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가의 수필④|

 

가을이 문을 두드린다

 

 

                                                                                       이혜경

어느새 가을이 성큼 다가와 문을 두드린다. 여름의 뜨거운 햇살과 열기가 물러가면서, 드높은 하늘을 만나게 되는 가을은 아마 ‘공’의 계절인 듯하다. 이제 나의 삶에 또 한 줄의 나이테가 생겨날 터이고, 그간 내 마음속에 쌓여왔던 무늬들이 이 계절에 어떤 빛깔의 낙엽으로 물들어갈지, 다가오는 추수에는 무엇을 수확하게 될지를 곰곰 생각하게 된다.

만약 세상사, 인간사에 ‘공’이 없다면 아마 더 많은 오해와 갈등, 충돌이 있을 것 같다. 어쩌면 ‘공’이 있어서 만사에 조화와 흐름과 변화와 성장이 생기는 것도 같다.

부처의 경지를 표현하는 말에 ‘해인삼매’라는 것이 있다고 한다. 그 깊은 뜻을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거울처럼 고요하고 거대한 명상의 바다 위에 짱! 하는 찰나의 순간에 영험의 도장이 찍히는 그런 것이라고 한다. 그 치열함에 일면 겁이 나기도 하지만, 그리움을 향한 몸짓을 멈추지 않는 바다의 부단함과 그 속에 있는 영원으로 통하는 심오함이 매우 멋지게 느껴지는 표현이다. 음악을 하고 있는 내게는 위대한 경지의 표본이자 감히 마음의 위안으로 삼는 말이기도 하다.

요즘 들어 음악작업에서 ‘공’의 소중함을 새삼 느끼고 있다. 피아노는 서양악기이지만 내가 동양인이어서인지, 나이가 들수록 음악에 대한 생각이나 태도들도 함께 변해간다.

연주자는 종이 위에 그려진 악보들에 새롭게 생명을 불어넣는 일을 하는 셈이다. 과거의 작곡가들이 치열하게 ‘해인삼매’ 한 어떤 진리와 아름다움들을, 깊은 바다로부터 퍼 올려 다시금 형태를 잡아 파도에 실어 널리 퍼지게 하는 것이다. 그 음악들은 보편언어가 아닌 특수 언어에서 출발한다. 그래서 나의 일상에는 그 특별한 낯설음을 만나는 기쁨과 함께, 끝내 그것들을 잡아둘 수 없는 불안과 고통이 있다. 두 걸음 나아가고 세 걸음 물러서는 파도처럼 끝이 없는 작업이다.

피아노의 소리는 0.003초에 음색이 결정되는 정교한 것이기에, 많은 음표들을 이해하고 표현하려면 끊임없이 육체와 정신, 주관과 객관, ‘색’과 ‘공’의 세계를 넘나들어야 한다. 이 넘나듦 때문에 늘 긴장을 늦출 수 없고, 때론 벼랑 끝에 서 있는 듯한 초조감을 갖기도 한다.

하루에 오만 개의 음표를 연습한다고 치면 당연 그 음표들 사이의 ‘공’에 눈을 두게 된다.

소리처럼 어차피 곧 사라지는 것들에서 무슨 ‘색’과 ‘공’을 찾느냐 할지 모르겠지만, 들여다보면 어디에나 색과 공의 새로운 경계는 있을 수 있다. 음표는 이미 정해진 것이기에 바꿀 수 없는 것이지만, 모든 음의 울림 속에는 ‘공’이 있고, 연주자는 그 ‘공’을 타고 들어가 새로운 성질과 가능성을 찾아내어, 그 중 가장 진실된 것, 가장 나다운 것을 골라 아름답게 재창조해야 한다. 달리 말하면 연주자는 ‘공’을 통해 ‘색’을 작업하는 것이고, 색과 공이 잘 어우러져 조화된 소리가 음악의 아름다움을 만들어내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이 동양에서 말하는 득음의 과정인 것도 같다.

음악은 하나로 하나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백으로 하나를 만드는 것이라고 하는데, 연주자가 좋은 소리를 찾기 위해서는 우선 연습의 양이 충족되어야 한다. 색의 극한에 도달하면서 동시에 색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음은 음악의 특징이다. 한편 공은 늘 변화하는 것이기에 음악에는 완성이 없으며, 연주자는 마치 구도자와 같은 자세를 지녀야 한다. 날마다의 연습에서 만나는 공은 참으로 반갑고 소중하다. 나와, 작품과, 악기의 소리가 만나는 곳에는 공의 역할이 있다. 자신을 발견한 공은 조용히 회심의 미소를 짓고, 소리는 그 속에서 어린아이의 유희처럼 자유로워지고, 아이는 장난처럼 소리를 양손에 쥐고 논다.

음악에서 ‘공’은 소리 이전의 침묵에서 출발한다. 숲 속의 고요 속에 나무, 새, 풀벌레들의 신중한 귀 기울임이 숨어있듯이, 그 침묵은 ‘무’가 아니다. 이 공은 어떤 소리든 담을 수 있고, 자유로우며 또한 분별이 있다. 진정한 공은 언제나 새롭게 태어나며 발전한다.

공은 전체이면서 또한 부분에 충실하다. 공은 한없이 크기도 하지만 아주 작아지기도 하는데, 작아진 공은 색으로 자신을 증명하는 즐거움과 모험을 보상받는다. 작은 열쇠 하나로 커다란 문이 순식간에 열리듯이, 바위처럼 무겁게 굳어있다가도 작은 깨달음에 자신을 착하게 열어보이는 소리들은 때로 아주 친절하고 고맙다. 공이 색을 변화시킬 수 있음은 아마도 공이 색의 안과 밖에 동시에 존재하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일 것이다. 공과 함께 소리는 쏜살같이 달리기도 하고, 은은한 흩어짐으로 사라지기도 한다.

위대한 작품 속에서 놀며 그 비밀의 법칙을 발견하는 것은 참으로 신기한 경험이다. 한 알의 작은 씨앗이 거대한 나무가 되고 그것이 다시 씨앗으로 환원되는 생명의 여정처럼, 각각의 작품에는 탄생의 신비가 있다. 식물이 아래로 뿌리를 내리며 동시에 하늘을 향해 가지를 뻗듯이, 성장은 균형을 필요로 한다. 음악 속에서 마음의 본연을 찾으려는 노력은 참으로 어렵고 눈물겹지만, 아기의 울음처럼 싱그럽고 당연하기도 하다. 자기 속의 아기를 잃어버린 인간은 아마도 그만큼의 행복을 잃은 것인지도 모른다.

이번 여름 인도여행을 다녀왔다.

독일 유학 시절, 힘들던 시기에 많은 꿈들을 꾸었는데 아마도 20대 초반에 자기정체성의 위기를 겪는 중이었던 것 같다. 꿈 속에서 어딘지 모를 쓸쓸한 역전에서 기차시간표를 망연히 바라보다가 나는 갑자기 깊은 심해에 빠졌다. 아무것도 없는 물 속에서 이런 것이 죽음일까 생각하는데, 누군가 어깨를 건드리기에 돌아보니 터번을 두른 인도인이었다. 그가 무엇을 말하려는지 미처 알기도 전에 잠을 깼지만, 그 표정은 오히려 무표정에 가까웠던 것 같다. 그 꿈을 꾸고 난 후 왠지 하나의 고비를 넘겼다는 막연한 안도감이 들었고, 당시 꿈에 나타났던 사람을 나는 아직도 생명의 은인인 양 마음속에 품고 말하려는지 그 후 인도는 항상 마음의 고향처럼 느껴져 왔다. 오랜 꿈을 쫓아서 여행을 다녀왔으니 올해는 뜨거운 여름의 한가운데서 오아시스 같은 추억을 건진 셈이다.

이 가을, 영글어가는 황금빛 들판 같은 음악을 하고 싶다. 따스한 가을 햇살이 있고, 시원한 바람이 있고, 풍요로운 희망이 있는….

벼랑 끝에 서는 것은 날아 보고픈 꿈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내 마음의 날개인 음표들을 벗삼아서….

 

 

독일 뮌헨음대 최고연주자과정 졸업. 독일 음대연합 콩쿨 입상.

한국음악 펜클럽 ‘이달의 음악가상’, 음악동아 ‘올해의 음악가상’ 등 수상.

1984년 귀국 후 350 여 회의 연주, 미국, 러시아, 독일, 일본, 호주 등지에서 연주.

독일 자브뤼켄 음대 교환교수 역임. 러시아 Classical Records사 음반발매. 현, 중앙대 음대교수, 한국 피아노학회 부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