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시험

 

 

                                                                                     구양근

집안이라고 해봤자 제대로 충고 한마디 해 줄 위인이 없는 벽촌 아이는 영어가 중요하다는 것을 알 턱이 없었다.

중학 1학년에 입학해서 뛰어놀기에 정신이 없던 나를, 어느 날 영어선생님이 호출을 하셨다. 두 세 명이 같이 불려갔던 걸로 기억한다. 내 이름을 다정하게 부르시던 선생님은,   

“양근아! 너 왜 이렇게 공부를 안 하느냐?”

하시며 눈에 눈물이 글썽였다. 지금 생각해 보면 아마 시험을 치르고 최하점수의 아이들을 따로 부르신 듯하다. 나는 참으로 이상한 선생님이 다 있다고 생각했다. 무엇 때문에 그 따위 영어공부를 해야 한단 말인가. 그보다 몇 십 배 더 중요한 도덕, 사회 같은 과목들도 많은데.

중학교 2학년 때 영어선생은 폐병환자(우리가 그렇게 불렀다)로서 콜록콜록 기침을 심하게 했고 십 분간 말하기도 힘이 드는지 걸핏하면 자습을 시켰다. 우리는 그 시간에는 다른 책을 꺼내서 읽기도 하고 낮잠을 자기도 하였다. 나는 그 선생님이 아주 좋았다. 그렇지! 이렇게 시시한 것을 배우면서 정력을 쏟을 필요가 전혀 없지.

이런 식으로 중학교 1, 2학년 영어를 완전히 망쳐놓은 나는 뒤에 그 중요성을 알아차리긴  하였지만 벌써 만회하기가 무척 힘들었다.

영어가 중요하다는 것을 완전히 깨달은 건 겨우 대학교 때였다. 그 때는 학점을 따는 영어 과목 외에도 다른 본과생 영어수업을 도강盜講까지 하고 다녔다. 생전 처음으로 을지로에 있는 CCB라는 영어학원에 석 달 동안이나 다닌 적도 있다.

도강과목 중에서 지금 기억난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영어학자이신 박술음 교수 수업이다. 그 과목이 무슨 과목인지 기억은 없다. 하여튼 100분 수업이었던 것 같은데 진도는 항상 한 페이지도 나가지 못한다. 매 문장의 문법 설명을 이 잡듯이 훑고 넘어간다. 특히 허사虛辭에 대한 설명이 명품이다. 영문법이 이렇게 아무것도 아닌 것을 왜 지금까지 이런 설명을 해준 사람이 아무도 없었단 말인가. 벌써 서너 번 수업으로 영어가 훤해 졌고 영문법에 통달한 느낌이 들었다.

요새 국제사회에서 영어의 중요성을 재론해서 무엇하랴만, 국내에서도 영어를 못하면 중요한 것은 아무것도 못하게 제도화 되어 있다. 40이 넘도록 석, 박사과정을 밟고 있던 나는 그 때마다 입학시험 졸업시험에 영어가 애를 먹였다. 나는 그래도 그 필요성을 느끼고 평소에 약간 준비해둔 덕분에 별 큰일이 없었지만 영어에 자신이 없는 사람은 인생의 아주 중요한 것을 포기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한 친구는 미술사를 전공하는 친군데 그 실력은 자타가 공인한 위치인데도 박사학위가 없었다. 안타깝게도 그는 영어와는 원수지간이었다. 그래서 입학시험에 자신이 없어서 끝까지 박사반엘 못 들어갔고 그래서 끝까지 교수가 되지 못하고 말았다.

한 친구는 외국에서 명문대학 박사반을 수료하였으나 학위를 가지고 들어오지 못했다. 나도 같은 케이스이긴 하지만 나는 박사반을 다시 입학하여 학위를 받았는데 그는 영어에 자신이 없어서 박사반 입학을 포기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는 용케 교수가 되긴 하였어도 정년한 교수의 학벌이 고작 석사였고 재직 시는 보직다운 보직 한 번 해보지 못하고 말았다.

나는 중국어강의를 하면서도 항상 대학교 때 들었던 박술음 교수의 강의를 연상한다. 나도 그런 명강의를 해보겠다는 욕심이 있는 것이다. 그리고 영어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또 강조한다.

“여러분은 중문과 학생이기 때문에 물론 중국어를 열심히 해야 한다. 그러나 어떤 것을 전공하는 사람이라도 영어는 반드시 해야 한다. 영어는 절대 피해 갈 수 없다.”

그런데 알고 보니 이 말이 남에게 하는 말이 아니었고 실은 나 자신에게 하는 말이란 것을 알았다. 내가 영어를 끝까지 피해 가지 못하고 있는 것이었다. 나는 그 필요성을 알기 때문에 안식년으로 출국할 때도 동양학을 전공한 주제에 굳이 미국을 택했던 것이다.

나는 어쩌다가 교수로서 최고의 위치까지 올라간 적이 있다. 그랬더니 외국손님과 사흘이  멀다하고 대화를 해야 할 일이 생긴다. 나는 외국손님이 오면 쥐나 개나 영어를 주워섬긴다. 영어를 잘해서가 아니라 거기에는 피해갈 길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내심 저들이 웃을까봐 좌불안석이고 속에서는 식은땀이 흐르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우리 대학의 영어강의를 내 옹고집으로 관철시켰다. 대학생들이 직접 영어강의를 듣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이 나의 지론이다. 어떤 과목이건 영어로 하는 수업은 상대평가가 아닌 절대평가가 가능하게 만들었고, 인센티브로 한 과목당 50만원을 지원했다.

그런데 최근에는 영어 때문에 진짜로 온몸에 땀이 흥건히 젖을 일이 생기고 말았다. 정년을 한 학기 남겨둔 나를 누가 어느 나라 공관장으로 추천을 한 것이다. 그런데 추천을 받았다고 해서 되는 것이 아니고 일명 ‘대사 고시’라고 하는 영어시험에 합격해야만 한다.

서울대 언어교육원에 끌려가서 오전 내내 시달려야 했다. 몇 주일 전에 이 시험을 본 어느 분이 하도 억울해서 신문에 투고한 것을 읽은 적이 있는데 바로 그 시험이 나에게 떨어진 것이다. 무슨 영어시험에서 물리학의 상대성 이론을 영어로 말하라, 밍크털과 토끼털의 차이점을 영어로 설명하라는 등의 문제를 냈다고 불만을 토로한 그를 이해 할 만하였다. 말하기 1시간, 쓰기 2시간을 보며 나는 나의 모든 자존심을 접어야 했다.

커트라인이 50점이라고 하는데 제발 커트라인에나 걸리지 말았으면…. 그런데 아무래도 거기에 걸리고 말 것만 같고 인생 후반기에 영어 때문에 큰 망신을 한번 살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