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적

 

 

                                                                                      박태선

오후 느지막이 산책을 나갔다가 산기슭을 걷는데 저만치서 한 아저씨가 나를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었다. 그 옆으로 다가가자 기다렸다는 듯, 아저씨는 길섶을 손가락질하며 그리로 독사(살무사) 한 마리가 사라졌다는 것이다. 거기엔 여뀌니 도꼬마리 갈강가시 같은 풀들이 엉켜 있었다. 이 길을 사이에 두고는 위아래로 축구장 정도 크기의 주말농장들이 조성되어 있다.

뱀! 하긴 2,30 년 전만 해도 심심찮게 뱀이 눈에 띄었고 나뭇가지에는 더러 뱀의 허물이 걸쳐있기도 하였다. 그러나 언제부턴가 뱀은 시나브로 나의 시야에서 사라졌다. 아저씨는 이만하더라고 양손을 펼쳐 보이기까지 했다. 그러면서 작대기라도 있었으면 때려잡았을 텐데, 하는 거였다. 내가 뜨악한 표정으로 쳐다보니 아저씨는 이맘때면 약이 바짝 올라 위험하고 독사는 더군다나 백해무익하다는 것이다. 우리의 대화는 길을 따라 내려오면서도 이어졌다.

“뱀은 먼저 건드리지 않으면 물지 않는다면서요?”

“그렇긴 하지만 얼결에 밟기라면 하면 재깍이지.”

“뱀은 개구리나 쥐를 잡아먹는 걸로 아는데, 그럼 뱀은 뭐가 잡아먹죠?”

“오소리나 너구리.”        

그러더니 아저씨는 군대에서 있었던 얘기를 해주었다. 하루는 수색을 나갔다가 독사 한 마리를 잡았단다. 배가 불룩해서 대검으로 째어보니 거기 새끼 아홉 마리가 게슴츠레 눈을 뜬 채 오글거리고 있었다. 손가락만한 크기의 새끼들은 대가리도 세모꼴 비스무리하고 색깔도 어미와 비슷한 연한 갈색에, 한마디로 어미의 축소판이었단다. 그리곤 구렁이나 꽃뱀은 알을 낳지만 독사는 새끼를 낳는다는 말도 덧붙였다.

휴일을 맞아 농장을 찾은 차량들이 빼곡한 주차마당에서 우리는 헤어졌다. 나는 혼자 은사시나무가 늘어선 외딴 오솔길로 접어들며 상념에 빠졌다. 일이십 년 보이지 않던 뱀이 나타났다! 그렇다면 산이 원초적인 건강성을 회복하고 있다는 증후네. 이 어찌 반가운 소식이 아니런가. 그때 어디선가 끼익 끽끼익, 하는 음산한 소리가 들렸다. 이것은 벼락이라도 맞았는지 가지째 몸통이 찢긴 아카시아 고목에서 나는 소리였다.  좀 전의 나의 기쁨은 금방 우려로 바뀌었다. 독사 한 마리가 새끼를 아홉씩이나 낳는다구! 이거 보통 일이 아닐세. 오소리 같은 천적도 없는 마당에 몇 년만 있으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 산이 온통 독사로 우글거릴 거 아냐. 매봉산이 아니라 독사毒蛇산이 된단 말이지.

아마 독자들 가운데는 이 대목에서, 그럼 그 많은 뱀들은 뭘 먹고 사누? 쥐나 개구리가 그렇게 흔할 리도 없을 텐데, 하고 딴지를 걸고 싶은 분도 있으리라. 허나 그 문제는 별로 신경을 안 써도 되지 않을까 싶다. 뱀들은 주말 농장에 오는 사람들이 먹다 버린 삼겹살이나 사과쪼가리 귤 등 음식 찌꺼기를 먹으면 되니 말이다. 하지만 나의 이런 생각도 쓸데없는 걱정에 불과했다. 아까 아저씨가 말하지 않았던가. 수색 나갔다 잡은 어미 독사는 던져버리고 송 하사와 함께 새끼 아홉 마리를 구워먹었다고. 그러고 보니 뱀들의 천적은 오소리만이 아니었다. 등잔 밑이 어둡다던가. 인간들이야말로 바로 그들의 천적이었던 것이다.

 

 

《계간수필》로 등단.

번역가,  《좋은수필》  편집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