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소리

 

 

                                                                                       허세욱

열세 살 때 고향을 떠나서 백 칠십 리 북쪽에 있는 익산시, 한 중학교에 진학했다. 입학과 동시 나는 기숙사에 매였다.

기숙사는 작은 언덕에 세워졌다. 늙은 벚꽃나무 댓 그루가 우거져서 한낮이래도 침침했었다. 마당 밖 언덕으로 아카시아나 떡갈나무의 잡목들이 군락을 이루었는데 우리들 복도에서의 조망을 막지 않았다. 우리들 일학년 촌닭들은 모든 게 낯설었다. 도시가 처음이요 기숙사가 처음이었다. 물론 황소 뿔따구처럼 까만 기관차 화통을 뽑아 올린 기차를 처음 탄 이도 없지 않았다.

기숙사는 T자 건물이었다. 가운데로 한일자의 건물이 길게 뻗었는데 거기 길다란 낭하에는 일본식 유리창이 촘촘하게 정렬했었다. 그때 내 느낌으론 하얀 유리의 터널이었다. 나는 그 유리창에 기대어 남쪽 하늘 바라보는 것으로 가위 일과를 삼았다. 창밖은 먼 세상, 거기서 보는 게 편했다. 하지만 유리창 긴긴 일직선은 우리를 가두어 두는 우리로 보여서 때로는 답답한 생각이 치밀었다.

저녁을 먹고 나면 콧수염이 푸릇했던 선배들이 거기 유리창 창살에 두 팔을 올린 채 구슬픈 노래를 했다. 나는 낭하 안쪽 다다미방에서나 낭하 밖 벚꽃 나무 아래서 그걸 몰래 엿들었다. 그 가락들이 나처럼 고삐에 매인 소년, 아니면 갓 젖을 뗀 늦둥이에겐 번지가 맞았던 모양이다. 한 달이 지나고 한 학기가 지나자 나도 〈황성 옛터〉에 〈번지 없는 주막〉〈애수의 소야곡〉등을 흥얼거리게 되었다.

그 유리창이 열을 선 낭하는 나에게 또 다른 의미의 감성지대였다. 선배들이 그랬듯이 거기 창살에 팔뚝을 걸고 남쪽을 보면 거기 시야가 끝나는 곳에 이따금 구슬프게 기적이 울렸고, 그 유장한 소리 따라 비누 방울 같기도 비늘 구름 같기도 한 김이 둥 둥 떠내려갔었다. 그것들이 가을 날 기러기처럼 사라진 뒤 하늘은 깊은 우물처럼 짙푸르게 보였다.

그 기적은 십중팔구 지리산을 거쳐 여수로 가는 전라선의 것이었다. 익산역이 호남선과 전라선과 군산선의 교차라서 철도가 사통하지만 익산시를 동서 관통하는 길은 전라선뿐이어서 그렇다. 그 길로 남하하면 전주요, 전주에서 다시 백 리 길을 남하하면 오수, 우리 부모님이 계신 곳이었다. 그래선지 그 기적소리만 울리면 가슴이 설렘은 물론 눈까풀이 까닭 없이 축축했다.

일요일이면 나는 모처럼 학칙과 사규舍規에서 자유로운 날이었다. 그 무서운 공부와 그 군대 같은 기율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열 시면 취침하고 여섯시면 기상나팔에 깨는 시계 바늘 같은 생활에서 잠시 풀려나면 웬지 울고 싶었다. 어머니가 그리워서였다. 열세 살 소년에게 타관 땅 기숙사는 억지로 젖을 뗀 강아지였다. 익산에 하숙집도 많고 일가집도 없지 않았는데 아버지는 굳이 기숙사에 맡겼다. 아버지는 일 년에 두 번만 집에 내려오라고 엄명했다. 여름방학, 그리고 겨울방학. 그러니까 여기는 꼼짝없는 소년 유배지였다. 그리고 나를 떼어놓고 떠나실 때 남긴 말씀, 지금도 기억에 생생하다.

‘사내가 뜻을 세우고 고향을 나섰거든, 학성學成하기 전 돌아올 생각 말어라.’라고.

그때 170 리는 가위 천애의 거리였다. 더구나 일 년에 단지 두 번밖에 돌아갈 수 없는 고향이 저 기적소리 나는 하늘 저편에 있었다. 그래선지 일요일의 유리창 난간은 나에게 통곡의 벽 같은 것이었다. 거기에 팔뚝을 올리고 멀리 바라보노라면 아득히 기적이 울렸다. 그 일요일, 나는 마침내 전라선 철길에 섰었다. 철길은 높은 언덕이었다. 민가의 지붕들이 그 겨드랑이로 물결 쳤고 그 남쪽엔 만경벌이 바다를 이루었다.

때마침 여수로 가는 임시 열차가 퉁탕거리며 달려 왔다. 나는 얼른 철길에서 내려와 동익산을 통과하는 열차 그 기적소리를 가까이서 보았다. 시커먼 괴물의 무쇠 바퀴가 아찔했다. 하지만 그것이 멀어질수록 기관차위로 둥둥 멍울져 올라가는 김과 머얼리 떠돌다가 내 가슴을 허비고 출렁이는 기적 소리에 어머니의 치마꼬리를 놓친 아이처럼 목을 놓고 싶었다. 아니, 기차는 달리는 말이요 나는 고삐에 매인 소년일 뿐.

나는 그로부터 3년 뒤, 기숙사를 나왔다. 그리고 다시 1년 뒤, 세상은 온통 화약 냄새였다. 대학을 다니고 유학을 가고 그렇게 쏘다니는 동안 기적은 도처에 흔했지만 좀처럼 내 가슴을 허비는 일이 없었다. 다만 철마鐵馬가 오가느라 이랴 낄낄하는 갈도성喝道聲이겠지, 아니면 졸부들이 승용차를 몰고 부질없이 눌러대는 클랙슨이겠지, 귀에 담지 않았었다.

국내외를 들락거리며 모자 몇 개를 둘러썼다. 돌아가신 아버지 말씀처럼 학성은 한 셈이다. 그럼에도 머리가 희도록 귀향할 생각은 아직 없다. 물론 나의 귀향을 가타부타할 사람도 내게는 없다. 말하자면 모처럼 귀향의 자유를 누릴 때인데 웬 일인지 기적 소리가 별로 들리지 않았다. 새마을이나 KTX 같은 기차에겐 김이 모락모락 나면서 소리가 칙칙 폭폭하는 증기기관차를 내동갱이 친 것이다. 모든 게 전기요 컴퓨터의 자동시대인 것이다.

그런데 나는 요즘 깊은 밤, 선잠에 깨인 베갯머리서 기적 소리를 환청 하는 일이 생겼다. 천정을 맞대고 말똥말똥 눈을 굴리는데 기러기 울음처럼 아련한 기적이 들렸다. 호롱불 아래서 귀뚜라미 울음처럼 구슬펐던 어머니의 육자배기를 방불케 했다. 그리고 지그시 눈을 감고 잠을 청하면 다시 보인다. 만경 벌 황금 나락, 그 끝없는 파도위로 하얗게 김을 몽올몽올 뿜으면서 저 무한으로 달려가는 기관차, 그 목이 메인 기적이 들린다. 그러다가 UFO처럼 사라지는.

그것은 정녕 떠나가는 소리가 아니다. 어디로 돌아가는 소리다. 둥둥 구름 따라 저 하늘로 사라지는 소리다. 누가 요령을 흔들었으면 얼마나 아름다울까? 손사래를 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