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단역 신탄리

 

 

                                                                                 백임현

경원선 최북단에 있는 신탄리역은 서울에서 이백리쯤 더 북쪽으로 가야하는 전방의 한 작은 정거장이다. 분단되기 전에는 이 곳이 금강산도 가고 명사십리의 휴양지 원산까지 가는 길목이었고, 또한 경원선은 러시아의 블라디보스톡을 거쳐 시베리아를 횡단하여 유럽대륙으로 가는 통로의 중요한 철도 노선이었다. 그러나 휴전이후 신탄리역은 경원선의 마지막 정거장이 되었고 더 이상 북쪽으로는 가지 못하는 서글픈 <중단역>이 되었다. 무성한 잡초 속에 북으로 가는 철길은 아직 누워 있으나 반세기 넘는 세월 제구실을 못하고 풍상에 녹슬고 스러져 지금은 쓸모 없는 고철이 되어 분단의 아픔을 되새기게 한다.

나는 그 곳 나들이를 자주 한다. 집에서 거의 두 시간이 소요되는 먼 길이지만 가는 길의 경치가 좋고, 약간 긴장감을 갖게 하는 전방 특유의 분위기도 괜찮아 어딘가 나가고 싶을 때는 가볍게 책 한 권을 챙겨들고 기차를 탄다. 책을 읽다 눈이 피곤하면 바깥 풍경을 보면서 눈에 피로를 씻고 마음 맞는 사람과 동행일 때는 즐거운 대화를 나누며 행복한 기차여행을 한다.

신탄리행 교외선 열차는 동두천역에서 매시 50분에 출발한다. 서울에서 동두천까지는 시가지로 이어져 시골길에 나섰다는 느낌이 별로 없지만 일단 교외선 열차를 바꿔 타면 그 때부터는 시원한 전원풍경이 펼쳐져 일시에 시야가 확 열리는 것 같다. 우선 하늘이 시원하다. 손에 잡힐 듯 유유히 떠 가는 구름, 진초록 주단을 깔아 놓은 듯한 푸른 들. 열차는 드넓은 하늘과 땅 사이를 장난감 기차처럼 신나게 달리면서 산굽이를 돌고, 하천을 건너고, 농가의 해바라기 담장을 꿈처럼 지나간다. 복잡한 도심에서 아파트 너머의 옹색한 하늘과 조각 난 구름에 식상한 눈이 어느새 맑게 씻겨진다. 자연이 비교적 훼손되지 않고 보존되어 있는 신탄리길은 사철 어느 계절이나 이렇듯 풍경이 아름답다.

그러나 이처럼 평화롭기 그지없는 신탄리길이 전쟁 때는 전투가 가장 치열했던 중부전선 격전지였다. 그래서 기차를 타고 신탄리를 갈 때면 착잡해지는 마음을 어쩔 수 없다. 서울을 가장 먼저 점령한 것도 의정부를 거쳐 미아리 고개를 넘어 온 이쪽 전선이었고, 휴전을 앞두고 피아간 한 치의 땅도 양보할 수 없는 절대 절명의 마지막 전투에서 격전이 가장 치열했던 현장이 이곳이며 그 때 수 많은 젊은이들이 숨져간 피어린 땅도 이 곳이다. 6·25때 집안의 젊은이 몇 사람이 전사한 곳도 이 중부전선이었다. 전투가 가장 격렬했던 <백마고지>의 능선도 이 부근이어서 전쟁을 모르는 젊은 등산객들의 견학 코스가 되어 있다.

한탄강, 전곡, 연천등은 곡창지대로 들이 넓다. 올해도 농사가 잘 되어 수확기를 앞 둔 들녘은 논마다 풍년이고 밭마다 곡식이 영글어 보기만 해도 절로 마음이 넉넉해진다. 그러나 이 지역은 원래 38선 이북인 북한 땅이었다. 이 곳이 북한 땅이었기에 풍요가 넘치는 논밭을 보면 해마다 흉년으로 굶주리는 북한 주민을 생각하게 된다.    

신탄리역은 규모가 작고 아담하다. 초창기에는 깃발만을 흔들고 지나치는 신호처였으나 70년대 역으로 승격된 지금은 최전방에 위치한 경원선 마지막 중단역이라는 특수성 때문에 사람들의 관심도 많아지고 타고 내리는 사람도 많아 휴일 같은 때는 제법 붐비고 있다. 차에서 내리면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이 해발 832미터의 높은 고대산과 산등성이마다 커다랗게 새겨진 군사용 표식이다. 그리고 민가 없는 황량한 벌판 여기저기 자리 잡고 있는 군부대의 검은 막사와 건물이다. 포성은 들리지 않으나 주변의 환경이 전시의 일선지구에 온 것 같은 긴장감을 준다. 경직되기 쉬운 사람들의 이런 마음을 어루만지듯 신탄리역은 예쁘게 단장한 여인처럼 사철 꽃을 가꾸어 이곳을 찾는 사람들에게 따뜻한 정감을 준다. 역사 주변에는 봉숭아, 채송화, 백일홍, 과꽃등 재래식 화초로 꽃길을 꾸며 고향마을에 온 듯한 인상을 갖게 한다. 전국 어디나 정거장이 있는 부근은 역세권이라 해서 세련된 새 건물이 들어서고 투기바람이 불게 마련인데 이곳은 어찌된 일인지 아직까지 시대의 바람을 타지 않고 옛 모습 그대로 시골스럽게 한적하다. 몇 집 밖에 없는 소박한 음식점, 정비되지 않은 좁은 길, 길가에 있는 지붕 납작한 옛날 다방. 그나마 문을 닫고 있을 때가 많아 식사 후 차 한 잔 마실 곳이 마땅치 않다. 그러나 계산할 줄 모르고 사는 이런 불편들이 오히려 정겹고 마음 편해서 나는 신탄리가 좋다.  

지금은 보잘 것 없는 이 작은 마을도 언젠가 통일이 되면 금강산, 원산, 두만강을 찾아가는 승객으로 붐비게 될 것이다. 그 날을 대비하듯 역 앞 커다란 게시판에는 우리나라 북녘의 지도가 그려 있고 북의 주요도시로 가는 철도 노선이 표시되어 있다. 사람들은 한참씩 그 지도 앞에서 가 본 적 없는 북의 도시들을 눈여겨 살펴본다. 신탄리를 기점으로 금강산 125킬로, 원산 131킬로 두만강 757킬로, 서울 92킬로, 나도 신탄리에 가면 습관처럼 그 지도 앞에서 경원선이 닿는 도시들의 거리를 가늠해보곤 한다. 서울을 중심으로 생각해 볼 때 금강산, 원산은 한나절이면 충분히 갈 수 있는 거리이다. 그러나 분단이후 그 곳은 달나라보다 멀다. 정치적인 이유로 걸핏하면 막혀버리는 금강산 관광도 멀기는 마찬가지다.

중단역답게 역사 안에는 분단의 아픔과 통일의 염원을 담은 시인들의 글이 여러 편 전시되어 있다.

그 중에서도 시인 이돈희씨가 쓴 <신탄리>의 몇 구절은 수 없이 다시 읽어도 마음이 숙연해진다.

 

다음 역 이정표 없는 철도 중단역

낙엽 구르고 억새 서걱이는 레일 없는 철길

북으로 더 못가고 그르렁거리던 통일호열차가  

잡목 숲 산을 돌아 남으로 간다.

              

황량하고 조용하고 조금은 서글픔을 주는 경원선 중단역 신탄리. 고대산 높은 봉우리에 올라 북쪽을 바라보면 시인의 가슴이 아니더라도 우리 민족의 아픈 역사와 민족의 숨 막히는 한을 노래하지 않을 수 없다. 오늘도 나는 신탄리에 와서 그 시를 또 읽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