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대학

 

 

                                                                                심규호

삶은 편하지 않다. 식구 중에 누군가 아프거나 장애를 가진 이가 있기도 하고, 가정에 남편이나 부인이 없는 경우도 있다. 경제적으로 곤란을 겪으니 생활에 여유가 있을 리 없다. 분명 열심히 일을 하고 있기는 한데 돌아오는 것이 별로 없다. 남에게 피해주지 않고 올바르게 살려고 애쓴다고 하지만 궁핍한 생활은 나아지지 않고 오히려 더욱 깊은 수렁 속으로 빠져드는 것만 같다. 그렇다고 배운 것이 많은 것도 아니고 가문이 좋은 것도 아니다. 어쩌면 처음부터 불리한 경주를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장거리 출발선 아주 뒤편에서 발에 맞지도 않는 신발을 신고, 두터운 외투까지 걸치고 달려야한다면, 출발선 또는 그 앞에서 산뜻하게 출발하는 저들을 따라가기란 처음부터 불가능한 것인지도 모른다. 아무도 두터운 외투를 벗으라고, 신발을 갈아 신든지 아예 벗어버리라고 말하지 않았다. 아니 그럴 수 없었다. 그래서 그들은 달려갈수록 몸이 무겁고 힘들었으며, 그렇게 지치고 있었다. 나는 그들을 희망대학에서 만났다.

희망대학은 물론 교육과학기술부 장관이 정식으로 인가한 대학이 아니다. 배움터이니 그저 학교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주로 철학이나 문학, 예술 등 인문학을 가르치고 배우는데다 성인들을 대상으로 하고 있어 대학이란 명칭을 썼을 뿐이다. 학교 이름을 희망이라고 한 것은 주로 사회적으로 소외받고 있는 빈곤층에 속하는 학생들이 인문학 강좌를 통해 자신의 삶에 희망을 품을 수 있다는 믿음에서 출발했기 때문이다. 그 시작은 미국의 얼 쇼리스가 창시한 가난한 사람을 위한 인문학 배움터인 ‘클레멘테 코스’이다. 현재 미국을 비롯한 다섯 나라에서 다양한 형태로 진행되고 있다는데 우리나라는 2005년 9월에 성공회대에서 처음으로 한국형 클레멘테 코스가 진행되었다. 주로 노숙자들을 대상으로 하였으며, 학생들 스스로 새로운 길 찾기에 나섰다고 할 정도로 성과를 얻었다고 한다.

처음 나는 <글쓰기와 한자>라는 과목을 맡았다. 첫날, 글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글이 글이지 뭐라는 대답! 뜬금없는 질문에 뻔한 대답으로 시작된 우리들의 강의는 때로 엉뚱한 답변이 이어지긴 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제법 그럴 듯한 질문과 답변을 주고받으며 점차 익어가고 있었다. 석 달 동안 매주 한 번씩 만나면서 때로 ‘자신에 대한 글’을 읽으며 함께 눈물을 흘리기도 했고, ‘여자’ 또는 ‘사랑’이라는 주제를 가지고 격론을 벌이기도 했다. 주로 아줌마, 그것도 억척스럽지만 결코 자신을 내세운 적이 없었던 그녀들의 삶에 대해 깊숙이 들어가 본 적이 없는 나는 그들의 글과 말에서 새삼 내 무지를 고백해야만 했다. 때로 이젠 아스라하게 잊어버린 단어들, 예를 들어 ‘공순이’나 ‘차장’의 ‘오라이’ 소리에 지금 그녀들은 무엇을 하고 있을까 함께 고민하기도 했고, 자신의 ‘유언장’을 낭독하는 어느 선생님(교사들은 학생들을 선생님, 학생들은 교사를 교수님이라고 불렀다)의 낮은 목소리에 우리는 결코 올 것 같지 않은 자신의 죽음을 생각하기도 했다. 이외에도 우리는 어느 선생님의 글에서 산딸나무, 때죽나무, 층층나무가 여름 꽃이 피는 대표적인 나무들이란 사실을 처음 알게 되었으며, 간병사나 요양사 등 자활근로센터에 일하는 선생님들의 삶을 엿볼 수도 있었다. 주로 여러 선생님들이 제출하는 과제물은 그날 강의의 좋은 이야깃거리가 되었다. 그 속에서 우리는 대중가요에도 아름다운 사랑의 시가 얼마나 많은지, 자신의 마음을 거짓 없이 내보인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그냥 이야기와 소설은 무엇이 다른지, 시가 정말 세상을 삐뚜름하게 보는 일인지, 요즘 시는 왜 자꾸만 어려워지는지, 책을 읽고 감동을 받았을 때 그 감동은 도대체 어디에서(내 마음인지 아니면 책인지) 오는 것인지 등에 대해 함께 이야기하면서 때로 공감하거나 때로 고개를 갸웃거리기도 했다.

그렇게 시간이 흘렀다. 1년 과정이 끝나고 졸업하는 날, 학사모에 가운을 입고 다소곳하게 앉아 있는 이들. 그들은 졸업장과 더불어 모든 선생님들이 함께 만든 글 모음집, <희망씨앗>을 나누어 가졌다. 누군가는 그 모음집에서 이렇게 썼다.

“강의할 때 졸음을 참지 못하고 자꾸 눈이 감기곤 했다. 조금은 죄송하고 부끄러울 때도 있었다. 책을 한 권씩 주시면 그것 또한 큰 기쁨이었다. 책의 깊이는 알 수 없지만. 언제 우리가 이 귀한 책을 볼 수 있을까? 우리들 수준에 맞추려고 애쓰시는 교수님들의 모습이 떠오른다. 시간이 흐르고 졸업식 날이다. 내 마음은 떨리고 있었다. 졸업장을 받는 순간 내 커다란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 기쁨과 감사의 눈물.”

‘기쁨과 감사의 눈물’은 우리 모두의 것이었다. 어쩌면 그 눈물은 우리 모두의 ‘희망씨앗’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그렇게 아주 작은 희망의 씨앗을 하나씩 품고 흩어졌다. 그 씨앗이 어떻게 발아하여 아름다운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을까? 알 수 없다. 아마도 세상은 예전과 마찬가지로 그렇게 돌아갈 것이다. 가난은 여전히 삶을 피곤하게 할 것이고, 짜증나는 생활에 때로 아이들이나 다른 누군가에게 괜히 신경질을 부리거나 자신을 탓할 때도 있을 것이다. 차별과 소외가 어느 날 갑자기 사라질 것 같지도 않다. 그러나 그들은 이제 스스로 ‘아름다운 사람들의 행복한 이야기’(그들이 주로 다니는 자활센터의 소식지 이름이다)를 재미있게 하고 있다. 삶이 때로 삶을 주눅이 들게 할지라도 그런 삶이 아름다운 사람의 행복한 삶을 만들 수도 있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일까? 어쩌면 그런 삶의 모습이 이미 희망씨앗이 싹이 트고 자라나 예쁘게 피어난 꽃이 아닐는지?

 

 

《계간수필》로 등단(99년).

제주 포럼 대표, 제주산업정보대학교 중어과 교수 겸 학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