숫눈길

 

 

                                                                           정선모

서재를 정리하다 책장 위에서 둘둘 말아놓은 작은 그림 뭉치를 발견했다. 30년 전의 신문지에 싸여 있는 그림을 펼치니 온통 눈 덮인 산 풍경이다. 먹의 농담濃淡으로 표현한 바위 사이에 소나무 몇 그루 서있는 그림도 있고, 계곡의 크고 작은 바위 위에 눈이 소복이 쌓인 그림도 있다. 설리雪裏라는 낙관을 보니 그림을 그려준 이가 생각난다. 까마득히 잊고 살았던 사람의 호다.

그 해 겨울은 유난히 추웠다. 아버지가 세상을 뜨신 후 첫 겨울이라 더 그랬을 것이다. 따뜻한 외투를 모두 빼앗긴 느낌이 그러할까. 언제나 내 편이었고 든든한 울타리였던 아버지의 부재는 옷을 입고 또 껴입어도, 활활 타는 난로 앞에 서있어도 추위를 느끼게 했다. 뼈가 시리다는 표현은 육신이 아플 때뿐이 아니라 심리적 고통을 비유할 때 쓸 수도 있다는 걸 절감하고 있을 때, 직장의 상사가 무작정 손을 잡아끌었다. 친구랑 한계령 아랫동네에 가는데 함께 가자는 거였다. 권유가 아니라 명령이라고 했다. 생글생글 잘도 웃던 내가 몇 달째 비 오는 하늘처럼 우중충한 표정이니 보기에 안쓰럽기도 하였을 것이다. 매사에 신중하신 분의 명령이라 거절할 방도가 없었다.

느닷없는 겨울 여행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동행은 친구 분 말고도 눈에 확 뜨일 만큼 아름다운 여인 한 분이 더 있었다. 두 분 다 친구라고 했다. 그들의 여행에 어정쩡하게 끼어든 셈이었다. 20대 초반의 나와 50대 초반의 세 사람은 각자 자기 배낭을 메고 시외버스에 올랐다. 차가 출발하자마자 눈발이 날리기 시작했다. 강원도로 들어가는 길목은 이미 눈이 발목까지 쌓여 도로 위의 차들이 제 속도를 내지 못하고 엉금엉금 기었다. 퇴근 후에 출발한 터라 사위는 이미 어둠에 잠겼다. 낯선 행선지가 인쇄된 티켓을 들여다보며 지상에 없는 곳을 찾아가는 듯 기묘한 느낌에 사로잡혔다.

길게 늘어섰던 앞 차의 불빛이 어느새 띄엄띄엄 보이기 시작할 무렵 목적지에 다다랐다. 도착 예정 시간을 훨씬 넘기는 바람에 자정이 넘어서야 버스에서 내렸다. 외등 하나 없는 산골마을은 길이 모두 눈에 덮여 분간을 할 수 없었다. 몇 번 와본 곳이라며 앞장을 서는 상사의 팔을 붙잡고 더듬더듬 예약해 둔 민박집을 향해 걸어갔다. 늙수레한 영감님이 아궁이에 장작을 넣으며 우리를 맞이했다. 나와 여인에게 배정된 작은 온돌방의 바닥은 데일 만큼 절절 끓었지만 웃풍이 심해 코끝이 시려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밤새 내리는 눈 때문인지 나뭇가지 부러지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려왔다.

첩첩산중의 겨울밤은 길고 길었다. 몇날 며칠 그렇게 달구어진 구들장에 누워 꼼짝도 하지 않았으면 했다. 마음 저 밑바닥까지 얼음이 박혀있어 시리고 시린 기운을 이 참에 모두 녹여버리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그런 나를 가만둘 리 없는 상사는 몇 번이나 재촉하여 밥을 먹게 하고, 산길을 걷게 했다.

동행들은 절경이다 싶으면 그 자리에서 화선지와 붓을 꺼내들곤 그림을 그렸다. 2년 넘게 함께 일한 상사가 그림을 그린다는 것을 그때 처음 알았다. 이젤과 팔레트에 익숙한 세대에게 작은 널빤지를 바닥에 놓고 그만한 크기의 담요와 화선지를 그 위에 올려 그림을 그리는 모습은 생경하기 그지없었다. 어디를 보아도 눈 덮인 내설악은 한 폭의 그림이었다. 동행들은 말없이 그림을 그리고, 주섬주섬 배낭을 꾸려 걷다 다시 주저앉아 그림을 그리며 하루를 보냈다. 간간이 눈발이 날려도 아랑곳하지 않고 그림 그리기에 몰두한 그들의 모습은 그대로 하나의 정물이었다. 가부좌를 틀지는 않았지만 참선을 하는 듯 보였고, 엎드려 절하는 것은 아니지만 기도하는 모습으로 보일 만큼 그들의 그림 그리는 모습은 왠지 범접할 수 없는 분위기를 만들어냈다. 아무도 없는 눈 덮인 설악은 감추어둔 속살의 비경을 그들에게 순순히 보여주고 있었다. 같은 장소에서 그림을 그려도 세 사람의 그림은 서로 달랐다.

돌아오는 길, 눈길에 발목이 삐끗하여 다소 뒤처진 나를 잡아주던 친구 분이 여인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함께 그림을 배우며 알게 되었는데 오래도록 상사를 연모해왔다고, 몇 해 전 상처喪妻를 한 상사에게 지극 정성 마음을 다했지만 이제까지 모르는 척 외면해왔다고, 이번 여행은 그 여인의 마음에 마침표를 찍기 위한 것이라고, 가족이 하나도 없어 세상에 오직 혼자뿐인 여인의 마음을 받아주지 않는 친구가 야속할 따름이라고….

저녁 밥상이 성찬이었다. 여인이 준비해왔다는 몇 가지 반찬은 눈을 휘둥그레 하게 했다. 인삼을 다져넣어 구웠다는 섭산적이나 잣이 들어있는 전복초 등 이제까지 먹어본 적이 없는 음식들이었는데 그 맛이 기가 막혔다. 상차림을 본 주인영감은 5년 묵은 송순주를 땅에 묻은 항아리에서 퍼왔다. 주인과 객들이 함께 두레상에 둘러앉아 밤 깊은 줄 모르고 솔향기 물씬 나는 송순주에 취해갔다. 그날 밤, 여인은 내 방에 들지 않았다.

영문도 모른 채 여인을 기다리느라 잠을 설치다 새벽녘이 되어 눈이 떠졌다. 어디선가 개 짖는 소리가 들렸던 듯도 싶다. 여전히 빈자리로 남아있는 여인의 잠자리를 보며 방문을 여니 너른 마당 한가운데로 발자국이 대문을 향해 나있었다. 발자국 위로 눈이 내려 희미하게 남아있는 발자국.

숫눈길 밟으며 정인情人 곁을 떠나간 여인의 발자국이 새로 쌓인 눈으로 완전히 뒤덮여 아침녘엔 다시 숫눈길이 되어 있었다. 흔적도 없이 사라진 여인의 발자국은 어디에 숨어 있는 걸까. 새하얗게 눈 쌓인 마당을 차마 딛지 못하고 망연히 바라보던 설리, 달려가 붙잡지 못하는 그 마음이 얼마나 큰 사랑이었는지 그 분만큼 살아본 지금에서야 어렴풋이 깨닫는다. 지병이 있는 자신에게 묶여있지 말고 너른 세상에서 훨훨 자유롭게 살라며 밤새 다독였다는 이야기를 돌아오는 차 속에서 전해 듣고는 뒤를 돌아보고 또 돌아보았었는데….

유난히 설경 그리는 걸 좋아해 호까지 아예 ‘눈 속’으로 지었다던 그분, 아마추어 그림이라고 아무에게도 나눠주지 않았던 그림을 철없이 졸라대던 내게 선물처럼 건네주던 그분의 마음 씀씀이를 그땐 몰랐었다.

내게 준 몇 장의 그림 속엔 여인도, 얼음처럼 꽁꽁 얼어있던 나도, 동행 모두를 병풍처럼 감싸안던 그 분의 친구도 없다. 다만 눈 덮인 내설악의 절경만이 오롯이 남아 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