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것, 가는 것

 

 

                                                                                최원현

11월 동짓달은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난 달이지만 아버지가 이 세상을 떠나신 달이기도 하다. 내가 태어난 날이 열이틀인데 아버지께선 내가 돌을 맞은 지 보름 후에 당신의 또 다른 나라로 가버리고 마셨다.

그래서일까. 몇 년째 11월이 오면 마음 한 쪽이 한껏 비어있는 느낌이 들곤 한다. 벌써 반세기도 더 지나간 세월이건만 참으로 모를 일이다. 그러고 보면 세상은 오는 것과 가는 것들의 정거장인 셈이다. 그 하고많은 것들 중 하나가 나인 것이다. 그 하고 많은 것들 중에서 인연이 되어 부부로 가족으로 부모 형제간으로 만난 것이다. 그 하고많은 것들 중에서 별나게 사랑하고 내 것이라 하는 것이다. 그렇고 보면 내게 11월은 이런 우리 삶에 살아가는 법, 살면서 지켜가야 할 생각이며 마음이며 자세를 일깨우고 더 구체적으로 보여주는 달인 것 같다.

아버지께선 참 정이 많으셨다 한다. 오랜만에 만난 지인이 당신보다 못해 보이면 심지어 입고 있던 옷까지라도 벗어주는가 하면 집으로 데려가 무엇을 찾아내서라도 주어 보냈다고 한다. 나는 아버지에 대해 아는 것이 별로 없지만 아버지를 아는 많은 사람들은 내가 모르는 아버지에 대한 것들을 그렇게 이야기 해 주곤 했다. 아버지는 이 세상에 오셨다 간 흔적을 그런 식으로 남기셨다. 하기야 이젠 아버지를 알던 분들도 다 돌아가셨으니 어쩜 아버지의 흔적이라곤 오로지 단 하나 혈육으로 남은 나뿐일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내 가슴 한 쪽이 이리 더 아리고 허전해 지는 것일까. 그것은 나도 이미 나이 들어 인생의 가을에 있다는 말하자면 뭔가에 쫓기는 것도 같고, 다가올 것에는 불안해 한다는 의미도 될 것 같다.

딸아이가 아이를 낳았다. 내겐 첫 손주다. 이제 백일이 갓 지났는데 아무리 바라봐도 싫증이 나지 않고 보는 것만으로도 세상이 온통 행복이다. ‘손녀 예쁘지요?’ 하고 물어오는 사람에겐 괜히 멋쩍어지면서 빙그레 웃음으로 답을 한다. 그 웃음 속엔 참 많은 뜻이 담겨있음을 그들도 알리라. 이미 손주를 본 사람쯤 되면 ‘잘 알잖어?’가 될 것이고, 아직 그 맛을 모를 사람에겐 ‘나중에 할아버지 되어봐!’일 것이며, 더러는 어떤 광고 카피처럼 ‘너희가 이 맛을 알어?’도 될 것이다.

오고 만나고 맺던 것들이 어느 날 홀연히 떠나버리고 풀어지고 없어져 버려 아픔이고 슬픔이 되는 것은 생명 있는 것들에 지극히 자연한 현상이련만 그걸 수용하고 인정하는 데까진 만만치 않은 삶의 이해가 필요한 것이다.

해마다 5월이면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 병을 앓았었다. 그런데 나이가 더 들어가면서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 뒤켠으로 밀려나 있던 아버지의 존재가 조금씩 실체를 더해 가는가 싶더니 그것은 어느새 나의 모습이 되어 있었다. 뿐 아니라 그저 내 눈으로만 바라보던 세상이었는데 어느 날부터 세상이 나를 어떻게 보고 있을까 거꾸로 생각을 하게 된다. 하기야 손녀를 본 반가움과 기쁨 한 쪽에 벌써 너희 세상이 시작되는구나 하는 쓸쓸한 퇴장의 뒷맛이 느껴지던 것을 어쩔 수 없었다.

시골에 가서 살고 싶다던 아내가 얼마 전 시골 텃밭에 심어놓았던 고구마 몇 줄을 캐왔다. 그러고선 끙끙 앓는 것을 보면서 마음은 그대로일지 몰라도 몸이 받쳐주지 못하니 결국 하고자 하는 것도 마음뿐이 될 수밖에 없음을 실감했다. 그랬다. 고구마 다섯 고랑을 심는 것도 거두는 것도 그렇게 벅찰 수가 없었다. 일도 해 본 사람이 한다고 오랜 도시생활에 젖어있던 손과 발이 하루아침에 무슨 농사일을 제대로 해 내겠는가. 농사일이 어디 그냥 힘으로만 하는 일이던가. 그 또한 수많은 시행착오와 각고의 노력으로 이뤄지는 결실 아니던가.

내가 할아버지가 되면서 어머니보다 아버지가 더 생각나고, 맞이하는 기쁨 속에서도 내가 떠나야 할 길을 생각하는 것도 세상의 모든 것이 오는 것이 있으면 가야 할 것이 있고, 만나면 헤어져야 하는 것이 가장 기본적인 자연의 섭리요 질서임을 말하는 것임이리라.

그러고 보니 시골에서 가지 채 꺾어다 걸어놓았던 두 개의 감이 그땐 가장 파란 것으로 골라 꺾었었는데 어느덧 예쁜 감빛으로 익어있다. 저 또한 오고 감의 이치 속에 시간이 흐르자 제 빛을 보여주는 것이 아닌가. 그래 어쩌면 지금 이 순간에도 새로운 시대가 우리 시대를 밀어내고 있을 게다. 우리가 버티고 있을 수 없는 것이요 또 사랑이란 내 자리를 내어줄 줄 아는 것 아니랴.

오고 가는 것들 속의 지극히 작은 한 존재일 나이지만 나만의 흔적을 위해 남은 삶을 보다 열심히 살아야겠다. 두 개의 감이 나를 바라보며 저희는 가을이라며 활짝 웃고 있다. 하지만 바깥 날씨는 벌써 겨울임을 어쩌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