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항에서

 

 

                                                                문혜영

아이들에게로 날아가는 꿈을 참 많이도 꾸었다.

해마다 봄이 오면 민들레꽃이 지천으로 핀 들판에서 화환을 만들어 머리에 쓰고, 여름이 오면 울창한 자작나무 숲에서 숯불에 고기를 구워 먹으며 샤슬릭 피크닉을 즐기는 아이들. 가을은 오기 바쁘게 지나가버려서인지 딸아이 홈피엔 눈 쌓인 자작나무 숲에서 썰매를 타는 현민, 현송이 모습이 어느새 올라와 있곤 했다.

모스크바로 발령이 난 사위를 따라 딸아이가 떠난 것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5년이 흘러버렸다. 한번 다녀가시라는 아이들의 청을 계속 미뤄왔다. 투병의 후유증으로 척추통증이 극심해서 아홉 시간이나 소요되는 비행을 감당할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올해 들어서는 체력이 좀 살아나는지 몇 시간 차 속에 앉아있는 것도 견딜 만해서, 이번 여름은 모스크바로 날아가 아이들과 함께 보내기로 작정을 했다.

떠나는 일이 참 쉽지가 않다. 한 달 동안이나 집을 비우려 하니, 우선 올봄부터 키우기 시작한 강아지문제가 가장 난감했다. 동물병원에 맡기려니 작은 철창 속에서 보내야 할 녀석의 한 달이 너무 길었다. 비자신청을 하면서도 내내 마음을 끓였는데, 마침 가까운 친구가 기꺼이 맡아주겠노라고 하여 겨우 시름을 덜었다. 화초 물주기, 우편물 수령 등 신경 쓸 일이 소소하게 많았다. 앉은 자리를 잠시 비우려 할 때도 이리 걸리는 것이 많은데, 아주 비워줘야 할 때는 얼마나 힘겨울까.

이일 저일로 피로가 겹쳤는지 숨 쉬기도 힘들 만큼 옆구리에 담이 왔다. 그래도 마음은 부풀었다. 손꼽아 기다리는 아이들을 생각하며 백화점으로, 농수산물센터로, 서점으로 발길이 분주했다. 물품목록을 점검하고, 또 점검하면서 가방도 몇 번이나 다시 쌌다. 한 가지라도 더 가져다주고 싶어 수하물로 허용된 짐 무게를 맞추느라고 가방 몇 개에 물건들을 넣었다 꺼냈다 반복했다.

드디어 인천공항이다. 탑승수속을 끝내고, 여행자보험을 들기 위하여 국내 굴지의 보험회사 창구 앞에 섰다. 친절한 미소로 우리를 맞이한다. 여행일정과 여행목적 등에 맞춰 상담을 하고, 보험약정서를 쓰려고 하는데, 지나가는 말처럼 빠르게 묻는다.

“최근 몇 년 사이에 혹시, 큰 수술을 하셨던가, 병원치료를 받으신 적 있으신가요?”

당연히 아니겠죠? 라는 얼굴이다. 순간 당혹감에 숨이 멎는 줄 알았다. 아가씨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그럼, 안 되나요?”

내 얼굴에서 웃음기가 확 사라지는 것을 보고 상대방도 웃음기를 거두고 물어본다.

“무슨 병명인지 여쭤 봐도 되겠습니까? 몇 년도에, 어떤 치료를 받으셨는지?”

죄인도 아니고 청문회장도 아닌데 숨김없이 또박또박 대답을 해줬다.

“손님, 죄송합니다. 안 되는데요,”

여행자보험이라는 것이, 비행기 사고가 생기든가, 짐을 잃어버리든가, 길을 잃든가, 강도를 당하든가…. 아무튼 그런 경우를 대비하여 드는 보험인 줄 알았는데, 아닌가 보다.

“죄송합니다. 손님!”

현기증이 일고 아득해졌다. 사력을 다해서 기어오르는 중인데, 네가 있을 자리는 벼랑 아래라고 못을 박는다. 성격 급한 남편은 얼굴이 화끈 달아오르는가 싶더니 어느새 하얗게 질려 있다. 거친 숨소리를 내며 항의하려는 걸 내가 말렸다. 정해진 약관이 그렇다는데, 어쩌란 말인가. 그래도 투병기간 5년이 지난 뒤에, 완치판정을 증명하는 담당의사의 서류가 첨부되면 가능할 수도 있다고 아가씨가 미안한 듯 토를 달아준다.

남편은 툴툴거리며 나를 외국보험사 창구로 데리고 갔다. 이번엔 먼저 병력부터 밝혔다. 더 이상 상대할 필요가 없다는 듯 곧바로 ‘죄송합니다. 손님!’이 튀어나왔다. 이쪽은 완치판정이란 말은 약관에도 없는지, 그저 생글생글 웃는 얼굴로 ‘죄송합니다, 손님!’ 만 앵무새처럼 반복했다.

당신이 안 된다면 나도 필요 없다면서 화가 나 있는 그를 사내아이 구슬리듯 설득했다. 사람 일이란 한치 앞을 모르는 거니까. 만의 하나라도 불상사가 생길 경우, 둘 중 한 사람만이라도 보장을 받아둬야 아이들도 덜 힘들 거 아니냐고 그를 떠밀었다. 떨떠름함을 온몸으로 드러내며 마지못해 약정서를 작성하고 있는 그를 몇 발짝 뒤에서 바라보고 있었다. 나 홀로 지구 밖으로 밀려나 있는 느낌이었다.

출국장으로 들어서며 가방 속을 확인했다. 얼마간의 돈이 든 지갑, 여권, 비행기표, 수화물 짐표, 남편의 보험약정서 등 모두 있는데, 하나가 확인되지 않았다. 수하물 짐만큼의 보장도 받지 못한 내 목숨 값. 저울질조차 거부당한 목숨 값이다. 목숨 값은 한 냥도 마다하는데, 마음이 저 혼자 만 냥 무게로 가라앉았다. 이런 무거운 나를 태우고 창공을 날려면, 비행기 삯을 더 받아야 한다고 우겨도 할 말이 없다.

문득 그 소리가 들려왔다.

‘못 건널 강을, 이미 건너버린 사람’

언젠가 암환자를 가리켜 누군가 내뱉던 말이었다.

귓속이 먹먹했다. 비행기 이륙 전부터 시작된 이명은 모스크바 땅에 나를 내려놓을 때까지 계속되었다. 며칠 후, 모스크바에서 뮌헨으로 여행을 떠났을 때도 날아가고 날아오는 하늘길에서 예외없이 귓속이 먹먹했다. 그리고 또 모스크바에서 한 달을 살고 돌아오는 하늘길에서도 내내 귓속이 어지러웠다. 그랬는데, 인천공항에 내려서는 순간 거짓말처럼 이명이 한꺼번에 뚝 멈춰버렸다.

내 귓속에서 한 달을 울어대던 매미란 놈이 어느새 떠난 모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