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명산문①|해설 : 정덕애

 

과거에 대한 스케치 1)

 

                                                                          버지니아 울프

이틀 전―정확히 말하면 1939년 4월 16일 일요일―네사는 만약 내가 지금 회고록을 쓰기 시작하지 않으면 곧 너무 나이가 들어버릴 거라고 말했다. 레이디 스트래치의 불행한 경우가 보여주듯이 여든다섯 살이 되면 모든 것을 잊어버릴 것이다. 사실 로저의 생애에 대해 쓰느라고 싫증이 나 있었기 때문에 나는 한 이틀이나 사흘 간 오전 동안 과거에 대한 스케치를 하려고 한다. 그런데 여러 가지 어려움이 있다. 첫째는 내가 기억할 수 있는 일이 엄청나게 많다는 점과, 둘째는 회고록이 여러 다른 방법으로 씌어질  수 있다는 점이다. 내 자신이 회고록을 즐겨 읽는 독자이기 때문에 나는 여러 다른 방법들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만약 회고록들을 검토하면서 그 장점과 단점을 분석하려 한다면 아침나절들은―기껏해야 나는 이삼 일밖에는 시간이 없기 때문에―모두 다 흘러가버릴 것이다. 그래서 내 나름대로의 방법을 찾기 위해 멈추는 일 없이, 그리고 스스로 방법을 찾아가리라는 확실한 어떤 지식을 가지고, 또는 만약 그렇지 않다 해도 그건 문제가 되지 않기에 나는 시작한다. 나의 첫 기억.

이것은 검은 바탕의 빨간 자줏빛 꽃에 대한 것이다―그것은 어머니의 옷이었다. 어머니는 기차 아니면 옴니버스 안에 앉아 계셨고 나는 어머니의 무릎에 있었다. 그러므로 어머니가 입고 계신 꽃무늬를 나는 아주 가까이에서 보았다. 그리고 아직도 검은 배경에 자주색과 붉은 색 그리고 푸른색을 볼 수 있는데 아마 그것은 아네모네였을 것이다. 아마도 우리는 세인트 아이브스로 가고 있었나보다. 빛으로 짐작하건대 그때는 저녁이었으므로 우리가 런던으로 돌아오던 중이었을 가능성이 더 많다. 하지만 우리가 세인트 아이브스로 가고 있다고 가정하는 것이 예술적으로 더 편리하다. 왜냐하면 그것은 내가 기억하는 최초의 것, 즉 또 다른 추억으로 이끌기 때문이며 사실 이것은 나의 모든 추억 중 가장 중요한 것이기도 하다. 만약 인생이 어떤 기초 위에 서있다면, 만약 인생이 채우고 또 채워지는 단지와 같다면―그렇다면 나의 단지는 분명히 이 기억 위에 서 있다. 그것은 세인트 아이브스의 육아실의 침대 위에서 반은 잠들고 반은 깨어 있는 상태로 누워 있는 것이다. 그것은 또한 파도가 하나, 둘, 하나, 둘 하고 깨지면서 해변에 물을 철썩 튀기고 그리고 다시 하나, 둘, 하나, 둘 하고 깨지는 소리를 노란 블라인드 뒤에서 듣는 것이다. 그것은 바람이 블라인드를 밖으로 불어제칠 때 블라인드가 그 작은 도토리 같은 꼭지를, 마루를 가로질러 끌어당기는 소리를 듣는 것이다. 그것은 누워서 이 철썩이는 소리를 들으면서 이 빛을 보는 일, 그리고 내가 여기 있다는 것이 거의 불가능한 일이라고 느끼면서 내가 생각할 수 있는 가장 순수한 희열을 느끼는 일이다.

― 중략 ―

 〔…〕

어린애로서 나의 나날들은 지금도 그러하듯이 이 비존재라는 거대한 양의 솜 뭉치를 내포하고 있었다. 세인트 아이브스에서 여러 주일을 지냈지만 아무것도 내 기억에 흔적을 남기지 않았다. 그러다가 내가 알 수 없는 어떤 이유에서 갑작스럽게 격렬한 충격이 왔다. 무슨 일인가가 너무나 격렬하게 일어나서 나는 그것을 일생 기억한다. 몇 가지 예를 들어보겠다. 먼저, 나는 잔디위에서 토비와 싸우고 있었다. 우리는 서로에게 주먹질을 해대고 있었다. 내가 주먹을 들어 오빠를 막 치려 하는 순간 나는 왜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주는가라고 느꼈다. 나는 즉시 손을 내리고 거기 서서 오빠가 나를 때리도록 내버려두었다. 나는 그때의 느낌을 아직도 기억한다. 그것은 절망적인 슬픔의 느낌이었다. 그것은 마치 내가 뭔가 끔찍한 것을, 그리고 내 자신의 무력함을 알아차리게 된 것 같았다. 나는 엄청나게 상심한 채 남을 피해 홀로 나갔다. 두 번째 경우 역시 세인트 아이브스 정원에서였다. 나는 현관 앞의 꽃밭을 보고 있었다. “이건 온전하다”라고 나는 말했다. 잎이 펴진 식물을 나는 보고 있었는데 그 꽃 자체가 땅의 일부라는 사실, 그리고 그 꽃을 원이 둘러싸고 있으며 그것이 진짜 꽃이라는 점, 부분적으로 땅이고 부분적으로 꽃이라는 점이 갑자기 분명해졌다. 그 생각을 나는 후에 매우 유용할 것 같다고 생각하며 따로 넣어놓았다.2) 세 번째 경우 역시 세인트 아이브스에서였다. 발피라고 불리는 어떤 사람이 세인트 아이브스에 머물다가 떠났다. 어느 날 저녁 식사를 기다리고 있는데 나는 우연히 아버지가 어머니에게 발피가 자살을 했다고 말하는 소리를 들었다. 내가 기억하는 다음 일은 밤에 정원에서 사과나무 사이로 난 길을 걷고 있을 때였다. 사과나무는 발피 씨의 자살과 관련되어 있는 것처럼 보였다. 나는 지나갈 수 없었다. 나는 거기 서서―그때는 달빛이 비치는 밤이었다―껍질의 흐릿한 초록빛의 갈라진 틈을 공포의 전율 속에서 쳐다보았다. 나는 헤어날 수 없는 어떤 절대적인 절망의 구렁텅이로 희망 없이 끌려 내려가는 것 같았다. 내 몸이 마비된 것 같았다.

 〔…〕

“아버지가 어떻게 엄마한테 결혼하자고 청혼했어요?” 한번은 내가 어머니의 팔짱을 끼고 식당으로 가는 구부러진 계단을 내려가면서 물었다. 어머니는 반은 놀라고 반은 충격을 받으신 듯 가는 웃음 소리를 내었다. 그리고 대답하지 않았다. 아버지가 편지로 어머니께 물었다. 그리고 어머니는 거절하였다. 그런 후 결혼에 대한 생각을 완전히 포기해버린 어느 날 밤 아버지는 어머니와 식사하시다가 로라3)의 가정교사에 대한 조언을 어머니에게 구했고 어머니는 문가로 아버지를 따라 나오면서 “제가 당신의 좋은 부인이 되지요”라고 말씀하셨다.

아마도 어머니의 사랑에는 측은한 마음이 있었나보다. 확실히 아버지의 지성에 대한 심오한 존경이 있었다. 그래서 어머니는 두 사람의 남성과 두 번의 결혼 생활을 하게 되었다. 8년간의 침묵의 세월이란 낭하로부터 나와 15년간을 더 아버지와 사셨다. 네 명의 아이를 낳고 1895년 5월 5일 아침 일찍 돌아가셨다. 조지가 작별 인사를 하라고 우리를 데리고 내려갔다. 우리가 들어갈 때 아버지는 비틀거리면서 침실에서 나오셨다. 나는 팔을 뻗어 아버지를 잡으려 했지만 아버지는 내가 알아들을 수 없는 무엇을 울부짖으시면서 미친 듯이 내 앞을 밀치고 나가셨다. 그리고 조지는 어머니에게 키스하라고 나를 데리고 갔다. 어머니는 방금 돌아가셨다.

 〔…〕

타월로 둘러싸고 각각 브랜디 한 방울씩을 탄 따스한 우유를 마시고 조지에게 이끌려서 우리는 침실로 갔다. 촛불이 타고 있었던 것 같다. 그리고 해가 떠오르고 있었다고 생각된다. 여하튼 나는 양쪽에 서랍이 있던 길다란 거울이 기억난다. 그리고 세면대, 그리고 어머니가 누워 계시던 거대한 침대, 간병인이 흐느끼는 모습을 내가 침대 옆으로 이끌려 가면서도 보았던 사실을 분명히 나는 기억하며 웃고 싶은 충동이 떠올랐으나 위기의 순간에 내가 했던 것처럼 나는 자신에게 “나는 아무것도 느끼지 않는다”라고 말한 것이 생생하게 기억이 난다. 그리고 나는 몸을 숙여 어머니의 얼굴에 키스를 했다. 그것은 여전히 따스했다. 어머니는 방금 전에 돌아가셨다. 그리고 우리는 위층의 육아실로 갔다.

아마 다음날 저녁인지 어머니께 마지막 키스를 하라고 스텔라가 나를 침실로 데리고 갔다. 어머니는 이전에는 옆으로 누워 계셨는데 이제는 베개 한가운데에 똑바로 누워 계셨다. 어머니의 얼굴은 측량할 수 없을 정도로 멀고 공허하고 근엄해 보였다. 내가 어머니에게 키스했을 때 그것은 차가운 쇠에 키스하는 것 같았다. 내가 차가운 금속을 만질 때마다 그 느낌이 내게 되살아난다―쇠처럼 차갑고 까슬까슬한 어머니의 얼굴의 느낌. 나는 놀라 뒤로 물러섰다. 그러자 스텔라는 어머니의 뺨을 쓰다듬으면서 잠옷의 단추를 하나 풀었다. “어머니는 항상 그렇게 하시는 것을 좋아 하셨어”라고 그녀는 말했다. 나중에 스텔라는 육아실로 와서 나에게 “미안해. 난 네가 겁내는 것을 보았어”라고 말했다. 언니는 내가 깜짝 놀랐던 것을 알고 있었다. 나에게 그 충격을 준 것을 스텔라가 용서해달라고 말했을 때 나는 울었다―우리는 하루 종일 울다가 그치다가 했었다―그리고 나는 “내가 엄마를 보니까 엄마 옆에 한 남자가 앉아 있었어”라고 말했다. 스텔라는 마치 내가 겁을 주기라도 한 양 나를 쳐다보았다. 내가 주의를 끌기 위해 그 말을 했을까? 아니면 그것이 사실이었을까? 확실치가 않다. 왜냐하면 나는 관심을 끌고자 하는 거대한 욕심이 있었으니까. 그러나 스텔라가 “나를 용서해줘”라고 말할 때, 그래서 나로 하여금 어머니를 떠올리게 만들었을 때 나는 침대 끝에 숙이고 앉아 있던 남자를 본 듯싶었다.

“어머니가 홀로 안 계셔도 되니 좋구나”라고 잠시 후 스텔라는 말했다.

 

 

 

|해설|

 

버지니어 울프는 1882년 빅토리아 시대의 저명한 문인이었던 레슬리 스티븐 경의 딸로 태어났다.  미인으로 소문났던 어머니 줄리어 잭슨은 변호사인 첫 남편 사이에 조지, 스텔라, 제럴드 삼 남매를 두었다.  남편과 사별 후 줄리어는 첫 부인과 사별한 레슬리 스티븐과 재혼하여 바네사, 토비, 버지니어와 에이드리언 사남매를 더 두게 된다.  존경받던 아버지와 아름답고 자상했던 어머니 아래서 보낸 어린 시절을 울프는 일종의 이상향으로 기억한다.  특히 영국 남서부 세인트 아이브스의 여름 별장에서 보낸 어린 시절의 추억은 그녀에게 존재의 기반이 되며, 그녀의 대표작인 <등대로>의 모델이 되었다.  울프가 13살 때 어머니가 마흔 아홉 살의 나이로 돌아가시며, 2년 뒤에는 어머니 역할을 하던 이부 언니 스텔라가 결혼한 지 불과 몇 달 만에 갑자기 죽는다.  연약한 성격의 울프는 상실감을 견디지 못하고 일생 신경 쇠약증에 시달리게 된다.  

울프는 소설가로 잘 알려져 있지만 사실 그녀는 1904년부터 에세이를 쓰기 시작하여 주로 서평이나 전기적 에세이 또는 비평적 에세이를 거의 37년간 잡지나 신문에 기고했다.  대학에서 정식으로 공부하지 않았던 그녀는 그중 몇 편을 골라 생전에 <일반 독자>라는 제목으로 에세이집을 두 권 출판한다.  이 책의 서문에서 그녀는 우리 일반 독자들이 교육이나 재산, 계급, 성별의 차이에서 빚어지는 불공평을 습관처럼 받아들이지 말고 자기 나름대로 읽고 쓰고 비평함으로서 사회의 정당한 구성원으로 존재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여기 발췌된 글은 울프의 자서전적인 글 모음집인 <존재의 순간들>의 한 부분이다.  이 회상록은 ‘회고록 클럽’ 친구들 앞에서 낭송하기 위해 썼으며, 그녀가 일기에서 기록하고 있듯이 소설을 쓸 때와 달리 거의 아무 노력도 들이지 않고 과거의 기억을 그냥 유연하고 자연스럽게 써 나간 것이 특징이다.

 

각주)1)<과거에 대한 스케치>는 일기의 일부는 아니고 울프의 자서전적인 글들의 모음집인 《존재의 순간들》속의 한 부분이다. 이 회상록은 울프의 일기에도 나오듯이 ‘회고록 클럽’의 친구들 앞에서 주로 낭송되었다. 여기에 발췌된 부분은 울프가 1882~1884년 사이에 세인트 아이브스의 탈란드 하우스에서 여름을 보낸 이야기와 어머니의 죽음에 관한 부분이다. 그 외에도 언니 스텔라의 결혼과 죽음에 관하여 그리고 가족들에 관한 솔직한 이야기들이 많지만 《등대로》의 이해를 돕고, 또 일기와의 연관성 때문에 앞부분만 발췌하였다. 1939년 4월 13일자 일기에서 기록하듯이 울프는 이 글들을 거의 아무 노력도 들이지 않고 자연스럽게 써내려갔다. 1920년대 씌어진 울프의 수필이나 소설의 문체와 비교해볼 때 이글의 문체는 매우 분명하고 자연스럽고 유연하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다.

2) 꽃에 관한 이런 생각들이 후에 울프의 소설 《파도》에서 사용된다.

3) 레슬리 스티븐이 사별한 첫 부인의 딸로 정신박약아였다.

 

정덕애

이화여대 영문과 교수.  이화여대 인문대학장 역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