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

 

 

                                                                                  한원준

오늘 병원에 갔었습니다. 뭐, 두 달마다 한 번씩 의사를 만나는 정기적인 검사죠.

오늘은 날이 화날 만큼 더웠습니다. 짜증난 기분으로 병원에 갔습니다. 예쁘장한 간호사는 날 보자마자, 소변검사를 받으라고 전하더군요.

난 속으로 투덜대며 채혈실로 갔습니다. 이름만 거창하지, 실제론 별 곳 아닙니다. 혈액을  채취하고 소변이나 담 따위를 받아오라고 종이컵을 내미는 곳입니다.

표딱지를 뽑아 기다리면, 은행 창구처럼 번호를 알리는 불이 들어옵니다. 그러며 그 번호 아래 앉은 따분한 표정의 병리사 앞으로 나가 필요한 검사를 하기 위한 작업을 합니다. 이를테면 피를 뽑거나, 종이컵을 받아들고 화장실로 가는 것이죠.

그런데 오늘 볼만한 구경거리가 있었습니다.

이제 막, 이유식을 끝내고 밥 먹기를 시작할 만큼 어린 사내 아기가 엄마에게 안겨 병리사 앞으로 나섰습니다. 모르고 있었지만 검사 대상자는 엄마가 아니라 아기였습니다. 엄마에게 안겨 그저 구경을 하듯 호기심 가득한 오닉스 마냥 까만 눈으로 병리사를 보던 아기는, 엄마가 자기를 안은 손에 힘을 주어 앞으로 내밀자, 갑자기 본능적인 공포에 휩싸였습니다. 그리고 두 팔을 몸에 붙여 움츠리며 울음을 터뜨렸습니다.

무섭게도 흡혈귀처럼 아이의 피를 빨겠다고 병리사 아줌마는 힘주어 움츠린 아기의 팔을 잡아당기고, 아기가 이 세상 누구보다 신뢰하는 엄마는 흡혈귀 병리사를 도와 아기의 팔을 앞으로 내밀어줍니다.   

세상 모든 고통 중, 가장 아프고 가장 고귀하다는 고통을 스스로 겪고 얻어낸 그 소중한 것에 대한 애착이 일순간 사라졌는지, 병리사의 눈빛에 마법에 걸렸는지, 엄마는 싫어하고 두려워하는 것에 아기를 밀어 넣으려 하고 있습니다. 아기는 할 수 있는 유일한 저항인 울음을 더욱 소리 높입니다. 이제 두 여자는 조직적으로 힘을 합해 아기의 팔을 당겨 뻗게 합니다. 주변 사람들은 그저 방관자가 되어 쳐다보기만 합니다.  

이 지독한 범죄 현장에 피해자가 된 아기만이 혼자입니다. 아기는 더 이상 의지할 곳을 잃은 채 두려움 위에 절망을 더해 울음을 계속합니다.

병리사가 든 날카로운 바늘이 아기의 피부를 뚫고, 젖을 짜듯 피를 뽑아냅니다. 이제 아기에게 두려움과 절망에, 실제적인 고통까지 더해집니다. 가엽다못해 처절하기까지 한 아기의 울음소리가 흔들리며 떨립니다. 주변 사람들은 눈꼬리에 측은함을 매달아 위장을 한 채, 아기의 고통을 구경거리로 바라보고 있습니다.

후다닥. 아기의 아빠가 달려와 아기를 안습니다. 아기는 엄마의 가슴에서 탈출하듯 아빠에게 매달려 안깁니다. 아빠가 다독여 주자 아기는 울음을 멈추며 깊이 아빠의 품으로 숨어듭니다. 쿨적쿨적, 울음의 끝을 잡고 있는 아기의 눈이 흠뻑 젖었습니다.    

병리사에게 반창고를 받아든 엄마가 아기의 팔에서 피가 흐르는 것을 막아주려 합니다. 그러나 한 번 배신당한 아기는 다시 울음을 터뜨리며, 손을 빼앗기지 않으려고 필사적으로 아빠의 가슴속으로 더 깊이 파고듭니다.

안타까운 표정으로 엄마가 아기를 잡으려 하지만, 아기의 울음소리만 더 커졌습니다.  

내가 든 번호표가 같은 번호의 불이 켜졌습니다. 난 번호 앞에 섰습니다. 아기의 피를 짜내던 흡혈귀 병리사와는 전혀 다른 따분한 얼굴의 병리사 아가씨가 내 이름을 확인하고 종이컵을 내밀었습니다. 나는 종이컵을 받아들고, 다시 뒤를 돌아보았습니다. 아빠에게 안긴 아기가 울먹이며 검사실 밖으로 나갑니다. 그 뒤로 엄마가 종종 손가락엔 아직 반창고를 붙여 들고 아기를 따라갑니다.

 

 

《계간수필》로 등단.

저서 :  《감골에서 온 편지》,  《불임의 땅》 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