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가의 수필①|

 

조각일지

 

 

                                                                            최종태

나는 조각가로서 일생을 여인상만 만들어왔다. 그것도 소녀상뿐이었다. 왜 그랬는지 내가 나의 일을 설명할 수가 없다. 그렇게 하도록 입력이 된 것이 아닐는지 아니면 무슨 때문일까. 전생의 업이 있어 이생에 관계된다고도 한다. 무심코 만든 것이 그렇게 된 것인데 어떤 한 부분이 그런 것이 아니고 전부가 그렇다는 것은 필시 무슨 까닭이 있지 않을까 싶다. 그렇게 하고자 의도한 것은 아니었다. 내가 어찌해서 일생을 그런 것만을 되풀이 할 수가 있었는가. 나는 전혀 지루한 줄을 몰랐다. 매일같이 새로운 것에 도전한다고 의도한 것이었다. 그러나 결과는 늘 소녀상이었다. 새로운 형상 신선한 세계에 접근하려한 것인데 귀착점은 번번이 소녀상이었다. 수를 헤아리기 어려울 만큼 만들었다. 새로운 형상 신선한 세계를 이룩하려 맨 날 같이 열심 한 것인데 어찌해서 여인의 모습을 벗어나지 못했는지. 그것도 소녀상에만 매달린 결과가 된 것인지. 참으로 모를 일 이었다. 세상 사람들이 다 딴 일을 하고 있는데 나만 동 떨어져서 이렇게 살아왔다. 왜 그랬는지 정말 알 수가 없다. 외롭고 소외된 생활이 힘들었지만 벗어날 수가 없었다. 벗어나려는 생각조차 하질 않았다. 이것이 무슨 운명이란 말인가. 깨끗한 것 맑은 것 청순한 것 그리하여 성스러운 것 그런 단어들이 상징하는 세계가 늘 그리웠다. 그것은 끝이 없었다. 나중에는 성모상이 되기도 하고 관세음보살상이 되기도 하였다. 되돌아보면 굽이굽이 끝없이 먼 길 같고 또 되돌아보면 인생 팔십이 잠깐인 듯싶다.

예술의 길은 끝이 없고 인생은 빨리 늙는다. 내가 미술대학을 졸업한지가 그럭저럭 50년이 되었다. 한 눈 팔지 않고 한 길을 찾아서 여기까지 왔다. 지름길이 있을 것 같아서 헤메노라 오히려 아까운 시간을 낭비하였다. 한 우물을 파라는 속담이 있다. 말로는 쉽지만 대단히 어려운 길이란 것을 알 수 있었다. 초년엔 길이 안 보여서 막막하였다. 다음에는 길이 사방에 널려있어서 선택을 어렵게 하였다. 먹고 사는 게 어려웠지만 그것은 참을 수 있었다. 출가해서 수행자가 되는 거려니 생각하였다. 어려운 것은 예술이 손에 잡히지 않는 일이였다. 알 수도 없고 풀어나가는 공식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어디다 물어서 될 일도 아니었다. 모든 것은 내 한 마음 쓰기에 달린 일이었다. 꿈만 구름처럼 부풀어 있었지 사방은 칠흙 같은 밤이었다. 그 밤길에 위로가 되는 것은 같은 모양을 하고 있는 친구들뿐이었다. 그렇게 해서 시간은 가고 또 가고 하였다. 흐르는 세월마저 없었더라면 더욱 막연하였을 것 같다. 세월이 약이란 말이 그냥 나온 말이 아니었다. 잊어버린다는 것이 참 좋은 약이였다. 오늘은 여기까지이고 새날에 대한 기대를 품고 잠이 들었다. 매일 매일의 삶이 그러했다. 그렇게 한 세월이 흘렀다. 그리하여 지금은 백발의 노인이 되었다. 분명히 알게 된 것은 예술이란 바다와 같이 넓은 것이고 내게 주어진 나의 한계가 확실하게 있다는 것이다.

예술이란 무엇인가. 어떻게 만들 것인가. 깜깜한 터널이 있었다. 그 터널은 끝이 보이질 않았다. 그저 어둠일 뿐이었다. 그 어둠 안으로 어디서 인지 모르게 신호가 있었다. 그것은 <기쁨의 씨> 같은 것 이었다. 실낱같은 빛이 가슴 안쪽 벽을 두들기는 것이었다. 촉감으로 그것이 느껴졌다. 어떤 날 하루는 문득 대학교 1학년 때 만든 첫 작품부터 그때까지 해온 작품들이 한 줄로 쫙 서는 것을 보았다. 20년의 흔적들이 한 줄로 서는 것을 본 것이다. 그 사건들은 모두가 사십을 전후前後해서 생긴 일이었다. 무슨 일인지는 알 수가 없었다. 그러나 지금도 선연하게 내 가슴 안에서 살아있다. 한 찰나에 작품들이 순서대로 쫙 서는 것. 학교마당에서 작업을 하고 있을 때였다. 지나가는 친구에게 여보여보 지금 이런 일이 생겼는데 이게 무슨 일이지? 친구는 영문도 모르고 그냥 웃고 지나갔다. 이상한 신호란 것은 내가 방에 누워 있을 때만 생겼다. 그래서 작업실로 가라는 알림 같은 것으로 듣고 얼른 일어났다. 예술은 인간의 손으로 만들어지는 게 아니라 어떤 위대한 힘에 의해서 조종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예술은 인간의 지적知的인 계산에 의해서 잡힐 그러한 한정된 세계가 아닌 것 같았다. 모든 인간적인 한계를 넘어서 잴 수 없는 것, 볼 수 없는 것, 들을 수 없는 것, 상상을 넘는 것, 그리하여 직관直觀으로도 닿지 않는 초월적 세계가 있는 것 같았다. 그냥 막연하게 그런 생각을 하였다. 어쨌거나 예술은 너무 커서 함부로 덤벼서 될 일이 아니다 하는 것을 알았다. 그것만으로도 감사한 일이었다.

그래도 나는 계속해서 생각하였다. 예술이란 무엇인가.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진리란 무엇인가. 물음은 끝없이 계속 되었다. 어떤 날 아침 눈을 떴을 때 아하! 조각이란 모르는 것이다! 하는 깨달음이 있었다. 나는 벌떡 일어났다. 모든 것은 다 모르는 것이었다. 그렇게 통쾌할 수가 없었다. 그렇게 기쁠 수가 없었다. 모른다는 것을 알게 되고서 왜 그렇게도 홀가분하였던지……. 그때 내 나이 쉰 살 이었다. 사람이 안다는 것은 아주 작은 어떤 부분일 뿐이다. 바다를 보았지만 한 구석을 본 것이지 전체를 본 것은 아니었다. 아무도 전체를 본 사람은 없다. 예술이란 한 전체이다. 시작도 끝도  없는 그런 전체이다. 그것을 나는 지금 확실하게 알고 있다. 아무튼 예술이란 알 수 없는 것이고 나의 한계가 보이는 만큼 분수에 넘는 일을 욕심낼 수 없었다.

세월은 걷잡을 수 없이 또 흘러갔다. 지금은 언제 끝날 런지도 모를 나날을 살고 있다. 기댈 데도 없다. 스승들이 있었지만 모두 저 세상으로 떠나셨다. 혼자 있는 게 습관처럼 되었다. 어릴 때 종이배를 만들어서 개울에 띄우던 생각이 난다. 종이배는 물살 따라 뒤뚱거리며 흘러갔다. 그 모양이 마치 지금의 나를 바라보는 것도 같다. 의지보다도 상황 따라 내가 움직인다. 일하는 시간만큼은 즐겁다. 일하는 시간은 잡생각이 끼여들지 않아서 좋다. 손자가 장난감 놀이를 한다. 그걸 보면서 나의 처지를 생각하였다. 효용성이 없는 일에 열중하는 것. 옛날 어른들은 유희삼매라 하였다. 어른이 아기들 장난감 놀이하듯 그렇게 열중하는 형국과 같은 일이다. 나이 들어 예술 하는 일이 어린이 놀이하듯 즐거웠으면 얼마나 좋을까. 모든 목적성으로부터의 자유. 그래서 큰 예술가들이 모두가 어린이와 같이 돼야 한다고 했나보다. 어린이가 어른이 됐다가 다시 어린이로 되돌아간다는 것이다. 그게 무슨 이치인지는 모른다. 그러나 아름다운 일인 것만은 분명하다.

누군가 이런 말씀을 하였다. 예술가는 노년老年을 보아야한다. 나는 지금 그 예술가의 노년을 살고 있다. 탐진치貪瞋痴 를 다 버려야한다고 한다. 그러나 나는 탐함도 남아있고 성냄도 남아있고 어리석음도 남아있다. 그러나 때때로 조용할 때가 있다. 멀쩡하니 앉아서 깜박 나를 잊어버릴 때가 있다. 일할 때는 다른 나가 살고 있는 듯 현실을 잊어버린다. 가장 지금을 확실하게 살 수 있는 나의 시간이다. 여러 가치에 대해서 나는 알지 못한다. 일시에 그 모든 것이 무너지는 광경을 나는 보았다. 모든 것이 하나가 될 때 모든 것은 무너졌다. 그것은 이름 하여 인간적인 한계에서 벗어나는 일이었다. 늙음이라는 말 속에는 한 생의 경험세계를 한 눈으로 본다는 뜻이 있다. 무엇인들 안 보았겠는가 그리고 어디로 가는가에 대해서 생각한다. 어디로 가는가. 어떻게 갈 것인가. 작품을 만드는데 무슨 의미를 두지 않는다. 오늘을 사는데 무슨 의미를 두겠는가. 요새는 일에 빠지는 시간이 그저 좋을 뿐이다.

철모르고 접어든 길인데 이렇게 멀 줄은 꿈에도 모를 일이었다. 아무도 아는 사람이 없는 일 일 것이니 가르쳐줄 수 있는 일도 아니다. 그림이란 것은 끝 날까지 찾아야 할 일이다. 문인들은 이런 말을 하였다. “왜 글을 쓰는가. 그것을 알기위해서 글을 쓴다.” 먹고 살기 위해서 글을 쓴다는 사람도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좀 비약된 말이 아닐까싶었다. 답이 안 나오는 것이 예술의 길이다. 나는 그것을 알고서 그 답을 찾는 일을 포기 하였다. 그러고서 27년이 지나갔다. 화살같이 지나갔다.  

좋은 작품이 만들어져 나왔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것도 부질없는 꿈이다. “능금나무 열매는 쉬면서 익는다” 라이나 마리아 릴케의 시인지 싶다. 예술가의 노년은 서두르지 않는다. 기다릴 줄 아는 여유를 얻어야한다. 과일은 나무에서 떨어지기 전까지가 더 아름답다. 완전한 익음의 상태로 아직 가지에 붙어 있을 때.

나는 바다를 보았다. 나는 단지 바다의 한 부분만을 보았다. 그러나 부분이 전체와 같을 수도 있다. 나는 내가 작아진 것을 보고 있다. 상대적으로 작은 것 앞에 있는 것은 큰 것이 된다. 가장 큰 것을 일러 무한이라고 한다. 무한이란 영원이란 말과도 같은 의미이다. 강물이 한 번 바다에 이르면 되돌아 갈 수가 없듯이 사람의 발걸음도 지나 온데를 되짚어 갈 수가 없는 것. 예술의 길은 한정이 없고 인생이라는 수레바퀴는 사정없이 돌아간다.

 

최종태

조각가. 서울대 명예교수. 김종영 미술관장. 대한민국예술원회원.

저서 :  《아름다움을 향한 사색》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