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운 얼굴, 다시 읽는 글⑩ |

 

박연구편

 

                                                                               - 해설 : 고봉진

내가 매원梅園을 처음 만난 것은 〈수필문우회〉의 동인 사이가 되기 전 한국일보사에서였다.

매원은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수필부문이 남아 있던 시절에 작품 심사위원을 했었고, 1984년 한국일보사에 문화센터가 개설되자 <수필강좌>를 맨 처음 담당했었다.

매원의 첫 인상은 몸도 마음도 어딘가 여리게 보이는 분이었다. 그러나 가까이 대해 보니 전혀 딴판이어서, 체력도 학창 시절 기계체조로 잘 단련된 분이었고 정신력도 대단히 강인한 분이었다. 특히 수필을 쓰고 사랑하는 선비로서의 열정과 자긍심이 그 누구보다 강해 깊은 감명을 받았다.

매원은 시골 농촌의 가난한 집 맏이로 태어나 어려운 상황에서 공부를 했다. 전란으로 중학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했지만, 명문 광주고등학교에 입학해서 거뜬하게 졸업했다. 그 뒤 잠시 향리의 초등학교에 내려가 교편을 잡은 이력을 빼놓으면, 수필 쓰기에 일평생을 일이관지一以貫之한 분이었다. 그러나 무슨 경우에도 자신의 가난을 불편해 한 적이 없었고, 자신의 학력이 문학을 하는데 불충분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래서 누구 앞에 나가도 언제나 당당했다. 성신여대 《대학국어》에 자신의 수필작품 〈셋째 딸의 패션〉이 수록되자, 문화센터에 강의를 나온 길이라며 내 사무실에 짐짓 들려, 대학을 나오지 않은 사람의 글을 대학에서 대학생들에게 가르치려 한다며 아주 흔쾌해 하는 모습을 보였다.

매원은 많은 수필가를 키웠다. 수필교실을 통해 여러 사람을 지도해서 등단시킨 것은 말할 것도 없고, 등단한 사람들에게도 지속적으로 작품을 발표할 지면을 알선해 주어, 속칭 〈박연구 수필사단〉의 대부 역할을 단단히 했었다.

또 여러 출판사에서 우리나라 수필계의 작품을 집대성하는 작업도 했다. 범조사에서 《한국수필문학대전집》 전20권을 간행할 때 편집을 주관했고, 범우사에서는 직접 몸을 담고 우리나라 최초의 수필문고인 《범우에세이문고》 전 120권을 기획편집했으며, 금성출판사의 《한국수상록》전36권 간행에도 직접 깊이 관여했었다.

그러나 그 무엇보다도 높이 평가해야 할 일은 〈수필문학진흥회〉의 계간지 ‘에세이문학’을 놀랍게 성장 시킨 공적이라고 하겠다. 편집인일 때도 그러했지만 발행인을 맡게 되자 잡지에 게재하는 모든 원고의 최종교정은 직접 봤고, 납득이 가지 않는 단어나 표현이 있으면 일일이 작가에게 전화를 걸어 확인을 했다. 광고지면 판매에도 직접 나섰고, 보급 업무도 일일이 챙겼다.

그렇게 정력적으로 일하던 분이 뜻밖의 병마로 너무 일찍 그 사랑하던 수필을 뒤로 하고 떠났다. 매원을 잃은 것은 우리 수필 문단의 커다란 아픔이고 상실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다시 읽는 작품으로는, 평소에 매원이 자신의 명함 대용으로 들고 다니던 《범우문고》 수필집의 표제작 〈바보네 가게〉와 위에서 언급한 〈셋째 딸의 패션〉을 골랐다. 선정 이유에 대해서는 췌언이 필요 없으리라고 생각한다.

 

 

 

바보네 가게

 

우리집 근처에는 식료품 가게가 세 군데 있다. 그런데 유독 ‘바보네 가게’로만 손님이 몰렸다.

‘바보네 가게’―어쩐지 이름이 좋았다. 그 가게에서 물건을 사면 쌀 것같이만 생각되었다. 말하자면 깍쟁이 같은 인상이 없기 때문에, 똑같은 값을 주고 샀을지라도 싸게 산 듯한 기분을 맛볼 수 있었다.

나는 아내에게 어째서 ‘바보네 가게’라고 부르는 가고 물어 보았다. 지금 가게 주인보다 먼저 주인의 집에 바보가 있었기 때문에 다들 그렇게 불러 오고 있는데, 지금 주인 역시 그 이름을 싫지 않게 여기고 있다는 것이다. 그 집에서는 콩나물 같은 건 하나도 이를 보지 않고 딴 가게보다 훨씬 싸게 주어 버려 다른 물건도 으레 싸게 팔겠거니 싶은 인상을 주고 있다는 거다.

어느 작가의 단편 <상지대商地帶>의 이야기가 생각난다. 똑같은 규모의 두 가게가 마주 대하고 있는데, 계산에 밝은 인상의 똑똑한 주인의 가게는 파리만 날리고 바보스럽게 보이는 주인의 가게는 손님이 많아 장사가 잘되었다. 도대체 그 이유가 무엇일까?

바보 주인의 상술인즉 이러했다. 일부러 말도 바보스럽게 하면서 행동을 하면 손님들이 멍텅구리라 물건을 싸게 주겠거니 하고 모여든다는 것이다. 사람마다 자기가 똑똑하다는 걸 인식할 때 매우 만족스럽게 생각한다는 심리를 역으로 이용한 거다.

바보와 비슷한 이름이 여러 개 있다. ‘멍텅구리 상점’ ‘돼지 저금통’ ‘곰 선생’―이 얼마나 구수하고 미소를 자아내는 이름들이냐.

‘멍텅구리 상점’은 ‘바보네 가게’와 비슷하니 설명을 생략하고 ‘돼지 저금통’, ‘곰 선생’을 이야기해 보자.

우리집에 돼지 저금통이 몇 개 있다. 돼지 꿈을 꾸면 재수가 좋다는 말도 있듯이 집에서 남자 아이들을 흔히 애칭으로 ‘돼지’라고 부르는 걸 볼 수 있다. 돼지는 아무 거나 잘 먹는 소탈한 성품이어서 자손이 귀한 집 아들 이름을 돼지라고 하는 수가 있다.

우리 아이들은 내가 신발 닦은 값이라도 주면 눈꼬리가 길게 웃고 있는 돼지 저금통 안에 넣어 주지 않을 도리가 없는 모양이다. 내 아내도 50원짜리 동전을 꼭꼭 자기 돼지 저금통에 넣어 오고 있다. 그래서 나는 50원짜리 동전이 생기면 퇴근 후에 웃옷을 받아드는 아내의 손바닥에 한 닢 혹은 두 닢을 놓아 주는 것이 즐거움의 하나가 되었다.

돼지를 미련한 짐승으로 보지만 그렇지만도 않다. 우악스럽게 기운이 센 멧돼지가 힘을 내면 호랑이도 잡는다. 아무리 영악스런 호랑이지만 멧돼지가 어느 순간을 보아 큰 나무나 바위에 대고 힘대로 밀어 버리면 호랑이는 영락없이 죽고 만다.

바보스런 웃음으로 우리 아이들과 내 아내의 동전을 주는 대로 삼킨 돼지 저금통이 어느 땐가 위력을 부리면 급병이 난 식구를 구해 줄 수도 있다고 믿어질 때, 더없이 애착이 간다.

누구나 학교 다닐 때 ‘곰 선생’이란 별명을 지닌 선생님을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우직스러운 듯하지만 한없이 좋은 선생님이 아니던가. 그러나 이 선생님이 화나면 그 어느 선생님보다도 무섭다.

곰은 절대로 미련한 짐승이 아니다. 둔한 동작으로 시냇물 속을 거닐다가 물고기가 나타나면 앞발을 번개같이 놀려 잡아낸다. 파리채로 파리를 잡듯이 그 넓적한 발바닥으로 물탕을 치는 동작이야말로 ‘곰’이 아니라 하겠다.

친구를 사귈 때에도 너무 똑똑한 사람은 어쩐지 접근하기가 망설여진다. 상대방에게서도 만만한 데가 보여야 이쪽의 약점과 상쇄가 가능해서 허물없이 교분을 틀 수가 있는 법이다. 그런데 저쪽이 빈틈이 없는 사람이라면 항상 이쪽이 못난 놈으로만 비칠 것 같아 싫을밖에.

세상의 아내들도 조금 바보스럽거나 일부러라도 바보스럽기를 바라고 싶다. 이 말에 당장 화를 내실 분이 있을 듯하다. 어떤 못난 남자가 제 아내가 바보스럽기를 바랄 것이냐고. 옳은 말씀이다. 내가 말하려는 바보는 그런 통념의 바보가 아니다.

특히 남자들은 직장에서 항상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 바보 취급받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것이지만 경쟁 의식은 노이로제 증상을 일으키고 열등감으로 피로가 겹친다. 이 샐러리맨이 가정에 돌아가면 또 아내라는 사람에게 신경을 써야 한다. 연탄값·쌀값·학비·의복비 등 수없는 청구서를 내밀면서 지난달에도 얼마가 적자인데 언제까지고 이 모양 이 꼴로 살아야 하느냐고 따지면 무능한 가장은 더욱 피로가 겹친다. 쉴 곳이 없다. 이런 경제 능력 말고도 똑똑한 아내에게 이론에 있어서 달리면 열등 콤플렉스가 되어 엉뚱한 짓을 저지르기 쉽다.

내 생각으로는 대부분의 우리 아내들이 짐짓 바보인 척하는 것 같다. 유행에 둔감한 척 의상비를 자주 청구하지 않는 거는 남편의 수입을 고려함이요, 무슨 일로 기분이 상했는지 대포 몇 잔에 호기를 부리고 대문을 두드리면 영웅 대접하듯 맞아들이는 매너야말로 활력의 활력의 ‘충전充電' 바로 그것이라 하겠다.

어쩌면 내 집이 바로 ‘바보네 가게’가 아닌가 한다. 돈은 물론 무엇이든 부족하게 주는 나에게 반대 급부가 너무 융숭했기 때문이다. 여섯 살짜리 막내딸아이는 10원만 주어도 아빠에게 뽀뽀를 해 주고 그리고 또….(1973)

 

 

 

셋째 딸의 패션

 

나의 셋째 딸은 우리 집 패션모델이다. 입는 옷이 매일 달랐지만, 그때마다 새로운 얼굴을 보여주어서 “옷이 사람을 만든다”는 말을 실감한다. 그만큼 그 옷이 그 아이에게 잘 어울려 보인 것이다.

우리 집 사정을 잘 모르는 사람은, 부자집 딸인가 보다고 하겠지만, 사실은 그 옷들이 전부 남의 것일 뿐이다. 대학 3학년인 셋째 딸은 위로 두 언니들이 출근을 하고 나면 큰언니 방, 작은언니 방을 왔다 갔다 하면서 제 맘에 드는 걸로 입어보고 거울 앞에서 패션쇼를 벌인다. 언니가 모처럼 ‘과지출’을 해서까지 산 것으로 알고 있는 ‘비싼 옷’을 입고 나갔을 적에는 임자가 퇴근을 하기 전에 들어온다고 제 딴엔 서둘러 귀가를 한다는 것이 그만 들키고 마는 경우가 있다.

이때 아내와 나는 좀 난처해진다. 두 자매 사이에 옷 문제로 다투기라도 한다면 그 어느 편도 역성 들어줄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참 이상한 일이다. 언니 되는 딸아이는 동생 되는 딸아이의 새로운 얼굴을 보고 남의 옷 입었다고 나무라기는커녕 패션모델에 대한 사례를 못해 주어서 미안하다고 말하는 것이 아닌가.

큰아이는 말할 것도 없고 둘째아이도 자기들이 입으려고 산 옷을 우선 동생에게 업혀보고 (사실은 동생이 향상 주인 몰래 입어보는 것이지만), 모종의 패션에 대한 자신을 갖게 되는 것 같다. 그만큼 사람들은, 특히 여자들은 옷에 대한 관심도가 높을뿐더러 그에 비례해서 지적知的인 성숙을 위한 자기 노력에도 관심이 크다고 하는 사실을 알게 된 셈이다.

직장에서 하는 일과도 관련이 있다고는 하지만 큰 아이의 외국어 학습에 대한 열성, 그리고 둘째 아이의 학교 교사로서의 책무에 따른 교과 지도안 작성에 골몰하는 모습 등을 대할 때에는 더없이 유쾌하다.

사람들은 매일같이 자기를 표현하고 산다. 말을 하는 것도 옷을 입는 것도 자기가 지니고 있는 것만큼을 표현하고 산다.

“딸을 시집보내려거든 지참금 대신 말을 가르쳐 보내라.”

프랑스의 속담으로 알고 있거니와 사람이, 특히 여자가 말을 잘한다는 것은 사랑 받기에 충분한 조건 하나를 갖춘 셈이다.

말이나 옷이나 남에게 알려지게 된다는 점에서는 공통점을 갖는다. 그러므로 말은 ‘보이지 않는 마음의 의상’인 것이고, 옷은 ‘보이는 마음의 언표言表’가 아닌가 한다.

거리에 나가보면 옷이 말을 하고 있다는 것을 너무나도 잘 실감할 수 있다. 서울 거리, 그 중에서도 번화한 거리를 가다 보면 마치 패션쇼를 보는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그만큼 오늘날 사람들, 여자들의 패션은 다양해져서 나처럼 그런 것에 둔감한 사람도 결코 무심할 수 없게 된다.

옥양목 흰 저고리와 검은 치마가 여자의 의상으로 제일인 것 같다고만 생각했던 시절, 그래서 사윗감 선을 보러 오신 장언어른께서, 신부에게 벨벳 치마저고리 한 감 해줄 수 있겠느냐고 나에게 다짐까지 하시던 옛 기억이 되살아나서……

산업사회의 발달로, 특히 섬유산업의 발달로 오늘 날의 사람들, 여자들은 마음껏 자기의 아름다움을 표현해볼 수 있게 되었다. 색상이 다양해지고 디자인 역시 다양해져서 여자들은 자기의 개성에 맞추어서 마음대로 옷을 선택할 수 있다고 듣는다. 또한 오늘날의 여성들은 그 다양한 옷을 자기에게 잘 어울리도록 소화하는 능력도 갖추고 있는 듯이 보인다. 그것은 평소 자기의 내면세계를 위한 노력도 게을리 하지 않았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늘 자기를 새롭게 내보일 수 있는 노력과 표현 의지야말로 인생을 값있게 살 수 있는 지혜가 아닐 수 없다.

“딸을 시집보내려거든 지참금 대신 옷을 멋있게 입을 줄 아는 지혜를 가르쳐서 보내라.”

나의 이 말에 오해 없기를 바란다.

의상 비를 너무 많이 지출해서 가계부에 적자를 내라는 얘기는 아니다. 자기 분수에 맞게 옷을 해 입되 그 옷이 그지없이 ‘아름다운 여인’으로 표현되었을 때 그 임자가 바로 옷을 잘 입을 줄 아는 여자다. 그런 여자의 주변에는 항상 행복의 분위기가 감돌게 마련. 나는 그 행복의 분위기를 사랑하는 사람일 따름이다. (198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