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하는 여자

 

 

                                                                                         차은량

마당 아궁이 앞에 앉아 청국장 콩을 삶고 있다. 매리설산 아래 밍용마을에서 내게 수유차를 마시게 해 준 그 여자는 지금쯤 트래킹족들을 태운 말을 끌고 계곡을 건너고 있을 것이다. 티베트 옌징鹽井에서 빵을 구워준 여자는 소금밭에 나가 앉아 붉은 소금밭을 다지고 있겠다.

지난 봄에 집 앞 텃밭은 물론 건넛마을에 700평 밭을 얻어 고추와 참깨, 땅콩이며 오이며 호박을 심고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논마다 찾아다니며 논두렁에 콩 모종을 심었다. 허리를 펼 사이도 없이 달려오는 여름의 속도만큼이나 나도 바빠졌다. 작물을 심은 밭에 비료를 주고, 풀을 뽑아야 했으며 겉잎을 떼어주거나 순을 쳐주는 일로 여름이 시작되었고 무더위 속에 고추는 붉어 새벽이슬에 옷을 적시며 고추를 따다 말렸다. 첫물과 두 물째 고추는 잘 말려 보관하고, 세 물째 고추는 따낸 날로 물고추로 넘기고 이튿날 나는 윈난雲南으로 향하는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쿤밍昆明에서 리장과 샹그릴라, 더친을 지나 티베트 국경을 넘어 소금마을까지 가는 동안 속속 펼쳐지는 경이로운 대륙의 풍경에 한시도 눈을 뗄 수 없었다. 광활한 평원과 호수들, 구름 속에 간간이 모습을 드러내는 만년설과 수천 미터 고산 중턱을 휘돌아 갈지之자로 깎아 만든 도로 위로 끝도 없이 흘러내리는 크고 작은 바위와 흙더미는 놀랍고 두려웠다. 그러나 그런 풍경들보다 더 마음을 뺏긴 것은 흔들림 없는 태산 같은 표정으로 농사일을 하고 있는 여자들의 모습이었다.

고산증에 시달린 끝에 매리설산 트래킹 일정을 포기하고 밍용마을을 산책하던 중이었다. 여러 날 밥을 제대로 못 먹어 그랬던지 따뜻한 수유차 생각이 간절했다. 마을 어디에도 찻집은 보이지 않았다. 인심 좋아 보이는 아낙이라도 눈에 띄면 수유차를 얻어 마실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지게 한 가득 풀을 베어 지고 오는 여자를 만났다. 여자는 가냘픈 몸매에 사슴처럼 긴 목과 커다란 눈망울을 가지고 있었다. 내가 건네는 인사에 여자는 순순히 지게를 벗어놓고 이마의 땀을 닦으며 화답했다.

내가 손을 내밀자 여자도 손을 맞잡으며 환하게 웃었다.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당신 집에 가서 수유차를 마시고 싶다고 하자 여자는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지게를 지려하자 그가 거들어주었으나 중심을 잡지 못해 몇 걸음 못 가 지게를 내려놓고 말았다. 여자가 말없이 웃으며 다시 지게를 지고 앞장을 섰다. 그의 집은 가까웠다. 화려한 색조와 문양으로 잘 꾸며진 대문을 들어서자 정사각형의 넓은 마당이 나왔다. 여자는 불상을 모신 커다란 방으로 안내한 후 다시 밖으로 나갔다. 지게에 지고 온 풀을 마구간에 부려놓고 곧 수유차를 내오겠다는 여자의 말을 눈빛으로 읽어내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집의 외형만큼이나 훌륭한 방안의 정면 벽에는 불단이 놓여있고 마당이 보이는 창문 쪽 벽을 따라 기역자로 배치된 장의자 앞으로 서너 개의 테이블이 길게 놓여 있었다. 잠시 후 주전자와 과일을 들고 온 여자는 먼지가 뽀얀 테이블을 개의치 않고 찻잔에 차를 따르고 조막만한 배들을 접시도 없이 테이블 위에 올려놓으며 먹으라고 권해왔다. 차를 따르는 여자의 두 손은 풀물이 짙게 배어 열 손가락과 손톱들이 아예 검은 색을 띠고 있었다.

고산증으로 뒤집힌 뱃속을 수유차와 과일로 달래고 눈빛으로 나누던 대화도 어지간히 끝나 작별인사를 하고 여자의 집을 나왔다. 여행지에서의 작별은 어쩌자고 그렇게 번번이 서툴고 안타까운지. 대문 앞에서 오래도록 손을 흔들고 서있는 여자의 커다란 눈망울을 나는 오래 바라보지 못했다.

이튿날은 티베트 국경을 넘어 소금마을을 찾아갔다. 가파른 협곡을 따라 포장도 안 된 벼랑길을 달려 차 한 대씩 겨우 지나가는 출렁다리를 건너야 하는 험로였다. 거기서 그 여자가 나 같고, 내가 그 여자일지도 모르게 낯익은 여자를 만났다. 소금밭 체험을 하기 전 식사를 하러 들어간 집에서 여자는 주방 화덕 앞에 서서 그들의 주식인 빠바를 굽고 있었다. 여자가 구워온 빠바는 정말 부드럽고 향긋했다. 중국 윈난 여행 닷새째에 이르도록 먹어본 중에 가장 맛있는 빠바였다.

색동 머리띠를 두른 여자는 구슬땀을 흘리며 빵을 구워 나르고 차를 따라주며 쟁반 가득 머루를 담아 식탁 위에 가져다 놓았다. 몇 번 손을 잡아당기며 같이 먹자고 했으나 함박 같은 미소로 고개만 끄덕일 뿐 좀처럼 화덕 앞을 떠나지 못했다. 점심을 먹고 마을 여자들과 함께 소금밭으로 향했다. 협곡 사이로 황톳빛 란찬강이 무섭게 흐르고 강의 양쪽 가파른 언덕에 시루떡 같은 소금밭들이 펼쳐져 있었다.

여자들은 일사분란하게 움직였다. 양동이로 소금물을 퍼다 나르는 사람, 나무방망이로 소금밭을 다지는 사람, 널빤지로 소금을 긁어모으는 사람들이 하나같이 자연스럽게 풍경 속으로 녹아들었다. 힘들게 길어온 소금물이 새어나가지 않게 하려면 소금밭을 잘 다져야 할 것이다. 나무방망이를 하나 얻어들고 내 소금밭인 양 소금밭을 두드렸다. 마을의 젊은 촌장이 몇 번인가 나를 향해 엄지손가락을 곧추세웠다.

어깨에 멘 양동이 두 개를 묘기 부리듯 이리저리 돌려가며 소금밭 사이로 난 비좁고 가파른 구멍으로 내려가면 강바닥에 소금우물이 있었다. 소금밭 아래에서 보면 널빤지로 이어붙인 소금밭의 바닥이 보였다. 빼곡하게 세운 나무기둥 위로 널빤지를 얹어 만든 받침대 위로 거친 흙을 깔고 그 위에 고운 흙으로 미장을 한 후 나무방망이로 바닥을 다져 만든 착하고 아름다운 밭이었다. 그 밭에 소금물을 길어다 말리면 위로는 말에게 먹일 붉은 소금이 생겨나고 널빤지 아래로는 사람이 먹을 흰 소금이 석순처럼 자라났다. 소금물을 길어 소금밭으로 올라가는데 양동이가 이리저리 부딪치고 소금물이 흘러넘쳤다. 그럴 줄 알았다는 듯 뒤에 따라오던 여자가 말없이 웃으며 양동이를 잡아주었다. 여자는 아무리 봐도 친근했다. 한정 없이 자애로운 표정을 하고 있었고 젖이 불었는지 양쪽 가슴께가 흥건히 젖어 있었다.

소금밭 일을 끝내고 여자가 내 손을 잡아끌고 강바닥으로 내려갔다. 소금밭 천장에 매달린 소금고드름을 따서 내 손에 담아주는데 그 천장에 매달린 소금고드름을 모두 따 줄 기세였다. 나도 안다. 집에 손님이 왔다 갈 때면 뭐 하나라도 더 챙겨주고 싶어하는 시골인심을.

“그만 줘요, 이 귀한 소금을 어떻게 받아가라고.”

“괜찮아요, 괜찮아. 우리는 이렇게 많잖아요?”

그러나 수천 미터 고산 아래 협곡에서 퍼 올린 그들의 살 같고 피 같은 소금을 주는 대로 다 받아올 순 없었다.

마을의 초등학교에 갔다가 여자의 집에 들러서야 돌아갈 시간이 임박했다는 것을 알았다. 서둘러 여자를 찾았으나 어찌된 일인지 너른 마당에 서 있는 이십여 명 여자들이 모두 그 여자 같았다. 삼단 같은 머리에 쪽을 지어 삼색 색동띠로 두른 모습이며 내 언니 같고 내 동생 같은 친근한 표정들이 한결 같았다. 여자를 찾는 일보다 여자와 헤어져야 한다는 사실이 더 절박했던 때문이었을까. 나를 끌어안고 이별을 아쉬워하는 여자에게 내 귀에 걸렸던 귀걸이를 떼어 건네주고 보니 그 여자가 아니었다. 내가 찾는 여자는 끝내 나타나지 않았고 나는 또 그 여자를 닮은 다른 여자에게 내 손목에 둘렀던 팔찌마저 풀어주었다.

까마득한 차마고도 험준한 벼랑길을 걸어 소금을 팔아 연명하면서도 따뜻한 미소를 지니고 사는 여자들을 만나고 돌아온 이튿날, 나는 여행가방을 풀 겨를도 없이 네 물째 고추를 따러 밭으로 나갔다. 내가 없던 열흘 동안 고추는 죽어라 붉어져 가지가 휘도록 성을 내고 있었다. 고추를 따서 말리고 다듬는 사이사이 참깨를 털고, 콩을 털어 청국장을 쑤다보니 주변에서 주문이 많이 들어왔다. 나는 옌징의 그 여자만 같았다. 양동이를 어깨에 메기 시작한 그날부터 늙어지도록 보리를 빻아 빵을 만들어 굽고 소금물을 퍼올려 협곡의 인색한 햇살에 널어 말리면서도 해바라기처럼 환하게 웃던 여자들. 태어나면서부터 원래 그렇게 해 온 일상들을 하늘에 바치는 기도처럼 경건하게 임하던 여자들. 척박한 오지를 꽃밭처럼 일궈내면서 마음속에 원망이나 분노를 섣불리 키우지 않는 그들의 평화를 배우고 싶었다.

고추 이백여 근과 참깨 닷 말을 손질해 팔고, 사흘에 한 말씩 일곱 말 콩을 삶아 청국장을 띄워 모두 팔고 나니 어느 사이 가을이 깊었다. 지친 몸을 모처럼 책상 앞에 앉히며 컴퓨터를 열어 윈난 여행에서 만났던 두 여자의 사진을 가만히 들여다본다. 여름내 고단했던 세 여자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환하게 웃고 있다.

 

 

《문예한국》 1998년, 《수필문학》 2001년 등단.

2008 한국문화예술위원회 문예창작기금 수혜.

수필집 : 《사진이 있는 에세이》, 《꽃멀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