었기 때문이라고 비평하고 있습니다. 문학평론가 김현은 ‘이광수는 만지면 만질수록 그 증세가 덧나는 그런 상처와도 같다…… 아직까지도 그는 우리 저마다가 가슴속에 간직하고 있는 아픈 상처이다.’라고 평했습니다. 또한 백철은 《한국의 인간상》이란 책에서 <인간은 약하고, 예술은 강하다.>란 글을 남기면서, 시대의 수난과 고투를 한 몸에 체현한 이광수 선생을 한국의 비극적 축도라고 썼습니다.

 

사회 : 염정임 선생께서 이광수의 삶과 활동, 문학사적인 위상과 영욕의 부침을 잘 정리해 주셨습니다. 그러면 <우덕송>에 대해 김영만 선생께서 작품론을 말씀해주시겠습니까?

김영만 : 이광수 문학에 대한 연구는 그동안 소설에 편향되어 있었다는 느낌입니다. 시가집을 낼 만큼 시도 썼고 상당량의 수필을 쓰기도 했지만, 그것에 대한 조명은 거의 이루어 지지 않은 상태입니다.

춘원은 세 권의 수필집을 내고 있습니다. 그 가운데 제가 직접 본 것은 36년에 출간된《인생의 향기》, 그리고 48년에 나온 《돌벼개》입니다. 오늘 여기 나온 <우덕송>은 이들보다 훨씬 위인 33세(1925년), 그러니까 26년 동아일보 편집국장을 맡기 전 해에 쓴 것입니다.  

그의 수필을 일별할 때 명징하게 드러나는 것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초기의 작품들, 그러니까  《돌벼개》 이전의 작품들은 그 담론이 자못 크고 장쾌하다할까. 소재 또한 자연, 인간, 나라, 민족 등 거창한 것들이 많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그것들을 대상화해서 바라보는 글들인데 비해, 말년의 《돌벼개》의 것들은 그 소재가 어떤 것이든 서술이 아주 조밀하고 섬세하며, 자신이 밖을 내다보기보다는 오히려 자신과 자신의 삶을 들여다보는 그런 작품들입니다. 저는 여기서 수필로는 초기의 작품이라 할 <우덕송>과 말년의 <우리 소>라고 하는 똑같은 <소>를 소재로 한 수필을 잠시 비교해 보겠습니다.

<우덕송>은 말 그대로 '소의 덕성'을 이야기하는 글입니다. 사람을 위해 일생 묵묵히 봉사하다 죽어서도 골육은 물론 가죽까지 내어주는 미덕을 상찬한 것인데, 교훈적이고 계몽적인 글들이 대부분 그러하듯 그 서술이 극히 평면적입니다. 그에 비해 <우리 소>는 아내와 일하는 박 군, 그리고 동서 이렇게 넷이 장터에 나가 자빠뿔 소 한 마리를 사오는 얘기부터, 못난이니, 길소니 꼭 제 구실 못할 것처럼 흠담을 하던 동네사람들의 논을 묵묵히 갈아주는 이야기를 흥미있게 그리고 감동적으로 하고 있습니다. 소의 노고를 말하되 <우덕송>에서는 ‘무거운 멍에를 메고 밭을 갈아 넘기는 것이나 짐을 지고 가는 양이 거룩한 애국자나 종교가 같아서…’라는 말이, <우리 소>에서는 ‘오늘도 비가 오는데 멍에에 터진 목을 가지고 동넷집 논을 갈러갔다. 벌써 박 군이 쑤는 쇠 죽 가마에서 구수한 풀 향기가 무럭무럭 나건마는 우리 소는 아직도 아픈 목을 참고 연장을 끌고 있는 모양이다.’라고 합니다.

더구나 춘원은 이 소를 ‘박 군, 우리 소가 자네나 내게 꼭 알맞은 소일세. 세 못난이가 모였네 그려.’하며 자기화하였을 뿐 아니라, <우덕송>에서 <사람이 신성에 달하기 위하여 가장 본받을 선생>이라 하여 저만치 두고 바라보는 데 비해, <우리 소>에서는 <밤이면 내 베개에까지 그의 곤한 숨소리가 들려온다. 너무 고단하지나 아니한가. 요새는 또 살이 쑥 빠졌다.>하며 소를 바로 육친화하고 있습니다. <우덕송>의 평면화 된 글이 살아 숨을 쉬는 입체적인 형상화의 글이 되기까지, 또는 성인 예수, 대인, 애국자로 비유되던 저만치 서있던 소가 바로 함께 숨을 쉬는 육친의 자리에까지 이르는데 근 20년의 세월이 걸렸고, 그 세월에 작자의 삶은 무수한 곡절이 있었습니다. 저는 <우덕송>이 <우리 소>보다도 작품성이 떨어진다는 생각입니다.

제가 보기에 이 작품은 우선 그 구성면에 문제가 있습니다. 전반부의 색깔에 대한 도입부분이 너무 길어 작자가 무슨 얘길 하려 하는가 독자로 하여금 혼란을 줍니다. 둘째, 소의 덕이 구체적으로 적시되어 공감을 일으키긴 하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인간의 시각에서 바라본 것이요, 소 그 자신으로서는 그 존재의 발현 그 자체인 것입니다. 어찌 보면 그것은 인간의 탐욕스런 소유욕에서 온 자리의 분석이라는 오해를 유발할 소지가 있습니다. 셋째, 소의 덕을 강조하느라 비유되었던 다른 동물들은 너무 폄하되어 작품으로서는 피해야할 이분법적 사고가 그대로 드러나 버렸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작품을 통해 우리는 춘원의 사물에 대한 예리한 관찰력과 아울러 풍부한 상상력을 높이 살 뿐 아니라 그 세련된 문장, 문체에 주목하게 됩니다. 당시 같이 문필활동을 한 육당이나 홍명희 등의 문투와는 영 다른 세련미를 보여주는 데 놀라움을 갖습니다. 그 자신의 말마따나 언주의종, 말이 주이고 뜻이 종이라고 하는 언문일치의 문장으로 뜻을 따라 글을 쓴다고 하는 당시의 문투를 벗어버리는 문장 선언 같기도 한 것입니다.

 

사회 : 김영만 선생께서 <소>란 같은 소재를 가지고 쓴 <우덕송>과 <우리 소>를 비교하면서 20년이란 시간의 흐름 속에서 춘원의 시각이 어떻게 달라졌는지 평해주셨고, 그를 통해 <우덕송>에 대한 작품론도 말씀해주셨습니다. 그러면 정태헌 선생께서 종합적으로 작품 전체에 대해 말씀해 주시지요.  

정태헌 : 춘원을 떠올리면 ‘만질수록 덧나는 민족사의 상처’라는 말이 생각납니다. 혹자는 춘원을 신문학의 선각자요, 한국의 톨스토이라 칭송하기도 하고, 어떤 이는 부르주아적 계몽주의자 또는 친일매국노라고 폄하하거나 매도하기도 합니다. 일제강점기를 통째로 살다가 6·25동란 때 납치되어 생사불명 불귀의 객이 되고 만 춘원은 한국근대사의 수난을 고스란히 안고 살다간 분이었습니다. 앞서 두 분께서 작가론과 작품론을 세세하게 말씀해 주셨는데 전 작가와 작품을 당대 현실과 연계하여 살펴보고 싶습니다.

작품에 대한 내재적 접근과 외재적 접근은 각기 다른 평가가 나올 수 있음은 주지의 사실입니다. 춘원은 여러 장르에 걸쳐 왕성한 작품 활동을 하였지만 작가적 위치를 두드러지게 한 장르는 소설일 것입니다. 하지만 <우덕송>은 수필이기 때문에 그 특성상 춘원의 작가적 현실을 도외시하고 텍스트만을 가지고 내재적으로 접근하는 것보다는, 내재적 요소와 외재적인 요소인 시대 현실과 연계해서 접근해 보는 게 더 합당하리라 여깁니다.

신문학기 춘원의 글은 계몽적이고 이상주의적이며 설교적, 교훈적인 요소가 강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이 점에서 수필 <우덕송>은 춘원의 작가적 진면모를 더 잘 파악할 수 있지 않을까 여깁니다. 이 작품은 빼어난 어휘력과 상상력이 돋보이고, 해박한 지식을 동원하여 흥미를 효과적으로 드러내고 있으며, 풍성한 수사와 전개 능력은 천재 작가의 면모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우덕송>은 다양한 비유와 열거를 통해 소를 예찬하며, 풍부한 상상력을 동원해 소의 덕성을 여러 동물들과 비교하고 있습니다. 이 작품은 표면적으로는 소의 덕성 예찬이지만, 이면엔 소와 같은 덕성스러운 인간이 되어야 함을 가르치고 계몽하려는 의도로도 파악할 수 있지 않나 여겨집니다.

비록 비유적인 수사지만 교훈의 의도가 밑바탕에 깔려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 점에서 춘원의 일제 치하 때 행적을 이 글과 연계하지 않을 수가 없게 만듭니다. 춘원은 일제 초기엔 역사의 격랑에 맞서 싸웠으나 마침내 일제에게 영혼을 팔아넘기고 만 문인으로서 욕된 행보를 보이고 말았습니다. 당대의 지식인 중에서 가장 이른 1938년에 ‘향산광란’이라는 일제식 이름을 쓴 것은 일제가 창씨개명을 강요하기 2년 전의 일이었습니다. 게다가 <성전 3주년>이라는 일제 찬양 수필이나 논설류인 <민족개조론>이나 <지도자론>에서 조선 민중들이 일제 엘리트지도자 집단에 봉사하는 정신을 지녀야 한다고 역설하기도 했습니다. 결국 조선 민중이 <우덕송>에서 말한 것처럼 무거운 멍에를 지고 밭을 갈다가 나중에 인간에게 피와 살, 가죽을 내주면서 죽는 소와 같이 지배자들을 위해서 살고 죽는 우민이 되어야 함을 은연중에 가르치는 꼴이 되고 만 셈입니다. 물론 새해를 맞아 잡지사의 청탁원고 성격이 강하기에 반영론적인 접근이 무리일 수도 있겠으나, 이 글이 수필인 점과 일제가 무단정치를 감행하던 1925년 1월 《조선 문단》에 발표된 시점도 간과할 수 없습니다. 또한 해방 후 춘원은 자서전을 통해 자신의 변절과 친일 행적을 변호하며 쓴 <민족 수난 완화>라는 글에서도, 친일과 변절을 민족을 위해 자기희생이었다고 변명을 한 점이 이러한 접근을 부추기게 합니다.

즉 <우덕송>은 소를 통해 우리가 지녀야 할 미덕과 덕성을 제시하였지만 이는 인간의 입장에서 소의 덕성을 예찬한 것이지, 소의 입장에서는 희생을 강요당한 셈입니다. 지배자에게 복종을 부추기기 위해서 소를 성인 예수 영웅 대인 애국자로 극찬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싶습니다. 소의 덕성은 단지 소의 본성과 본능일 뿐인데, 다른 동물들의 비하를 통해 인간성에 빗댄 것은 적절한 비유가 아니라는 생각입니다. 이런 점에서 글 끝부분에 만물이 점점 고등하게 진화되어 가다가 소가 되었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말보다는, 차라리 우리가 소에게서 배워야 할 미덕은 ‘반추하는 일’이라고 했던 니체의 말을 우리는 역사적 문학적인 시각에서 더 상기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혹자는 글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아야지 이 같은 접근은 무리이며 비약일 수 있다고 합니다. 물론 그럴 수도 있겠지요. 하여 이처럼 반영론적으로 접근하면서도, 시대의 격랑 속에서 불행하게도 뒤틀려 버린 춘원의 역사적 문학적 상처를 더 덧나게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마음이 개운치 못합니다.

 

사회 : 모든 장르를 망라해서 엄청난 작품을 쓴 분의 변절이었기에 실망이 더 크고, 지금도 논란거리로 남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러면 이제부터 회원 여러분들의 자유토론으로 들어가겠습니다.

이태동 : 저는 사실은 이광수 선생 때문에 문학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웃음)

그때는 <이차돈의 사死>, <흙>이 선구자적 작품임에 틀림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문학에 대해 공부를 하면서 보니까 그 분은 역시 계몽주의의  한계를 넘지 못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그 뒤에 태어난 김동인 선생이 그의 이름으로 시상되는 <김동인 문학상>을 현재까지 이어가고 있는데, 사실 예술적인 차원에서만 본다면 춘원보다 못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톨스토이의 비평론인 <What is Art?>의 입장으로 보면 오히려 더 질타를 받을 정도입니다. 어느 시대에 어떤 사람이 어떤 역할을 한 것은 그대로 받아들여져야 합니다. 그저 근대라고 뭉뚱그려서 연구하지 말고, 19세기면 19세기, 20세기면 20세기로 각 세기별로 연구되어져야 합니다. 우리나라는 지나친 피해의식과 식민지 시대를 살아서 그런지 지난 세월은 깡그리 무시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광수는 사람이고 예술인이지 지사가 아닙니다. 친일했다고 모두 몰아붙이는 것은 지나친 민족주의적입니다.

서구의 경우, Francis Bacon 같은 분은 원래 법률가이고 그의 수필은 상당히 실용적입니다. 현실에서는 그가 없는 사람들을 괴롭혔지만, 문학에서는 대단한 역할을 했습니다. 에즈라 파운드도 스페인에서 무솔리니를 옹호하는 연설을 한 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대학에서 그의 시에 대한 논문들이 수없이 나오고 있습니다. 그것은 그것이고, 예술은 예술이란 겁니다. 또한 <New criticism>적 입장에서는 작품은 작품으로만 보아야지, 작품 외적으로 보면 작품을 망친다는 겁니다.

춘원의 <우덕송>을 보면 이 정도의 통찰력도 갖고 있고 유머도 있는데, 그런 관습적인 시대에서 이렇게 본다는 것은 대단한 겁니다. 저는 이 작품을 상당히 좋다고 봅니다. 하나 아쉬운 것은 이 작품이 인간의 입장에서만 본 것이지 소의 입장에서 본 것은 아니라는 점입니다.

오경자 : 저희는 ‘소’하면 누런 색이 떠오르는데, 왜 처음에 검은 색에 대한 것을 쓰셨을까 이해가 잘 되지 않았습니다.   

박영덕 : 검은 소에 초점을 맞추어서 쓴 것은 시대가 어두운 시절이었기 때문이 아닐까요? 천재적 어휘력과 상상력이 없다면 이런 작품은 쓰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이태동 : 어두운 것과 검은 소가 이미지 상 같아서 그렇게 결부시킨 것으로 보입니다.

최순희 : 저도 <소>하면 누런 소가 떠올라요. 그것이 우직함, 충성, 순종의 이미지와 더 맞는 것이 아닌가요? 검은 소의 미덕을 한 장 반이나 썼는데, 검은색의 나쁜 점을 나열하다가 다시 그 미덕을 얘기하는데, 이런 구성에 대해 불만이 있습니다.  

또 연보에서 춘원 선생이 천도교에서 기독교로, 그리고 다시 불교로 종교가 바뀐 것으로 나오는데, 이 작품은 철저히 기독교적인 것이 아닌가 싶어요.

“아아! 다 이루었다”같은 문장은 예언자, 선지자의 얘기가 아닌가요?

저는 소의 입장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철저히 희생적이어서 너무나 많은 빚을 지고 있는 동물이죠. 읽으면서 참 미안했습니다. 그리고 소를 돋보이게 하기 위해서 다른 동물을 굳이 폄하한 것은 좋지 않았습니다.

이태동 : 검은 색은 더럽고 천하게 보여서 우리가 싫어하는 색이지만, 사실 빛은 어둠에서 나오는 것이거든요.

최순희 : 우리 신화에서 ‘검은 소’를 그렇게 보았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남민정 : 옛날의 소에 비해 지금의 소들은 번호표를 단 우리에서 사육되잖아요. 그래서 이제는 <우덕송>과 같은 작품은 다시는 나오지 않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우리에 있는 소나 논밭을 매던 소의 품성은 변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우덕송에 나오는 성실하고 근면한 소의 품성을 이 시대에 사는 사람들이 가끔은 생각하며 반추해 보면, 세상을 살아가는데 좀 낫지 않을까 싶습니다. 제게는 의미가 큰 작품이었습니다.   

최숙희 : 이 분의 소설을 읽고 자란 사람으로서 이 작품을 읽으면서 흠 잡을 데가 없나 하고 살펴보았는데, 짧은 것에 비해 많은 이야기를 썼습니다. 저는 이 분이 이 작품을 아마 청탁에 의해 쓰신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면을 메우느라 죽죽 써내려 가신 것 같아요. 퇴고를 한다든가 하는 성의를 가지고 쓴 것은 아닌 것으로 보입니다.

김녹희: 읽으면서 이광수 선생이 아는 게 많다고 느꼈습니다.

“아아! 다 이루었다.”라는 대목에서 저는 너무 인간의 입장에서만 쓴 것이 아닌가 싶었고, 약간 끔찍한 생각마저 들었습니다.

김선화 : 저는 이 작품에서 구성을 살펴보았습니다. 소의 덕을 논한다고 해 놓고 앞에서 검은 소에 관한 얘기가 많이 나오는데, 저는 그보다는 전반적인 소를 쓰다가 뒤에 검은 소 얘기를 썼으면 더 좋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그리고 “파리야, 달아나거라…… 더욱 성인의 극치인 듯하여 기쁘다.”가 한 문장으로 되어 있는데, 너무 긴 것 같아요. 시대적 암흑기에 우리가 억눌렸다는 것을 염두에 두고 읽을 때 충직한 사랑, 희생하는 사랑으로 볼 수 있지만, 사람이 소의 입장으로 봤다고 해도 너무 작위적이에요.   

“아아, 어리석과저…… 병신 하나라도 속이지는 말과저.” 같은 부분은 메시지가 많고, 민초들에 대한 연민도 많았으며, 선생의 인간적인 면이 많이 느껴졌습니다.

신현복 : 저는 검은 소를 한 번도 본 적이 없지만, “검은 빛에서 푸른 빛이 난다.”는 부분은 공감이 갑니다. 읽으면서 나이가 드셨을 때 쓰신 것으로 느꼈는데, 33세에 썼다고 해서 놀랐습니다. 어떻게 이런 글을 쓰셨나. 참 대단한 분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박영자 : 고등학교 때에 <유정>, <무정>을 읽다가 혼난 일이 생각납니다 (웃음). 그땐 꾸중을 들어도 좋았고, 이 분이 독자에게 준 흡인력은 대단했죠. 앞에서 검은 소에 대한 얘기가 많이 나왔지만, 이광수 선생이 검은 색보다는 푸른색에 대한 설명을 하려고 한 것으로 생각됩니다. 검은 색 바탕에 청색이 있다는 것에 초점을 두었으면 더 좋았을 것 같아요.

“파리야, 달아나거라. 내 꼬리에 맞아 죽지는 말아라.”는 부분은 아주 유머가 넘쳤지만, “성인의 극치인 듯하여 기쁘다.”같은 구절은 마음에 굉장히 걸렸습니다. 왜 기쁜가? 이해하기 어려워요.

김소경 : 이광수 선생은 천재요, 선구자이자 예술가이십니다. 검은 소는 당신이 쓰고 싶으신 대로 쓴 것이 아닌가. 그 시대는 농경시대니까 소를 소재로 한번 잡아서 쓰신 것 같습니다. 하지만 성인으로까지 미화한 것은 너무 의미확대를 한 것이 아닐까요?

 

사회 : 그러면 마지막으로 회장님께서 총평을 해 주시지요.

허세욱 : 먼저 총평 전에 오늘 아침 김태길 선생과 통화했는데, 참석을 못하시지만 대신 몇 가지 감회를 말씀해 주셨습니다. 김태길 선생님은 “그렇게 성공한 것으로 보이지는 않습니다. 첫째, 이 글은 청탁에 의한 원고로 보입니다. 그래서 구성의 지루함과 무리함이 있습니다. 둘째, 문체가 부자연스럽습니다. 한때 저도 이 작품을 좋아했는데 이번에 다시 읽으니까 그런 느낌이 듭니다.”라고 하셨습니다.

이 작품은 우선 제목부터 따져보자면 ‘송頌'이라는 말은 중국의 위진 시대에 육기의 문부文賦에 나오는 문체의 한가지 입니다. 그는 산문의 장르를 11개로 나누었는데, 이게 그 중의 하나입니다. ‘송頌’은 굉장히 지식을 나열하고 상대를 추켜올리는 문체입니다. 이 송이 발달할 때에는 한·위 시대인데, 부賦가 성행했어요. 부는 어찌 보면 오늘날의 수필에 해당되는 말로 있는 것을 그대로 스케치하는 겁니다. 그럼에도 이 부는 여러 가지를 연결시키는 포진의 역할을 했죠. 춘원이 이 글을 1925년에 썼다고 해도 그가 당시 이미 한문학에 조예가 깊었으므로, 이런 문체를 응용한 것으로 보입니다.

또한 이 <우덕송>은 1925년에 쓴 것으로만 평가해야 합니다. 그 뒷날의 이야기로 들으면 상당히 우울해지죠. 예술과 사상, 도덕을 연계시킬 때 모든 사람이 자유롭지 못하죠. 과거를 청산하지 못한 채 그대로 전습하는 경우처럼….

아까 김태길 선생님께서 그 구성에 무리가 있었다고 지적하셨는데, 특히 그 빛깔 론은 이 전체 분량의 삼분의 일 정도가 되더군요. 이 작품만 얘기해 보면 검은 소를 한자를 빌어 ‘청우靑牛'라고 했습니다. 그 빛깔 부분을 보면 세 단계로 볼 수 있습니다.

첫째, 까만 소를 청우라고 해서 청에 대한 이야기로 처음엔 흑의 단점을 얘기 했고, 다음에 청에 대한 좋은 점을 얘기하다가, 마지막에 또 다시 흑에 대한 장점이 있다고 써서 반전하는 논리로 결국은 끌고 갑니다. 둘째는  소를 성인으로 칭송한 것은 문학적인 효과를 위한 표현일 뿐 소의 제재를 그 분의 친일 행위와 연결시킬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셋째, 백철 선생의 말이 맘에 와 닿습니다. “인간은 약하고 예술은 강하다.” 약하게 흔들렸던 춘원의 인생을 생각하면 마음이 아픕니다.

다만 1925년의 이 글을 통해서만 본다면 계몽성도 강하고 표현도 좋은 작품입니다. 또 23~24개의 동물이 이 글에서 표현됐는데, 그 인상적인 필법은 춘원 같은 천재가 아니면 누가 하겠는가. 저는 1925년의 작품으로는 성공적이라고 생각됩니다.

끝으로 이 합평 <집중조명>은 우리 잡지의 간판입니다. 그래서 조금 내용을 줄여서 압축하여 더 질 높고 사상성이 높은 이야기가 이 잡지를 통해서 우리나라에 보급됐으면 하는 바람이 있습니다.       

사회 : 여러 측면에서 심층 있고 진지하게 토론을 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