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의 손

 

 

                                                                                     남기문

큰아이 초등학교 4학년 때 학예회가 있어 우리 내외가 참석했다. 큰 아이는 동물놀이에서 토끼로 출연한 것이다. 녀석은 아빠 엄마가 온 것을알고 환하게 밝은 표정으로 더 열심히 하는 것 같았다. 기가 살아 오르는 것이다. 아빠 엄마가 온 것이 그렇게 즐거워 할 줄은 미처 몰랐다.

며칠 전에는 유아원에서 손주 아이의 재롱 잔치가 있었는데 제 차례가 되어 출연하면서 연신 나를 바라보며 정신없어 했다. 출연하는 것보다 할아버지가 왔다는 것을 더 즐거워 하는 것 같다. 제 딴에는 할아버지가 제일로 여기는 것 같아 나도 덩달아 기분이 좋았다.

6·25전쟁 전 내가 다닌 초등학교에서 운동회가 있었다. 운동회의 하이라이트는  사람이나 물건을 대동하고 달리는 종목이었다. 나는 달리기에는 전혀 자신이 없었다. 혼자 뛰면 일등이고 네 사람이 뛰면 4등이었을 만큼 내 달리기 소질은 한심했다. 그래도 뛰어야 했다. 내 쪽지는 어머니와 대동하고 뛰어야 하는경기였다. 축 처저 들어와 어머니를 손을 끌고 뛰는 것이 죽도록 싫었다. 꼴찌로 뛰는 것도 부끄러웠지만 초라한 어머니 손목을 잡고 뛰는 것은 더욱 싫었다. 밤낮없이 땡볕에 그을린 얼굴은 거무죽죽했고 풀 먹인 무명치마는 어디다 내 보일 수 없는 부끄러운 모습이었다. 어머니는 이런데 왜 왔나 싶었고 풀 죽어 꼴지로 들어오는 내 모습을 사람들이 보고 있다고 생각하니 등짝에 땀이 흘렀다. 반장 어머니 모습은 절대로 그럴 수 없다고 생각하니 어머니로 인한 부끄러움이 쉬 가시지 않았다. 집에 돌아와서도 팅팅 분 얼굴로 있는 나를 보고 어머니는 아무 말을 하지 않았다. 내 부아는 한동안 계속되었다.

나는 어머니가 학교 오는 것이 싫었다. 나는 학교에서 그래도 선택된 학생이었다. 오로지 달리기 하나만 뒤질 뿐, 공부에서는 내 상대가 없어 나는 그쯤의 교만도 누릴 수 있는 철이 들어 있었다. 나는 반장이었다. 부끄러움이 무엇인지 알아가던 시절에 어머니 출현은 내게 어떤 도움도 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어머니에겐 철 따라 갈아 입을 옷이 없었다. 무명치마 한 벌이 고작인가 싶었다. 왜 어머니에게 옷이 없는 가는 어머니의 잘못으로 여겼다. 자식의 모양이 즐겁다면 당신도 그 정도는 꾸미고 살아야 하는 것이 아닌가 했다. 어머니 피부는 너무 거칠어 있었다. 가끔 교실창 너머로 따스한 도시락을 건너고 어릿대는 기성회장 집 어머니 만큼은 아니어도 내 부끄러워 하는 마음을 어머니 자신이 알아서 보이지 말아야 할 것이라고 여겼다.

며칠이 지난 뒤 어머니는 말했다.

‘어미가 그렇게도 부끄럽더냐?’ 나는 그 때까지도 풀리지 않아 곪아 있어 대답을 하지 않았다. 그런 모습을 큰형이 보고 ‘너 이 자식 싸아지가 없구나’ 하면서 발길질을 했다. 어머니는 나보다 큰형을 되게 꾸짖고 돌아 앉으셨다. 그 모습이 너무 슬퍼 보였다. 필경은 우시는 것 같았다.

나는 지금 어머니 앞에서 60여년 전에 어머니가 흘렸을 눈물보다 더 진한 회한의 눈물을 흘리고 있다.

내가 왜 그랬는지 내가 한 일이지만 나도 잘 모르겠다. 그런 일로 어머니를 언찮게 하다니--. 이건 싸가지 이전에 못돼 먹은 짓거리라는 것을 이제 와서 깊게 느낀다. 엎으러 진 물, 되 담을 수 없는 회한이다.

씻어 낼 수 없는 내 생의 오점이다. 지금의 내 회한으로 어머니의 서운함이 씻겨질 수 있을까? 나는 지금 내 잘못을 인정하고 반성하면서 촉촉한 눈으로 어머니를 올려다 보고 있다.

“어무이요. 나는 어무이에게 잘 못한 것이 너무 많아요”

“이 아가 별 소릴 다 하네. 네가 무슨 잘못을 했다고---. 나는 생각 나는 게 없다. 오히려 네가 있어 내가 즐겁고 기뻤는데?”

 정말 그러셨을까? 어머니는 지금  거짓말을 하고 계신 것이다. 이 때다 싶어 나는 옛날 얘기를 끄집어 냈다.

“그 때야 내 잘 못이 컸지. 내가 가지 않았으면 될 텐데--. 그래도 모처럼 맞는 운동회가 아니었나? 뒤뚱대며 뛰는 네 모습도 보고 싶었고--”

그러면서도 손잡고 뛰었던 얘기는 말하지 않으신다. 그 상처가 얼마나 컸었나를 어림으로 알겠다.

“어무이요. 내가 잘못했어요. 내가 왜 그랬는지 모르겠어요.”

“그게 어디 네 잘못이냐? 그만한 때는 그렇게 생각 할 수도 있는 때다. 나는 잊어 버렸다”

과연 잊혀졌을까? 나도 기억의 가장 자리에서 아픔으로 기억하고 있는데 어머니로서도 쉽게 잊혀질 일이 아닐 것이다. 후린 어머니 마음을 자식이라는 것으로 그냥 덮고 계신 것이다.

 요즘 나는 전에 없는 버릇이 생겼다. 어머니와 함께 있는 자리에서는 지나간 옛 얘기로 말을 잇는다. 나는 별로 하고 싶지 않지만 어머니가 그러기를 즐기시니 어머니 마음에 맞추는 것인데 싫지는 않다. 어머니는 오늘을 살면서도 지난 옛날이 중심이 되고 있다. 좋았던 일 보다 힘들고 어려웠던 일을 기억해 내시는데 어머니 세월은 이렇게 끝내 가는 것인가? 도리 킬 수 없는 회한의 세월이 아프다. 내 부끄러웠던 것이 어머니의 슬픔이었다는 것이 가슴 아프다.

오늘도 나는 내가 어렸을 적에 싫어 했던 어머니 손을 만지작거리고 있다. 나무 등걸같은 어머니 손. 그 손 끝에 내 성장이 있었고 내 생존이 있었으니 까실한 어머니 손이 나는 좋다.

--어머니. 까실한 손이라도 좋습니다. 오랜만 살아 주셔요--

그리고 내 잘못한 부끄러움에 대한 섭섭했던 보상도 받으셔야지요.

그런 내 마음을 알고 계시는지 어머니는 밝게 웃으신다.

어머니의 까실한 손은 언제나 따스하다.  

 

 

《한국수필》수필 등단.《문학미디어》소설 등단.

《한국문인협회》 , 《수필가협회》회원.

수필집 : 《어머니의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