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

 

 

                                                                                     이고운

‘털커덕.’

놀라서 문을 왈칵 열어 젖혔다. 화등산 위로 솟은 시월상달, 보름달빛이 외딴집 마당으로 쏟아졌다.

“꿀꿀꿀… 꿀꿀, 꽤에애~.” 돼지가 숨이 넘어갈 듯 나부댄다. 우리에 앞발을 척, 걸쳤다가 내렸다가 우리 안을 빙빙 돌다가, 펄쩍 뛰어오른다. 금방 뛰어넘을 기세다.

아까 해질녘부터 꿀꿀거리며 우리 안 여기저기를 떠받고 성질을 부려서, 쌀뜨물에 고소한 현미 겨를 부어주었건만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뭣에 심사가 틀어졌는지, 죄 없는 구유를 뒤엎었다. ‘이 멍충이가 와 이 지랄을 하노. 지 밥그릇을 뒤엎고?’

해가 지고 좀 잠잠하다 싶더니 또, 시작이다. ‘참말로 지랄을…?’ 여근댁은 사랑마루에 쏟아진 달빛을 무연히 바라본다. ‘우지끈 퉁당’ 문짝이 부서지는 듯했다. 시커먼 덩치가 훌쩍 솟구쳐 나온다. 여근 댁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다. 달빛이 한 촉광 더 높아진다.

저것이!? 맨발로 뛰어나온 여근댁이 얼른 사립문부터 밀쳐놓는다. 입을 엉성물고 소매를 걷어붙인다. 발길에 걸거치는 치마 앞꼬랭이를 허리 말에 끼우고, 마당 가 나뭇단에서 매촘한 개옻나무작대기를 쓱 뽑아 든다. “네 이 늠을 당장?” 쉭쉭 숨이 되다.

부은 엉덩이를 뒤뚱거리며 돼지가 살판난 놈처럼 마당을 휘젓는다. 거품을 물고 밀침을 질질 흘리며 주둥이를 내쳐 흔들며 날뛴다. 벌름거리는 콧구멍에서 입에서 더운 김을 뭉큰뭉큰 뿜어낸다. 아무데나 킁킁거리며 갈지자로 달아난다. 여근댁이 작대기로 마당을 내리치며 따라간다. “네 이늠, 안 들어가나.” 호통을 치며 돼지 궁둥이를 탁 때렸다. 들은 척도 안 한다. 흙을 파 뒤집고 발굽으로 튀긴다. 주둥이를 더 세게 쳤다.

“왝~” 돼지가 홱 돌아섰다. 옴팍한 눈이 히번득 번득 핏발을 세운다. “와 이라노? 와 이라노? 이기 미쳤나 ~” 여근댁은 뒷걸음질치다 달아난다. 반쯤 말려 올라간 고쟁이 밑에 달린, 몽통한 돈주머니가 딜룽딜룽한다. ‘우짜꼬 우짜꼬? 이기 미쳐서?’ 간이 콩알로 요동을 친다. 돼지가 씩씩대며 꼬랑지를 감았다 풀다 여근댁 꽁무니를 철렁 철렁 따라온다. ‘이늠이 참말로 와이라노?’ 헐떡벌떡, 축담으로 피했다. 다리가 후들거린다.

작대기를 마구잡이로 휘둘렀다. 돼지는 아무렇지 않게 마당 모퉁이로 돌아간다. ‘아이구 저것도 무섭네?’ 여근댁이 한숨으로 가슴을 쓸고, 담장 밑을 파고 있는 퉁실한 돼지 궁뎅이를 바라본다. 작대기를 다잡는다.

“이것아, 이 달밤에 미쳐서 우짤것꼬 응, 울 넘고 담 넘는다고 병이 나을 것가. 이 대낮 같은 밤중에 와 지랄고.” 여근네는 작대기로 때리며 겁을 주며 따라간다. 목청이 울리면서 떨려나온다. 한참 그러다가 돼지 궁뎅이를 살살 때리면서 달래본다. 주둥이를 간지르듯 돼지가 방향을 틀도록 유도한다. ‘꿀꿀꿀,’ 돼지는 여전히 딴전이다. 꼬랑지를 홰홰 상모 돌리면서 궁둥이를 흔드는 바람에 여근네 작대기는 일쑤 헛맞힌다.

마당을 서너 바퀴 돌았다. 해하얗던 여근네 낯에 또 열이 오른다. 허리를 펴서 잔주리고는 돼지를 따라 다시 허방지방 쫓아간다.

돌다가 어쩐 일인지, 찌그러진 우리 문 앞에 돼지가 잠시 멈추었다. 들어가려 마려 머뭇머뭇한다. “이것아, 인제 그만 들어가아라.” 여근 댁 부화가 소리를 낮춘다. 돼지가 뒤로 앞으로 주춤주춤, 씰룩거리며 애를 태우다 돌연, 대가리를 돌려 여근댁을 말끄러미 쳐다본다. ‘꿀꿀’ 씰룩거리는 콧구멍으로 콧물을 치익 튀긴다. ‘아니 이것이, 얻다 대고?’ 여근댁이 작대기를 치켜들었다. “탁, 그만.” 헛 내리치려는데 돼지 궁둥이가 굼틀 튀면서 옆에 있는 구정물 독을 쑥, 나온 나발대로 ‘퍽’ 들이받는다. ‘챙그랑’ 박살이 난다. 물 괴락이 된다. 감나무 잎에 접혔던 달빛이 확 펴지면서 높은 가지 위로 솟았다. 제바람에 놀란 돼지가 풀쩍거리며 두 어 고팽이 더 마당을 돌다 우리로 들어간다. 여근 댁도 그만 지쳐 마루에 걸터앉는다. 사랑채는 아직 씻은 듯 멀겋다.

돼지가 다시 멱따는 소리로 운다. 여근댁은 겁먹은 소리로 타이른다. “대번에, 그만…. 잔조리거라. 하모, 니 맘을 니가 잔조리는 수밖에는, 암.” 다시 작대기를 휘두르며 으름장을 놓다가, 토닥거리듯이 달래다가 겨우 쫓아 넣고 나면 또 나오고, 돼지는 몇 번을 뛰쳐나왔다. 문짝이 부서졌으니 어째 볼 도리가 없다. 이젠, 긴 간짓대를 돼지우리에 걸쳐놓고 마루에서 으름장을 놓다가 일러 듣긴다. “날이 새야 될끼다. 저 달이 져야 되재. 암, 새녘이 밝아야 될끼다. 그러니, 니가 니 맘을 잔조리거라 으이…….” 밤도 꽤 이슥할 것이었다. 좀 잠잠하다.

찬이슬이 여근댁에 젖는다. 초저녁, 아랫목 이불 밑에 묻어둔 밥주발과, 화로에서 자작자작 졸아들던 토장국은 이미 재가 식었다. 그래도 아직 숨은 분하다. ‘무섭고 말고.’ 여근댁은 하얀 연기가 깔린 듯한 사립께에 삿대질로 졸면서 궁시렁거린다.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기, 기다리는…거이제~.’

달이 용마루를 넘었다. 안채 처마그늘이 어느새 마당을 밀어내고 사랑으로 건너간다. 쪽대 고운 사립문은 파르스름 달빛에 젖었고, 돼지숨소리도 가물거린다. 그때, 엷은 그림자 하나 언뜻 그늘로 지났다. 흰 고무신 한 켤레가 쪽배로 뜬 사랑 댓돌에, 달이 지고 있다.

 

 

《계간수필》(2004년), 《월간문학》으로 등단.

개천문학상 수상.

대표에세이회, 계수회 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