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길 교수의 철학에세이④|

 

작금昨今의 심정

 

 

                                                                               김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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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6년 봄에 정년停年을 맞게 되어, 다년간 봉직했던 서울대학교를 떠나게 되었을 때, 내 마음은 크게 흔들리지 않았다. 비록 서울대학을 떠나더라도 내가 할 일은 찾아보면 여기저기 있을 것이라는 일종의 낙관樂觀이 상존尙存했던 것이다. 그러나 지난 8월 25일에 대한민국 학술원의 회장직 임기를 마치고, 작별 인사를 나누었을 때의 내 심정은, 크게 달랐다. 간단하게 낙관할 상황이 아님을 직감적으로 느낀 것이다.

조용히 눈을 감고 내가 앞으로 할 수 있는 일을 생각해 보았다. 아직 제대로 다룬 바 없는 주제主題 하나를 대상으로 삼고 책 한 권을 저술한다면, 그것은 제법 뜻있는 일이 될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90 고개를 눈앞에 맞이하게 된 늙은이가 함부로 손을 댈 수 있는 과제가 아니다. 젊은 후배 학자와 손을 잡으면 가능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내가 종사해 온 철학 분야에 있어서, 합동 연구를 성공적으로 수행한다는 것은 젊은 학자들의 경우에도 쉽지 않은 일이다.

수상 류의 저술이라면 나 혼자서라도 가능할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수상류의 글은 이미 발표한 것만 하여도 적은 분량이 아니다. 이미 발표한 것과 근본적인 차이가 없는 수상록 따위를 새삼스럽게 하나 더 내놓는 것은, 필자를 위해서나 독자를 위해서나, 별로 바람직한 일이 아니다.

 

2

내가 두 권으로 된 회고록 《체험과 사색》을 세상에 내놓은 것은 1999년 8월이었다. 손을 꼽아보니 그 뒤로 흐른 세월이 약 25년 쯤 된다. 이 25년 동안에도 적지 않은 경험을 했다. 그 경험들을 잘만 기록한다면, 그런대로 뜻있는 물건이 나올 가능성도 없지 않다. 문제는 나의 건강이 어느 정도 유지될 수 있는지에 달려있다. 건강만 좋다면 일을 할 수 있는 길은 앞으로도 아직 많이 남았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90 고개를 바로 눈앞에 바라보게 된 늙은이의 건강은 아무도 장담하기 어렵다. 생물학적 노화老化 현상은 불가피한 필연이므로 그저 편안한 마음으로 웃으며 받아들일 수 있다면 그것으로 족할 것이다. 그러나 범인으로서는 자신의 노화 현상을 웃으며 받아들인다는 것이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웃으며 받아들이도록 힘써야 할 과제이다.

 자신의 노화 현상을 웃으며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자신의 노화 현상이 어느 지경에 도달했는지를 제대로 알아야 한다. 그러나 그것을 제대로 헤아린다는 것이 생각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육체적 노화는 대체로 서서히 다가옴으로 자신의 노화 현상이 어느 지점을 통과하고 있는지 짐작할 수 있으나, 정신적 노화는 갑자기 뚝 떨어지듯이 찾아옴으로 그것을 헤아리기가 쉽지 않다.

 나의 경우는 정신적 노화 현상이 이미 오래 전에 와 있었다. 그러나 그것을 한 동안 모르고 살아 왔다. 알기 쉬운 예로서는 내가 원고를 쓸 수 있는 능력이 떨어진 지는 이미 오래나, 나는 그것을 모르고 한 동안 살아 왔다. 내가 지금 원고지를 앞에 높고 끙끙대면서 비로소 내가 원고를 쓸 능력을 잃은 지 오래라는 것을 깨달았다.

원고지에 담는다고 모든 글이 원고라고 보기는 어렵다. 읽을 가치가 없는 것은 엄밀한 의미로는 이미 원고가 아니다.

인간도 일종의 생물이므로 노화 현상을 피할 도리가 없다. 불가피한 것이므로 웃으며 받아들여야 한다. 웃으며 받아들여야 마땅하나, 그렇게 하기가 쉬운일이 아니다.

자신의 노화 현상을 웃으며 받아들일 수 있을 때, 인간은 성숙한 삶을 갖게된다. 내가 성숙한 삶을 갖게 되는 것은 어느 때 쯤에 가능할 것인가. 쉽게 헤아리기 어려워서 앞길이 아물아물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