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짜유기 그릇

 

 

                                                                                    정목일

금이 아닌 데도 햇빛 보다 환한 그릇을 바라본다.

기막힌 연금술이다. 우리 민족이 흙으로만 세계 제일의 청자와 백자를 빚어낸 줄로만 알았다. 여기 와서 보니 금속으로도 가장 아름다운 그릇을 만든 것을 본다. 놋쇠로 만든 그릇인데도 황금빛을 뿜어내는 광경을 보고서 저절로 경탄이 솟는다. 만져보고 손가락으로 튕겨보고 싶다. 진열장 속에서 개나리꽃처럼 환하게 웃는 방짜유기그릇들-.

예전부터 중국은 자기, 일본은 목기, 한국은 유기그릇을 주로 사용해 왔다. 제사 때나 명절이 되면 부녀자들이 유기그릇을 꺼내 놓고, 재나 기왓장 가루로 녹을 닦는 모습을 보아왔다. 유기는 거푸집에서 찍어내는 그릇이어서 녹이 슨다. 방짜유기는 망치로 두들겨서 얇게 펴면서 만든 그릇이어서 녹이 슬지 않는다.

나는 방짜유기 그릇에서 호박꽃 같이 순란한 광택을 본다. 그 광택은 황금, 자체에서 나는 빛깔과는 사뭇 다르다. 하얀 화강암에서 나오는 빛깔과 화강암을 수만 번 씩 정으로 쪼아가며 불상을 만들었을 때의 빛깔이 다르듯이 황금이 내는 빛깔과 방짜유기가 내는 빛깔이 다름을 느낀다.

조선시대에는 향로와 술잔 같은 제기, 식기류와 반상기를 비롯한 촛대, 화로, 세숫대야, 악기 등 많은 생활용품을 유기로 제작하였다. 일제 강점기 말인 태평양 전쟁 때, 일본은 한국인의 집집마다 뒤져 거의 모든 유기를 전쟁물자로 공출하고 유기제작을 금지시켜 한 때 전통이 끊길 위기에 처하기도 했다.

방짜유기엔 민족의 타고난 슬기와 자긍심이 빛나고 있다. 일제의 수탈과 제작 금지에도 장인들이 전통의 맥락을 이어온 것이 다행스럽다. ‘대구방짜유기박물관’에 와서 유기의 최상품인 방짜유기를 바라본다.         

불속에 달구어 망치로 수 천 번 두들겨야 점점 황금 빛깔이 나타나고 그릇은 제대로 속이 여물어지는가 보다. 종소리 같은 맑은 소리가 샘물처럼 흘러나오는가 보다.

방짜 유기는 불에 달구어서 몸을 태울 듯한 뜨거움을 참아낸 끝에, 쇠망치로 온 전신을 얻어맞으며 고통을 견뎌낸 끝에, 잘 익은 모과 빛깔과 속 깊은 맑은 소리를 울려내는가 보다. 뜨거운 불 맛과 모진 매 맛으로 만들어진 그릇이다. 온 몸채가 망치 자국으로 이뤄진 상처투성이의 그릇-. 이 상처와 상흔으로 더 강해지고 순금 같은 빛을 내며 녹이 슬지 않는 진짜 그릇이 되는가 보다.  

한 개의 과실이 익기까지 눈보라와 폭풍우와 뙤약볕이 있어야 한다. 가을에 얻는 사과 한 알의 빛깔과 향기와 과액은 온갖 시련의 과정을 잘 견뎌낸 인내의 결실이다. 평안과 무사안일無事安逸로 탐스럽고 향기로운 과실을 얻어낼 수 없다. 성숙과 완성을 위해선 남다른 단련과 투지와 고통의 과정을 거치지 않으면 안 된다. 훌륭한 사람의 위대한 업적도 수월하게 이뤄지지 않는다. 수많은 고통과 어려움을 극복하면서 단련과 성숙으로 자신의 꿈을 이뤄낸다.     

방짜유기는 구리와 주석을 78:22로 합금하여 거푸집에 부은 다음, 불에 달구어 망치로 두들겨서 만든 그릇이다. 도가니에 녹인 쇳물로 먼저 바둑알과 같은 둥근 놋쇠 덩어리를 만든다. 이 ‘바데기’라 불리는 덩어리를 여러 명이 서로 도우며 불에 달구고 망치로 쳐서 그릇의 형태를 만든다. 주물 유기와는 달리 정확히 합금된 놋쇠를 불에 달구어 메질(방망이질)을 되풀이해서 얇게 늘여 가며 형태를 잡아간다. 이런 기법으로 만들어진 방짜유기는 휘거나 깨지지 않고 변색되지 않는다. 쓸수록 윤기가 나고 독성이 없으므로 식기류를 만들 뿐만 아니라, 징, 꽹과리 같은 타악기도 만든다.

하늘과 땅과 사람의 마음을 함께 울리는 우리 타악기 징, 꽹과리가 방짜기법으로 제작되기에 소리를 들으면 피가 끓고 가슴이 뜀을 깨닫는다. 오, 우리 민족의 피 속으로 울려서 신명이 되고 환희를 만드는 소리가 귓가에 쟁쟁 들려오는 듯하다.   

대구에서 〈수필의 날〉 행사를 끝내고 팔공산에 있는 대구방짜유기박물관을 관람하게 된 것이 방짜유기그릇의 아름다움을 발견하게 된 계기가 됐다. 방짜유기그릇에서 녹슬지 않고  당당한 민족의 그릇을 발견한다. 주석과 구리의 합금으로 방짜라는 기법을 사용하여 찬란한 연금술을 빚어낸 선조들의 솜씨와 지혜에 탄복한다. 우리 민족은 타고난 예능적인 솜씨로 고려청자, 조선백자와 함께 방짜유기를 만들어 그릇 공예의 으뜸임을 입증하고 있다.

녹슬지 않고 쓸수록 윤기가 나며 깨어지지 않는 방짜유기 그릇은 우리 민족의 자랑거리가 아닐 수 없다. 방짜유기그릇에 끈기와 인내와 슬기가 번쩍인다. 민족의 특성을 잘 살려 만든 그릇이 아닌가 한다. 내 인생도 방짜유기 그릇이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