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역국 한 그릇

 

 

                                                                                       고임순

지금까지 살면서 먹은 음식 중에 밥, 김치와 함께 미역국만큼 자주 먹은 음식은 없을 것이다. 부들부들하고 미끌미끌하여 입에 들어갔다 하면 미끄럼 타듯 그냥 목구멍으로 넘어가는 미역국. 생일 때와 해산할 때마다 먹었는데도 물리지 않는 나의 기호음식이다.

칼슘과 요오드가 많아 피를 맑게 해주고 혈액 순환을 촉진하는 등 우리 인체에 유익한 미역국. 이 영양식은 출산풍속과 밀접한 한국 음식으로 우리 민족이 이미 고려시대부터 즐겨 온 음식이다. 그리고 생일에 미역국을 먹는 것은 어머니의 출산 고통을 되새기면서 부모님 은혜에 감사하기 위함이었다 하니 얼마나 효심 깊은 민족인가.

내가 난생 처음 요리 해본 음식도 미역국이었다. 금세 배울 수 있고 조리가 쉬운 음식이어서 어머니가 막내 동생을 해산할 때 중학생인 나는 미역국을 끓여 어머니께 드린 일이 있다. 땀을 흘리며 서툰 솜씨의 미역국을 훌훌 넘기시는 어머니 모습을 보고 효녀의 대열에 끼기라도 한 듯 얼마나 대견스러웠던가.

미역국에서는 독특한 향기가 난다. 바다 내음이다. 비릿한 바닷물 속에서 풍란을 이기고 호방하게 자란 해초 왕다운 향기. 언젠가 TV화면에서 89세 해녀가 바다에 뛰어들어 걷어올리는 미역 다발을 본 일이 있다. 한 마리 인어처럼 바다 속을 종횡무진으로 누비며 전복, 소라, 해삼 등을 따다가 미역 군락지대에 이르러서는 무더기 미역을 베어 바다 위로 던졌다. 그 노구의 열정이 가닥가닥 맺혀 장곽長藿을 이루는 바다 영양소의 결정체. 이렇게 넓적하고 긴 미역만이 바다의 정기精氣를 휘감고 우리 앞에 향기를 내뿜는 것이다.

미역국 향기를 유별나게 진하게 느낀 것은 이역만리 미국 버팔로의 어느 마을에서였다. 딸의 해산 간호를 하면서 아침에 미역에 참기름과 홍합을 넣고 볶다가 국을 안치고 밖에 나가 산책하면 녹지에 퍼지던 미역국 냄새, 그 향기는 주위에 밴 버터 냄새를 밀어내고 청량제가 되어 내 코끝을 자극하는 게 아닌가. 바로 내 고향, 어머니에 대한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진한 향기였다. 나는 그 향기에 취해 한참 동안을 녹지를 서성거렸다.

나는 지금까지 얼마나 많이 미역국을 끓였는가. 시부모님, 두 시누이, 3남매, 그리고 남편과 나. 아홉 식구의 생일이 돌아올 때마다 즐겁게 미역국을 끓였다. 그냥 미역을 담갔다가 건져 적당히 끓이는 게 아니었다. 갖은 양념으로 주물린 고기와 함께 미역을 볶다가 끓이면서 그날 생일을 맞는 식구의 건강을 기원하며 그 곁을 지켰다. 이렇게 정성 담뿍 들인 미역국을 먹는 식구들 모습을 보노라면 주부의 역할을 조금은 한 것 같아 흐뭇했다.

그런데 정작 내 생일에는 내 스스로 미역국을 끓이기가 싫었다. 내가 먹자고 내 손으로 끓이기에는 무언가 서글펐기 때문이다. 시어머님께서 이러한 내 마음을 헤아리시고 손수 끓여주셨다. 언젠가 내 생일인줄도 모르고 강의를 하고 늦게 집에 돌아온 적이 있었다. 시어머님이 미역국뿐 아니고 생선전, 빈대떡, 불고기, 잡채 등 푸짐하게 내 생일상을 차려주셔서 얼마나 감사하고 기뻤는지 모른다.

세월이 간다는 것은 서글프다. 살다 보니 시누이가 차례로 시집을 가고 시아버님이 노환으로 세상을 떠나시자 몇 해 후 그 길을 시어머님도 따라가셨다. 이렇게 식구들이 떠나가자 미역국 끓이는 횟수가 줄었다. 아이들이 커가니 딸에게 미역국 끓이는 법을 가르쳐 주고 내 생일에 끓이도록 했다. 가정적이고 요리하기를 즐기는 남편이 한몫 끼어 들어 이따금 내 생일에 미역국 끓이는 실력 발휘를 해 보이는 것이다.

어느 듯 성장한 3남매가 결혼을 하고 분가하자 우리 부부만 마주 앉아 밥상을 대하게 되었다. 미식가인 남편을 위해 매일 메뉴를 바꾸며 남편 입맛을 돋우는 요리 만들기에 전념한 나날들. 이러한 세월이 길게 이어지기만을 바라며 남편의 생일이 돌아오면 미역국은 물론 좋아하는 토란국과 민어 요리도 곁들여 준비했다. 한편 달력에 동그라미를 그린 내 생일이 다가오면 전날에 미역을 담가 놓은 남편은 아침 일찍 일어나 미역국을 끓여 주었다. 사랑이 듬뿍 들어있는 미역국 맛은 그 어느 때보다 일품이었다.

이렇게 서로 미역국을 끓여 주는 생일을 보내면서 사랑은 쌓이고 세월은 흘러갔는가. 지난 우리들의 시간은 맛있는 미역국을 끓여 먹을 수 있는 축복 속에 마냥 행복했다. 그렇지만 붙잡아도 가는 세월 속에 우리는 어쩔 수 없이 유순히 변해갔다. 점점 건강을 잃은 남편은 투병생활 중에도 꼭 내가 만든 음식만을 즐겼다. 그러나 종국에 미역국 한 모금 넘기지 못한 채 어느 날, 인생의 모든 희비애락을 포옹하듯 감싸안고 자연으로 돌아갔다.

신록이 싱그러운 5월이 저무는 무렵, 나는 생일을 맞는다. 생일 아침, 상에 올라와 있는 내가 끓인 미역국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평생 끓인 미역국인데 오늘 따라 왜 이렇게 맛이 없을까. 부실한 이빨 사이로 그 부들부들 미끌미끌한 미역 가닥이 급류를 타 듯 넘어갈 뿐이다. 그러자 문득 들려오는 바다의 기별. 새 생명이 탄생할 때마다 죽음 같은 진통을 말끔히 치유해주던 미역의 효험이 지금 소금 뿌리듯 아려오는 가슴앓이도 가라앉혀주고 있노라고. 지나고 나면 고통의 날이 얼마나 소중한 날이었나를 알게 된다고.

텅 빈 집에서 벽을 쳐다보고 나 혼자 먹는 미역국 한 그릇. 창 밖에서 새 한 마리 말똥말똥 기웃거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