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둘기 부부

 

 

                                                                               방계은

아파트 단지 안에 야트막한 언덕과 작은 숲. 조석으로 즐겨 찾는 산책길이다. 오늘도 수령 3백년 가까운 은행나무 그늘 벤치에 앉았다. 수확의 계절답게 여물은 은행 알을 헤아리며 있으나 가을바람에 내 마음은 소소蕭蕭해진다.

“구구, 구구” 비둘기 속살거리는 소리에 눈길을 돌렸다. 회색비둘기 한 쌍이 심곡서원深谷書院1) 담장위에 앉아 머리를 마주하더니 높푸른 하늘을 향해 먼 바라기를 한다.

‘서울 집 안방 창틀위에서 하얀 비둘기가 일가를 이루며 살았지.’

그 집이 소소한 가슴을 헤치며 성큼 들어선다. 1997년 겨울인 것 같다. 어느 날부터 작은 녀석이 수시로 베란다를 들락거렸다. 엄마와 담소를 나누다가도 저애들이 밥을 달랜다고 식빵을 들고 나가기에 무슨 일인가 했다. 비둘기 한 쌍이 안방 창문 슬라브 위에 둥지를 틀었음을 그때서야 알았다. 언제 나뭇가지를 날라 둥지를 만들고, 언제 사랑을 나누었을까? 그러노라 그간 제법 부산했을 것인데…. 그때부터 그들은 우리와 한 지붕가족이 됐다.

작은 녀석이 빵을 잘게 부셔 뿌렸던지 베란다가 정신없이 어지러웠다. 가뜩이나 추위를 핑계로 청소를 안 했으니 그 지저분함이 가관이다. 녀석에게 핀잔을 주었더니 그렇게 줘야만 놈들이 잘 먹는단다. 늦추위가 한창이어서 영하 칠 도를 오르내리는 날씨에도 꼼짝 않고 알을 품고만 있었다. 녀석은 거의 굶다시피 하는 그들이 불쌍하다며 부지런히 먹이를 날랐다.

삼월초순 쯤, 귀여운 아기 비둘기 두 마리가 태어나 네 식구가 되었다. 우리 부부도 아들 둘을 두고 오순도순 살고 있어 그네들과 닮은꼴이라 더욱 가깝게 느꼈는지 모르겠다. 순백의 아기비둘기는 어찌나 곱고 새뜻하던지 절로 정이 가는 비둘기 가족이었다.

하얀 비둘기는 효의 상징, 평화의 상징, 행운의 상징이기도 하단다. 그런데 꽃피고 풀이 무성해지자 새끼들은 어디론가 떠났다. 그들은 자식들을 걷어 먹이지 않아도 되니 조금은 한가해진 탓일까? 자주 지붕 위 용마루에 앉았다. 잘생긴 아빠 비둘기는 늠름한 기상이 엿보였다. 그러나 눈길만은 언제나 먼 곳을 향했다. 멀리 떠난 새끼들이 언제쯤 오려는지 기다리는 것은 아니었을까.

  

그렇게 엄마보다 타인을 배려할 줄 아는 작은 녀석이다. 요즈음 둥지를 틀고 있다. 우리가 서울에서 용인으로 이사 온 뒤 아이들은 발시發時 편한 곳에 숙소를 마련했다. 큰 녀석 결혼 후 작은 녀석은 학교 앞에서 하숙도 하고 자취도 했다. 우리 품을 떠난 지 5년 만에 제 집을 마련한 셈 아닌가. 그렇건만 어린자식을 먼 길 떠나보내는 심정이 되니 어미의 심원이란 때때로 갈피를 잡을 수 없는 것일까.

녀석의 온몸에선 감미로운 휘바람 소리가 났다. 비둘기처럼 제짝을 만나 둥지를 마련하고 있으니 넘치는 기쁨을 주체하기 어려울 것이다. 헌 집을 꾸미면서 현관문 열쇠를 직접 조립해 달고 창고까지 청소하느라 땀을 뻘뻘 흘리면서도 힘든 기색이 없다. 도배며 장판이며 전등이며 질 좋고 저렴한 물건을 고르느라 배필감과 고개를 맞대는 모습이 어여쁘다. 물건을 고르고 상인과 값을 흥정하는 과정에서 눈빛 하나로 의견을 조율하는 예비부부다. 부모의 의향을 묻느라 우리를 대동하고 다니는 녀석. 저만하면 비둘기처럼 금실 좋은 부부가 되리라는 믿음으로 흐뭇했다. 보금자리를 화사하게 꾸며놓고 마음에 드시냐고 묻는 녀석과 며느리 감이 그지없이 사랑스럽다. 아이들 덕에 새집 꾸미는데 한목하면서 ‘우리도 저런 시절이 있었지. 참 좋은 때다.’ 신혼시절을 떠올리며 남편과 눈을 맞추기도 했다. 그런데 허허롭다.

부모로서 얼마나 대견해야 할 일인가. 공연히 실상 없는 말로 녀석의 행복한 마음에 흠집을 만들어야 되겠는가. 주어도주어도 주고만 싶은 어버이로서의 한마음이어야 한다고 추스르지만 그 또한 허세임에야. 자식을 보내는 일이 처음도 아니다. 큰 녀석이 결혼할 때도 살림을 냈다. 그때는 개혼開婚이라 새 식구 맞아들이는 의식에 몰두하느라 허전함은 뒷전이었을까. 아직 품안에 자식이 남아있다는 느긋함이 그 빈자리를 깨닫지 못했나 보다. 녀석을 제 둥지에 두고 돌아오는 발걸음이 세상에 둘도 없는 보석을 잃어버린 사람의 심정 같아 남편과 “왜 이렇게 서운할까?” 하곤 마주보며 씩 웃었다.

  

설렁한 촉감으로 앙가슴을 파고드는 가을바람이다. 쓸쓸해지는 마음을 아는 듯이 날아와 준 비둘기. 그들은 아이들을 낳고 키우던 젊음의 뜰로 나를 이끌었다.

옛 집의 비둘기부부는 새끼를 끼워서 멀리 보내고 나면, 빈 둥지를 채우려는 듯 사랑을 나누워 알을 낳고 키우고 또 보냈다. 그리곤 먼 바라기를 거듭했다. 그때는 그들을 바라보며 잘난 척했다. 하얀 비둘기는 조류 중에 가장 귀소성이 강하단다. 혹여 멀리 갔더라도 어미의 메시지를 가슴에 품고서 혼자 더듬고, 생각하고, 판단하여 언젠가는 제가 태어나서 자랐던 장소로 꼭 찾아온다고. 이제 그들의 눈동자에 깊숙이 담긴 참뜻을 알 것 같다.

세상사 중에 가장 어려운 것이 자식 키우기란다. 그러나 부모에게 가량없는 기쁨을 주는 것 또한 자식이다. 녀석들이 성장하면서 내게 안겼던 기쁨도 가량 할 수 없었다. 그렇건만 예비부부는 제짝 찾아 둥지를 떠나간 비둘기 새끼들이고, 우리 부부는 먼 바라기를 하는 비둘기 부부 아닌가. 그들은 그것이 삶이고, 빈 가슴조차도 피할 수없는 삶의 과정이란다. 온전히 마음을 비우는 자세姿勢, 그도 어려울 것이란다.

“푸드득 푸드득” 비둘기가 비상하는 소리다. 언덕 아래는 심곡서원의 기와지붕 곡선이, 구름 한 점 없이 푸르른 하늘과 어우러져 아름답고 비둘기 부부는 텅 빈 하늘을 가르며 날아간다.

 

각주)1) 조선 중종 때의 문신 성리학자 조광조(趙光祖)의 사당.

    경기도 용인시 수지구 상현1동에 있다.

 

 

1995년 《창작수필》에 〈한련화〉로 등단.

수필집 《노을이 아름다운 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