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물쭈물 저 달님

 

 

                                                                                       김애양

“최근의 일식과 월식은 불길한 징조다.”

셰익스피어의 《리어왕》 1막 2장에 나오는 글로스터 백작의 대사이다. 그는 서자인 에드몬드의 농간으로 역모죄를 뒤집어쓰고 두 눈이 뽑히게 된다. 이 처참한 장면은 두 딸에게 박대를 당하고 광야를 떠도는 리어왕의 모습과 함께 이 비극의 최고조를 이룬다.

자연 현상의 하나인 일월식을 불길한 징조로 여길 만큼 안목이 없었기에 백작은 그리도 무서운 형벌을 받아야 했는지 섬뜩한 느낌이 들지만 이 때문에 진실을 제대로 보아야 한다는 이 작품의 주제가 더 잘 와 닿기도 한다.

드물게 일어나는 일식은 천체의 운행 중에 생기는 간헐적인 천문현상이라 배웠어도 여전히 신기한 일이 아닐 수 없다.

2009년 7월 22일, 21세기 들어 가장 긴 일식이 나타난다고 떠들썩했다. 우리나라에서 볼 수 있는 규모로는 61년 만에 최대라고 했다.

진귀한 장면을 놓칠 수 없어 문방구에서 셀로판지를 구입했다. 태양의 찬란한 광휘를 맨눈으로 쳐다보면 그 불경스런 죄 때문에 실명을 한다던가? 어릴 땐 양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손가락 틈새로 살짝살짝 해님을 쳐다보며 한나절을 보냈던 기억이 나지만 언젠가부턴 태양을 바라볼 겨를도 없이 바삐 달려온 것 같다.

요즈음의 시청률을 달구는 드라마 《선덕여왕》 중에도 일식이 중요한 소재로 나온다. 미실공주는 중국에서 천문지식을 빌어 와 일식을 예견하면서 무지한 백성들에게 절대적인 천신황녀天神皇女로 군림한다. 지략가인 그녀는 자신의 권력을 키우는 데 일식을 교묘하게 이용한다. 마찬가지로 훗날 선덕여왕이 되는 덕만도 일식을 기화로 쌍둥이로 태어나 버려졌던 운명을 극복하고 공주의 자리에 설 수 있었다. 그러나 그녀는 미실과는 대조적으로 첨성대를 세워 백성들 모두 천문지식을 공유하고 농사에 응용할 수 있도록 선정을 베푼다.

오전 9시 35분부터 시작된다는 일식을 보려고 녹색 셀로판지를 여러 겹 포개어 눈에 대고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놀랍게도 태양빛이 달에 가로막혀 있었다. 수줍기만 하던 달이 어이없게도 태양의 광휘를 덮고 있어서 해님은 초승달 모양이 되어버렸다. 그걸 ‘초승해’라고 불러야 하나?

그날의 일식은 무려 2시간 반이나 지속되었다. 평소와는 달리 태양은 무기력하게 그의 위력을 잃었고 달의 횡포에 무방비였다. 나는 혼돈에 빠져들었다. 달이, 저 달이….

달이 그럴 순 없는 일이다.

태양의 은총을 받은 달, 그의 사랑을 듬뿍 받아 지구에게 빛을 되쏘이는 달. 그 달이 감히 태양에게 폐를 끼치다니….

하지만 달에게 물어보면 그녀는 오직 자신의 궤도를 돌고 있을 뿐이라고 말할 것이다.

아주 오래 전 초보 운전 시절에 가벼운 접촉사고를 일으킨 적이 있었다. 대학로 뒤의 좁은 골목에서 운전하던 나는 차선을 잘 지켰는데, 그리고 상대방도 그랬다는데 그만 커브 길에서 부딪친 것이었다. 지금은 얼마든지 이해할 수 있지만 젊고 어리석은 나는 잘못한 것이 하나도 없다고 박박 우기다가 경찰서까지 가게 되었다. 경찰은 사건의 전말을 들어보더니 솔로몬처럼 쌍방과실이란 현명한 판결을 내려주었다. 결국 차의 손상은 각자 해결하기로 합의를 하고 헤어졌는데 몹시 억울했었지만 문득 깨달은 바가 있었다. 내 차선을 잘 지켰다고 해서 그게 최선이 아니었음을. 인생의 길은 더러 비켜서거나 양보해야 하는 것임을.

달님도 억울할 것이다. 그녀의 의도가 아니었는데 해님을 가리는 불상사가 생겨난 것이. 그래서인지 그날의 달빛은 우물쭈물, 엉거주춤 어색해 보였다.

우주 만물을 우리는 낮과 밤, 해와 달, 물과 불, 하늘과 땅, 남과 여, 강약, 고저 등 음양의 조화로 설명한다. 서로 상반된 성질을 가진 두 가지가 균형을 이루며 공존하는 것이다. 하지만 한낮의 권좌를 차지한 태양에 비해 밤의 여왕인 달은 턱없이 왜소해 보인다. 그래서 달이 태양의 빛을 가리는 건 몹쓸 일처럼 느껴진다. 마치 남자에게 여자가 대적해선 안 된다고 교육받아 온 것처럼.

그러면서 나는 불안함을 느꼈다. 언제나 나의 궤도만 잘 간다고 해서 당당한 건 아닐 거라고. 세상이치를 잘 판단한다면 더러 궤도에서 이탈도 하고 멈추기도 하는 현명함이 필요할 거라고. 내 할 도리를 다했노라 박수치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고.

그날의 일식을 보면서 혹여 나를 이끌어주고 빛나게 해주었던 누군가의 광채를 덮는 사람이 될까 봐 두려웠다. 또 날 사랑하는 이의 뜻을 한순간이라도 저버리는 슬픈 일이 생길까 봐 걱정이 되었다. 우물쭈물하던 저 달의 민망함이 고스란히 내 안에 들어찼다. 그러기에 얼마나 더 많이 조심하며 살아야 할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