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순을 찍는 새

 

 

                                                                        이난호

연중 240일 비가 내리는 나라.

그리그의 집으로 가는 날도 비가 왔다. 안내 여인은 대타, 숫보기였다. 떨리는 목소리로 자기소개를 하고 허둥지둥 <솔베지 송>을 튼다. 음악과 안개비로 어룽거리는 차창을 보며 나는 여정 안내를 쥐어짜는 여인에게 ‘괜찮아요.’ 하고 싶어진다. 내 스무 살의 첫 출근 날, 진종일 타이프라이터를 바라보기만 했다. 괜찮아요. 누군가 지나가며 한마디 했을 때 나는 울음을 참느라고 떨었다. 그리그가 사촌 여동생인 니나와 혼인해 낳은 딸이 채 두 돌도 되기 전에 죽는다는 말을 구태여 하느라 여인은 떨었다.

그리그의 별채 콘서트홀도, 홀의 납작지붕 위에서 퍼렇게 자란 풀도, 절벽에 붙은 그리그와 니나의 합장묘 돌 문짝도 회색 너울 저쪽에 있다. 나는 유독 흐린 잿빛에 약하다. 남의 나라에 내리는 비는 숨차다. 비안개 아래 드러난 바다로 앞장서 걸었다. 조개 하나를 건져 깼다. 몽환의 바다와 그리그의 무덤을 오르내리며 촉촉이 풀리던 일행들이 우아하게 얼굴을 찡그렸다. 나는 투정을 끝낸 아이처럼 개운해졌다. 갯벌이 없어도 조개가 사네? 대타여인을 겨냥했으나 그는 대꾸도 못 하고 웃지도 못 했다.

피요르드는 오랜 상흔. 빙하가 제 무게를 견디지 못해 무너져 내리며 절단한 산의 생채기다. 사철 눈에 덮인 산꼭대기로부터 바다로 내리꽂는 폭포는 힘차고 단애 밑으로 밀려온 남빛 물은 섬뜩하다. 모래톱도 없는데다 홀연 수심 1천 미터를 패이기도 해 수영은 절대불가, 수력발전으론 최적이지만 단 봄부터 여름까지, 북구의 겨울은 폭포부터 얼린다. 남빛 물맛은 싱겁다. 늘 출렁이는 물은 얼지 않는다. ‘썩지 않고 얼지 않고 살아남기’에 눈 뜨다.

페리는 참으로 순하게 미끄러진다. 배에 가득한 사람들 색색가지 눈빛이 한결로 유순하다. 그들 눈에 맞추듯 햇살과 바람마저 미동, 적요다. 나는 이런 고요도 잿빛만큼 벅차다. 머잖아 나는 그 무구한 눈빛들을, 폭포를, 급한 절벽을, 해안 마을의 빨간 지붕들을, 그 앞에서 뛰는 아이들을 결연히 밀어내며 ‘멀미!’ 이 무례한 단음절을 가까스로 삼킨다.

갈매기와 논다. 새는 내가 허공에 띄우는 빵 쪼가리를 영락없이 문다. 아니, 열에 둘은 놓친다. 새가 모조리 채먹도록 던지는 묘수를 궁리하다가 멈칫한다. 먹이를 걸고 놀다니, 빵을 채려는 새는 매순간이 곡예, 곡예엔 목숨이 걸린다. 새의 먹이는 새의 주검과 붙어 있다. 목숨을 위해 목숨을 던지는 새, 생사를 동시에 찍는 새, 모순을 찍는 그의 부리는 아직 날카로울까. 갈등과 불안에서 마저 무뎌진 부리라면 그걸 부리라 할 수 있을까? 의심하면서 내 손은 빵을 찢는다. 멀미가 겁나서 무뎌짐이 겁나서 찢고 찢는다. 마침내 빵 쪽이 놓인 손바닥을 공중에 뻗어둔다. 팔을 안으로 조금씩 당긴다. 가장 무모한 새의 만용과 겨루는 것이다. 그의 추락을 노리는 잔인함으로 나는 떤다. 휙, 손바닥에서 빵이 지워지는 순간 내 눈에 겨우 어떤 끝이 남았다. 희고 날카로운 섬광의 끝! 뼈를 꺾듯이 천천히 빈 손바닥을 오그린다. 복받쳐오르는 게 있다. 필사의 진일보! 저 무모한 새에 축복 있으라! 강복한다. 바야흐로 나는 겁날 게 없어진다.

젖은 포구 베르겐은 7월에도 추웠다. 어물전 밖 난전에서 주머니칼을 샀다. 자장면 한 그릇 값, 손가락 두 마디 남짓한 칼자루가 수상했지만 샀다. 설마 했는데 칼자루는 새끼 순록의 발목이었다. 폴뢰옌 전망대에 올라서도 포구 쪽을 내려다보았다. 크고 힘찬 난전의 호객 소리 속에서 여린 목소리를 골라냈다. 난전 한옆에 쟁여져 비 맞던 새끼 순록의 발목들, 아직 덜 마른 소량의 목숨들이 내는 소리였다. 소리는 가늘고 깊게 내 속을 후볐다. 나는 자장면 한 그릇 값을 원망했다. 칼을 던져버리지 못 했다. 그것이 내게서 베어낼 것을 베어주기를 바랐던 건 아닐지. 떨면서 칼자루를 쥐었다.

풍차마을에서 돌아오는 길에 갈잎배를 띄웠다. 국토의 25%가 해수면 아래에 있어서 가끔 길이 질척거린다고 안내인은 약간 생색내는 말투였다. 이곳 사람들은 365일 대양을 머리에 이고서 먹고 자고 생각하고 물건을 만드는 셈인가. 나는 배를 만들면서 그걸 막막해 했다. “귀한 시간에 귀한 노력으로 왜 가짜 상품을 만드느냐?”고 저들은 그걸 막막해 한다고 안내인이 말했을 때 나는 배를 완성했다. 주방용품을 만들거나 예술품을 만들거나 동질량의 심혈을 쏟는다는 사람들의 나라에 아이들을 데려오고 싶었다. 로마의 트레비 분수에 동전을 던질 때와 달리 갈잎배를 물에 놓는 마음은 기도였다. 눈치 없는 일행 하나가 기웃했다. 나는 온몸으로 배를 가렸다. 빵빵한 쇼핑백을 두 개나 든 그에게 들키기엔 아까운 나의 배, 먼 고향, 더 먼 내 어린 날의 눈부신 냇가를 그가 엿볼까 겁났다.

 

 

2000년 《계간수필》 천료.

한국문협 회원.

수필집 : 《분홍양말》, 《윤예선 그 사람》, 《 카미노 데 산티아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