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막의 비

 

 

                                                                                     유혜자

LA에서 헐리웃과 유니버설 스튜디오 등을 둘러보고 오늘은 그랜드 캐년으로 가기 위해 모하비 사막을 달리고 있다. 전날, 윤기나는 푸른 숲과 온갖 꽃들의 향기가 물씬한 LA의 자연과 첨단 문화예술의 산실에서 감탄했는데 이곳은 길과 전신주 외엔 사람의 손이 전혀 미치지 않은 듯하여 타임머신으로 천 년 전의 땅에  돌아온 것 같다.

두어 시간 달려왔어도 한자리에 있는 것처럼 같은 풍경이 이어진다. 따뜻함이 묻어나올 듯한 불그스럼한 흙의 낮은 산과 평원, 일정한 간격의 고만고만한 조슈아 나무의 생명만 허락한 땅. 이렇게 달려도 변화가 없다면 우리가 무엇을 위해 앞을 다투며 짧은 시간을 서두르며 살고 있나, 허망하고 답답하다.  

사막의 끝에는 어떤 희망이 있을까. 이 사막의 어느 지역에는 땅속에 간헐적으로 흐르는 모하비강 줄기가 있어서 소다 호湖까지 가고 동쪽 끝에 콜로라도강이 있다는 사실을 생각하니 좀 숨이 트인다.

같은 풍경만 이어져서, 모세의 인도로 이집트를 탈출한 이스라엘 사람들이 광야에서, 과연 약속의 땅 가나안에 갈 수 있을까, 의심하고 불평했다는 생각이 난다. 이대로 가면 과연 그랜드 캐년이나 콜로라도 강에 이를지 막막하다. 으레 고행이 끝나면 낙이 온다는 꿈에 부풀거나 유목민처럼 좋은 물이 있고 비옥한 땅을 찾아 유랑하다가 성공하지도 못하고 삶을 마치는 경우가 많다. 공연히 불안해진다. 나는, 홍해가 갈라지는 기적을 체험하며 광야에 다다라서도 앞일에 대한 여호와의 계시를 믿지 않고 광야에서 불복종과 방종을 일삼던 이스라엘 사람들과 무엇이 다른가.

나는 중학교를 세 군데나 다녔다. 1학년 말에 고향을 떠나 1년 반쯤 K여중에 다니고, 다시 T시로 전학 가서 졸업을 했다. 그때 낯설음과 동화되지 않아, 내가 겪는 광야가 아닌가 생각한 적이 있었다. 특히 방학동안 따뜻한 가족들과 지내다가 개학 때 집에서 30여km 떨어진 K읍행 버스로 산을 넘고 내를 건너 절벽 옆을 지나면 멀리 보이던 금강錦江의 파란 물결과 백사장, 얼마 후면 다다르는 쓸쓸한 K읍이 유배지 같기만 했다.  

어쩌면 지금은 내 인생의 가장 충만한 시간 위에 있다고 생각해 왔는데. 유행가가사처럼 우여곡절과 헤어짐, 삶의 외로움과 모순에 가슴 시리던 날들이 생각난다. 신명을 바쳐 할 일이 있음에 감사하고 친지들과 여행하는 일로도 기운이 나는 마당에 웬 쓸쓸함인가.

망연히 앞을 바라보며 지평선을 찾아본다. 훤히 틔어 있는 어디쯤에서 강물은 출렁이고 있을까. 한 순간에 펼쳐진 바다와 같은 하늘에 일렁이는 구름, 어느 먼 곳에서 올라온 물기로 사막에 구름을 띄웠을까. 끝없는 사막 한 부분에 구름이 드리운 그늘도 반갑다.

우리가 지금 가고 있는 것과는 다른 방향의 사막에는 선인장도 있고,  LA 40마일 근방 사막에는 야생 양귀비가 피어나는 보호구역도 있다고 한다. 비의 양과 기온에 따라 거의 못 보는 해도 있지만 어느 해에는 한 달 동안이나 노란 꽃들이 너울거리는 현란한 광경을 볼 수 있다는 말에 놀랐다.

그런데 문득 몇 년 전 외신에서 보았던 놀라운 사실이 생각난다. 바로 이 모하비 사막 어디쯤인가에 25년 만에 큰 비가 내려서 물이 고인 데가 있었다. 비온 이틀 후 민물 새우 몇 천 마리가 물위에 튀어 올랐다고 한다. 25년 전 어미 새우가 메마른 사막의 어디쯤에 낳아놓았던  알이 오랫동안 잠들어 있다가 싱그러운 비에 새 생명으로 깨어났다는 기적 같은 이야기. 우리 눈에 보이지는 않아도 상상을 뛰어넘는 기적들이 어디에선가 이뤄지고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으로 창밖을 내다본다.    

세상이 황막하다 해도 단비에 생명체가 살아나 듯 사랑이 있으면 사막도 녹지로 가꿔질 수 있는 것, 이 사막이 언젠가는 신이 안배한 가장 넓은 녹지가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가야 할 목적지가 따로 있는 삶, 깊은 신앙으로 영원한 쉼을 누릴 수 있는 안식의 땅을 바라면서도 인간세계에 더 머물기를 바라는 마음같이 사람들은 익숙한 것을 편하게 생각한다.

지금처럼 그리워하던 곳을 찾아간다는 충만한 마음으로 사막을 보니 떠나올 때 생소하던 사막의 모습이 아니다. 그러나 광야는 우리가 머물 곳이 아니고 지나서 가야 할 곳에 지나지 않는다.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 전 40년 동안이나 방황하게 하던 절대자의 뜻이 생각난다. 광야는 목적지를 향해 가면서 머무른 곳이었던 것처럼 우리는 이 사막을 더 달리면 콜로라도 강이 있는 도시에 다다른다는 희망이 있는데도 마음이 평안하지 않다.  

삶이란 허공에 맞닿아 출렁이는 것일까.

내 가슴속에는 어떤 씨앗을 묻어놓고 애태우며 사막의 비를 기다려야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