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법 연구

 

 

                                                                                  권일주

짧게 오는 공을 받아치려고 뛰어가다가 계여사가 앞으로 굴렀다. 운동화 밑창에 문제가 있거나, 너무 급하게 뛰어가려다 두발이 서로 엉켰을 것이다. 60중반을 넘은 나이가 나이인지라, 순간 함께 게임을 하던 모두가 숨을 죽였다. 앞이마가 깨졌던지, 쓰고 있는 안경이 뭔가 큰일을 저질렀던지, 아니면 어깨나 무릎 어딘가에 심한 골절이 생길 수도 있는 상황이다. 상대편 코트에 서있던 내가 라켓을 던져놓고 달려갔더니, 계여사가 어깨를 툭툭 털며 웃는 얼굴로 일어났다.

“괜찮아요, 다친 데 없어요. 내가 구르는 법을 좀 알거든요. 순간적으로 가슴을 오므리고 어깨로 몸을 감싸 안았어요 ”

테니스 코트에서 종종 일어나는 일이다. 지난달에는 김 교수가 머리 위로 훌쩍 넘어 오는 로빙 볼을 잡으려고 뒷걸음질을 치다가 뒤로 벌러덩 나자빠진 일이 있었다. 저, 뒤통수! 하며 모두 가슴 철렁해 했지만, 김 교수도 이내 운동복 바지엉덩이를 툭툭 털며 일어났다.

“이젠 내 몸이 넘어지는 법을 좀 알고 있나 봐요”

기계체조, 리듬체조 같은 것을 볼 때면 숨을 죽이고 있다가 늘 마지막 착지하는 순간에 박수를 치게 된다. 두 발이 바닥에 사뿐히 내려앉으며 하늘을 향해 두 팔을 높이 들고 고개를 뒤로 착 젖히는 순간, 누가 시키지 않아도 저절로 박수가 나온다. 물론 그것이 매끈하게 마무리 되지 않고 발이 두세 번 허둥거리며 몸이 중심을 잃거나 엉덩방아라도 찧게 되면, 그걸 보는 이의 안타까움은 이루 다 말할 수가 없다. 아! 하는 신음소리가 합창하듯 여기저기서 터져 나온다. 착지하는 순간, 공중에서 떨어지는 그 순간의 모습이 그 모든 과정의 결과이고 마무리라는 생각을 모두가 무의식적으로 하고 있는 것이다.

가끔 산에 오른다. 두툼한 운동화 하나만 신고 현관을 나가면 바로 뒷산으로 오르는 길이 시작되는 곳에 운 좋게도 살게 된 덕분에, 자투리 시간에 산보하듯 가벼운 마음으로 나서기도 하고 그러다가 간혹 제풀에 짓이라도 나면 교외의 산을 기웃거리기도 하고, 또 어쩌다가는 전국의 여러 산을 넘보며 깜냥도 안 되는 욕심을 부려보기도 한다. 산을 오른다고 해서 무슨 심오한 생각을 하는 것도 아니요, 사랑스러운 눈길로 풀숲을 헤집어 본다든지 햇빛에 일렁이는 나뭇잎들을 으음! 예쁘다, 하며 정이 담긴 눈으로 바라보는 그런 타입도 난 아니다. 올라갈 땐 그저 무리하지 않게 체력을, 호흡을 조절하는 것만을 생각하며 걷고, 또 내려올 땐 헛발을 딛거나 미끄러지지 않고 무사히 내려가는 일에 온 정신을 쏟으며 내려올 뿐이다. 마음을 거의 백지상태에 놓고 그저 걷는다. 그리고 늘 올라가는 것보다 내려가는 일이 더 힘이 들고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뒷산을 느릿느릿 가든, 용기 내어 먼 산을 저벅저벅 가든, 여전히 극복하지 못하는 문제가 하나 있다. 가는 도중에 문제가 생기면 애초에 계획했던 것을 빨리 포기하고 돌아서서 내려와야 하는데, 돌아서는 것이 잘 되지 않는다. 급히 컨디션이 떨어졌다든지, 갑자기 날씨가 험악해졌다든지 하는 경우가 그런 경우이다. 입 끝으로는 돌아서자, 돌아서자 하면서도 미련을 버리지 못해, 갑자기 쏟아지는 폭우로 관악산 골짜기에서는 물에 떠내려갈 뻔했던 일도 있고, 갑자기 힘이 빠져 얼굴색이 하얗게 되고 귀가 멍멍해져 버리는 바람에 아무데나 풀썩 주저앉아 혼이 났던 적도 있다. 그러면서도 여전히 도중에 돌아서기가 그렇게 어렵다. 매번 고집을 부려 가족들의 눈총을 받기 일쑤다. 자신이 그런지라, 신문에서 히말라야 등반에 오른 산악인들이 악천후를 만나 몇 번째인가의 캠프에서 철수했다는 기사를 볼 때면, 그런 결정을 내리는 일은 정상에 태극기를 꽂는 일보다 더 어려운 일이었을 것이라고 나름대로 확실하게 단정한다.

그러나 생각해보면, 올라가는 것 보다 내려오는 일이 더 힘이 들고 중요한 일이 어디 산뿐이겠는가. 매사를 형광등 타입으로 살아 온 나는 60여년을 살고, 이제야 겨우 어슴푸레 그걸 눈치 채고 있는 듯하다. 더구나 자의든 타의에서든 자기 인생의 정점에서 내려오는 일은 아주 어려운 일일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왕성하게 하던 일에서 조금씩 손을 떼는 일도 그러할 것이요, 튼튼하고 건강하다고 뽐내던 몸에서 하나 둘 손을 놓는 일도 그러할 것이다. 기억력 하나만 철석같이 믿으며 수첩 같은 건 내 사전에 없다고 큰소리치다가 어느덧 무엇이든 수첩을 뒤적이어야 안심이 되는 자신을 돌아보는 심정은 더욱 그러할 것이다. 나 역시, 마무리가 성에 차지 않는다고 느끼면서도, 또 두 발이 안정되게 착지를 하지 못해 중심을 잡지 못하고 허둥거린다는 것을 느끼면서도, 많은 일에서 손을 거두고 자신을 접는 일은 점점 더 어려운 일이 되어 간다. 내 삶에서 더 이상 만회할 시간이 남아있지 않다고 느끼기 시작한 작년 올해 더욱 그러하다.

낙법, 구르는 법, 넘어지는 법, 돌아서는 방법, 그런 어휘들이 머릿속을 시끄럽게 휘젓고 다니는 나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