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부문화

 

 

                                                                                         정경해

이명박 대통령이 선거 당시 공약했던 ‘전 재산 사회 환원’ 약속을 지킨다고 공식적으로 발표했다. 신문에 구체적인 계획까지 보도된 것을 보니 확실한 것 같다. 전 재산 사회 환원. 어떤 사람은, “누릴 만큼 누렸고 그렇게 많은 재산 좀 주면 어떠냐.”고 말한다. 말이 그렇지 평생 동안 모은 물질을 내 손에서 떠나보낸다는 것이 어디 쉬운 일인가. 돈 때문에 웃고 돈 때문에 웃는다는 세상. 참 내 수준에서 생각한다면 정말 대단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런 결심을 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는 물질이 주는 힘을 모르지 않는 한 다 수긍할 것이다.

요즘은 기부에 대한 기사를 자주 접한다. 언젠가 신문에서 ‘힐튼호텔’을 세계적 명성의 호텔로 키워낸 최고경영자(CEO) 배런 힐튼이 힐튼호텔 매각가 12억 달러를 포함한 거의 모든 전 재산을 기부한다는 기사를 보았다. 그의 재산은 현재 23억 달러이지만 앞으로 얼마로 증식될지 모르는 큰 금액이라고 한다. 덕분에 힐튼호텔 상속녀로 유명한, 세간의 평으로 말썽꾸러기라는 이미지의 패리스 힐튼이 상속을 못 받게 되었다고 한다.

200억 기부의 송명근 건국대 교수, 300억 기부의 정문술 전 미래산업회장 등, 어떻게 마음을 비워야 저런 결심을 할 수 있는지 존경스러운 대단한 분들이라는 생각이 든다. 워낙 기부금액이 어마어마하다 보니 이 분들의 선행이 금방 피부로 와 닿지는 않지만, 자신은 5천만 원짜리 전세에 살면서 수년 동안 몇십억을 기부했다는 가수 김장훈이나, 시장에서 장사를 하며 평생 모은 몇억을 기부하는 할머니, 또 생활보호대상자로 혼자 쓰기도 모자라는 금액을 모아 천만 원 단위의 금액을 기부하는 이런 분들을 보면 마음이 훈훈한 한편 무언지 모를 양심의 가책을 느낀다.

우리나라 기부문화의 싹이 조금씩 자라고 있는 실정이지만 선진국 기부 문화가 활성화되어 있는 것에 비해 우리나라는 아직도 갈 길이 멀다. 이것은 우리나라 사람이 더 인색해서가 아니라 민족적인 기질이라든가, 경제 등 문화적인 차이점 때문인 것 같다.

우리나라는 예부터 씨족, 부족 등 혈연에 대한 인식이 강하다. 함께 모여 살기를 좋아하다 보니 서로 의가 좋았다. 지금은 조금 변했지만 자녀가 취업을 해도 결혼하기 전까지는 몇 살이 되어도 독립하지 않고 부모와 함께 산다. 아직도 장남은 결혼을 해도 분가를 하지 않고 부모를 모시고 사는 풍속이 강하게 남아 있다. 또한 경제적으로 빈곤한 환경에서 자녀를 양육하다 보니 부모들은 자녀에게 늘 미안한 마음을 갖고 있다. 혼인한 자녀까지도 안쓰럽고 부족해 보여 자녀에게 재산상속하기를 희망하는 정적인 부모가 우리 부모인 것이다.

그러나 우리보다 경제적으로 풍부한 환경의 서구문화는 고등학교만 졸업하면 부모로부터 독립하는 경향이 강하다. 자연히 부모에게 기대지 않고 자력으로 살아간다. 부모의 눈에는 더 이상 품안의 자식이 아닌 의젓한 독립된 하나의 개체인 것이다. 그러니 부모, 자신들이 지닌 재산에 대해서도 자유롭다. 이런 뒷면에는 개인주의 기질도 숨어 있지만 말이다.

이런 생각들이 어떻게 보면 나 자신을 포함한 우리나라 기부문화의 소극적인 면을 변명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하기는 늘 후회하면서도 버릴 줄 모르는 내 욕심을 본다면 변명이 맞는 것 같기도 하다.

기억하기 부끄러운 일이지만 어느 해던가 교회에서 크리스마스 행사 때의 일이다. 각자 가져온 선물을 쌓아 놓고 행운권 추첨과 퀴즈 맞추는 사람에게 선물을 주는 행사가 있었다. 그날따라 퀴즈도 잘 맞췄고 행운권도 추첨되어 선물을 3개나 타게 되었다. 내가 가져갔던 선물의 몇 배를 타면서 그저 좋아 싱글벙글했고 기분 좋다는 생각 외에 아무 생각도 못했다. 아니, 선물에 욕심이 더 큰 탓이었을 것이다.

집으로 가져와 남편에게 자랑을 하니 그가 안색을 바꾸며 찬물을 끼얹는 일침을 놓았다.

“아니, 이 선물을 집으로 가져왔단 말이야? 하여간 우리 마누라 욕심 하나는 알아줘야해.”

“왜요? 기분 좋잖아요. 행운권도 뽑히고 흐흐.”

순간 무안한 마음에 눈을 흘기며 선물을 부스럭거리며 풀어보는 내 뒤통수에 남편의 말이 꽂혔다

“당신이 그러고도 권사냐? 선물을 못 탄 사람이나 어려운 사람에게 나눠주고 와야지 그걸 집으로 들고 왔단 말이야? 아이고 그 욕심 언제 다 버리나.”

사실 선물을 풀어보고 있으면서도 얼굴이 조금씩 뜨거워 오던 나는 남편의 그 한 마디에 쥐구멍이라도 들어가고 싶은 심정이었다. 명색이 권사라는 사람이 그 선물을 들고 나오면서 희희낙락 좋아하다니…. 교회 나온 지 얼마 되지 않는 남편 보기가 정말 창피했다. 그날 내 욕심에 대해서 스스로를 많이 부끄러워하고 반성했던 기억이 난다. 물론 후에 선물은 어려운 다른 이에게 주었다.

소크라테스는 “재산이 많은 사람이 그 재산을 자랑하고 있더라도 그 돈을 어떻게 쓰는지 알 수 있을 때까지는 그를 칭찬하지 말라.” 고 했다.

남을 돕는다는 것, 나를 제치고 다른 이를 먼저 생각한다는 것은 정말 쉬운 일이 아니다. 그들은 어떤 칭송을 받아도 모자람이 없다. 어떤 이들은 이렇게도 말한다. 큰 부자는 기부하기 쉽다고. 또 그런 부자들은 마음의 여유가 있어 남을 생각하는 마음이 크다고. 하지만 과연 그럴까? 그렇다면 어렵게 살면서 모은 전 재산을 사회에 기부하는 분들은 무엇이란 말인가.

재산이 많고 적음과 마음의 여유가 있고 없음 보다는, 내가 진정 욕심 없이 나보다 못한 이웃을 사랑하는 마음이 얼마나 더 크게 자리하고 있는지가 관건 아닐까 한다. 말로는 ‘공수래공수거’ 세상에 올 때 빈손으로 왔으니 갈 때 빈손으로 가야한다고 한다. 그런데 손에 있는 것을 놓기가 왜 이렇게 어려운지. 재산상속으로 인한 불협화음이 아직도 이 사회를 떠돌고 있다.

나보다 부족한 이웃을 사랑하려고 노력하고 있지만, 나는 언제까지 사회에 기부하는 아름다운 모습을 보면서 부끄러워해야 할는지 모르겠다.

 

 

1998년 《한국수필》 신인상 등단(수필).

1995년 인천문단 신인상 대상(시), 2005년 문학나무 신인상(시).

시집 : 《선로 위 라이브 가수》 남동문학회 회장. 현) 계양도서관 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