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간평론|

 

안타까움 속 행복과 부러움

 

 

                                                                                         최원현

《계간 수필》 통권 57호인 2009년 가을호는 여느 호와 달리 두껍다. 그런데 반가운 마음보단 그걸 손에 든 순간 싸아한 아픔이 명치끝을 때린다. 표지를 내려다보는 나의 눈에 ‘추모 특집’이란 네 글자가 유난히 크게 들어왔기 때문이다. 우송 김태길 선생님, 선생께서 우리 곁을 떠나시고 우린 그를 그리워하며 이 책 한 권 속에 그분에 대한 사랑과 그리움을 담고 있다.

 

‘우리는 지난해부터 우송 선생 구순 송축행사를 준비해 왔다. 올 가을이면 그분이 구순을 맞아서다. 그것은 그분만의 경사가 아니라 우리 ‘수필문우회’는 물론 모든 수필계의 경사라서 그랬다.’

- 허세욱, 권두칼럼 中에서

 

그랬다. 우리 모두는 그 경사를 위해 송축 특집에 송축 문집을 내기로 했다. 그런데 그걸 못 보고 선생은 가셨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하지만 계간수필 가을호를 읽으며 얼마나 행복한 분인가를 깨달았다. 모두의 안타까움 속에 사랑을 가득 안고 가신 우송 선생님, 사람이면 왔다가 당연히 가는 것이거늘 이렇게 모두의 기림 속에 가시고 그 가심을 안타까이 여기는 이 수많은 가슴들의 고동소리를 선생도 듣고 계실까.

우송 선생의 대표 수필 <멋없는 세상, 멋있는 세상>과 <복덕방이 있는 거리>는 가히 수필의 전범이다.

 

‘버스 안은 붐비지 않았다.’‘그것만으로도 삶의 멋이라면 멋이요 맛이라면 맛이 아닐까.’

- 멋없는 세상, 멋있는 세상의 서두와 결미

 

‘대문을 나서면 큰길가에 수양버들 한 그루가 비스듬히 서있다.’‘복덕방 영감님 두 분은 아직도 그 자리에 앉아 계신다. 전설을 지닌 옛날 벽화처럼.’

- 복덕방이 있는 거리 서두와 결미

 

지극히 평범한 것에서 열어내는 눈부시지 않는 비범함, 선생의 수필이 그랬다. 처음 시작의 간결한 한 문장이 끌어내는 무언가 벌어질 것 같은 심상치 않은 예감, 선생의 수필은 지극히 의도적으로 그러나 아주 천연덕스럽게 지나가는 한 마디처럼 첫 문장을 던져 놓는다. 그러면 독자는 여지없이 낚시밥 물듯 그걸 문다. 그리고는 아주 자연스럽게 그가 끄는 대로 따라간다. 그리고는 마지막에 ‘하, 참내’ 하며 기분 좋은 웃음을 웃고 만다.

그를 위한 특별좌담은 참 의미로웠다. 가신 분에 대한 추모라지만 그의 삶과 문학을 깊이 조명해 보는 뜻 깊은 자리였다. 선생의 수필작품이 500여 편이란다. 그런데 ‘수필을 쓰심으로 해서 그의 철학이 더 깊어진 거’요, 그의 작품은 ‘인생에 대한 사유-특히 섬세하고 부드럽고 깊이가 있는 인간적인 사유’란다. 유가적인 선비기질, 유가적인 배경에서 수필가가 된 그는 ‘윤리학과 철학의 융합된 배경’이 수필을 쓰게 된 배경이란다.

1955년 《사상계》에 첫 수필을 발표한 선생은 그 후 5~6년 사이에 가장 많은 수필을 쓰셨는데, 1961년 출간한 첫 수필집 《웃는 갈대》는 주로 서정수필로 간결한 문장 속에 인간의 서정적인 것들을 짧게 그리고 해학적으로 쓰고 있다.

‘감정과 정서와 정에 기울여지는 문학’그러면서 ‘세공품을 다듬듯이 다듬어 가는 단문’으로 독자를 붙드는 그의 문학은 그래서 한 번 들어가면 끝을 보게 만드는 것이었다.

그래서일까. 서정적 수필과 사색적 수필과 장편수필로 구분되는 그의 수필세계가 한결같이 심미적이며 그러면서 자연에 관한 관조, 인생에 관한 관조, 사회비평, 해학 및 단상 등으로 폭넓게 제재를 활용하여 그만의 사유의 세계를 공감케 했다.

선생의 그런 삶과 문학이었기에 추모의 글에서도 ‘고매한 인격에 대한 신뢰와 존경심’(고임순)이 나타나고 있었으며, ‘수필을 닮은 사람’(구양근)으로 기억되고, ‘향기가 넘쳐나는 인품’(김규련), ‘언행일치의 선비정신’(김병권), ‘우리 시대의 위대한 스승’(반숙자), ‘수필의 향기와 삶의 깨달음을 주신 멋있는 사람’(변해명), ‘맑은 가락으로 사신 분’(유동림), ‘온화하면서도 근엄한 인품’(유혜자), ‘달관적 인생관’(이응백), ‘수필계의 큰 기둥이자 자존심’(이정림), ‘적요에 가까운 인품’(이태동), ‘수필문학의 거목’(정목일)으로 지칭되는 것은 아주 자연스런 것 같다.

사람은 떠나봐야 그의 자리가 얼마나 컸는지를 알게 된다 했는데 우송 선생님의 떠난 자리를 추모특집을 보면서 더 크게 느끼는 것을 어쩔 수 없다. 이러한 추모특집에도 불구하고 가을호에는 예술가의 수필과 세계의 명산문 및 창작수필 수편이 실려 전문 수필지의 품격을 갖추고 있었다.

예술가의 수필에 소개된 서예가 박원규의 수필 <독옹 이대목 선생>은 예술에 대한 열정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각성케 하고 도전심을 갖게 하는 작품이다. 볼 것을 볼 줄 아는 눈도 대단하지만 쉽게 받아들이지 않고 철저한 검증 후에야 자신의 마음을 열어 보이는 대가다운 모습에서 삶의 진정성과 존엄성을 보게 한다.

‘서예와 전각을 공부하는 서학도’에서 동아미술제 대상에 25권의 연간작품집을 낸 스승 못지않은 대가가 되는 길은 결코 평범함을 포기한 고도의 마음가짐과 수련이 없인 결코 이룰 수 없는 일일 것이다.

오랜만에 루쉰의 작품과 만난다. <희망>은 행동하는 지식인 루쉰이 심규호의 해설처럼 1924~5년의 암울한 적막상황에서 청년들의 의기소침함을 보고 그들을 깨우겠다는 외침으로 쓴 글이다. 그는 ‘청년들은 아주 평안하다.’,‘청년들은 평온하다.’는 표현으로 절망, 허망, 적막의 상태를 말한다. 그에게 적막은 죽음이다. 세상의 모든 것의 죽음이다. 그래서 그는 ‘나라도 공허한 어둠의 밤과 싸우는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어쩌면 지금 이 시대가 바로 루쉰의 절망의 시대와도 같다 할 수 있지 않을까. ‘밝지도 어둡지도 않은 허망’의 가슴을 느껴본다면 금방 숨이 막혀버릴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별도 없고 달도 없다. 굳어버린 나비도, 웃음의 막연함도, 사랑의 날갯짓도 없다. 하지만 청년들은 아주 평안하다.’그래서 절망은 허망하다. 희망 또한 절망과 다름없다.

창작수필은 8편이 실렸다. <나의 정원 만들기>(정상옥), <세잎 클로버>(이정희), <작별, 커피>(선산곡), <민들레>(유연선), <원(園)>(이미연), <30대의 반란>(권민정), <달콤한 복수>(박태선), <오르막길에서>(양미숙)이다. 계간수필에 실리는 수필들의 수준을 알게 하는 작품들이다. 저마다 의미화의 모습이 보이고 문장들이 맛스럽다. 헌데 <30대의 반란>(권민정)이 눈을 끈다. 시점이 3인칭 관찰자 시점이다. 대개의 수필이 1인칭인 나의 관점인 것은 ‘자기 체험’이라는 고리를 늘 달고 다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30대의 반란>은 저 멀리 나를 떼어놓고 바라보는 기법으로 내가 할 말들을 내가 아닌 다른 나를 통해 ‘나’가 아닌 것처럼 말하고 있다. 물론 이러한 글쓰기가 처음이거나 아주 특별한 것은 아니다. 수필 속에 ‘나’라는 액자를 넣어 그 액자 속 나를 바라보는 입장으로 글을 쓰기도 한다. 다만 우리 수필이 너무 천편일률적인 형태로 씌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다른 변화를 보여주고 있는 게 내심 반가워서다.

작가는 서두에서 왜 그랬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잠재의식 속에 숨어있던 게 폭발했는지도 모른다고 했다. 사건은 아이들 양육문제로 남편과 다투고 기분이 상해 주스 잔 하나 가득 양주를 따라 마신 결과였다. 그는 그 후 너무 구토가 심해 급기야 응급실로 실려 갔고, 주정 중에 밥하는 것도 설거지하는 것도 지겹고 공부가 하고 싶다고 울면서 말했단다.

삼십대 후반의 어린 세 아이를 둔 전업주부인 엄마는 그럴 수 있다.‘이 일을 하려고 그 힘든 입시지옥을 치렀던가.’라고 생각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런 그녀가 이 사건을 계기로 자신만의 시간을 갖게 된다. 그러자‘아무 이유 없이 명치끝이 아프던 증상도, 숨을 크게 몰아쉬던 습관도 어느새 사라졌다.’그녀는 도서관에서 논문 공모 기사를 보게 되고 논문의 얼개를 짠다. 그리고 집에서도 논문을 쓴다. 그런 그녀에게 남편이 커피 한 잔을 말없이 놓고 간다.

그런데 이야기는 별 무리 없이 전개되었는데 제목이 ‘30대의 반란’인데 마무리는 ‘반란’보다는 ‘조용한 변화’ 정도다.

제목은 수필에서 화룡점정畵龍點睛일 수도 있고, 등뼈일 수도 있고, 머리일 수도 있다. 그냥 본문의 설명이거나 반대로 제목의 설명이 본문이 되어도 수필의 맛은 반감된다. ‘반란’은 사전적 의미로도 ‘정부나 지도자 따위에 반대하여 내란을 일으킴’ 또는 ‘특정 권력 집단이 기존의 권력 또는 국가를 전복할 목적으로 벌이는 행위’이다. 이기지 못하면 역적이 된다. 자신의 생명만이 아닌 친족 외척까지 죽음을 당할 수 있는 일이다. 그런데 내 시간을 가져보는 것 정도로는 너무 약하다. 독자는 상식을 뛰어넘는 변화를 기대한다. 그런데 ‘반란’이라 해서 잔뜩 기대를 해서 들어갔는데 기대만큼의 반란을 못 찾는다. 그렇다고 독자가 작품을 읽어낸 후 상상의 공간에서 반란을 만들어낼 수 있는 그 어떤 것도 주지 못한다. 컵에 양주 한 잔을 마신 것이 반란일까. 남편이 커피 한 잔을 타다 놓고 가는 것이 반란일까. 어쩌면 독자는 외면적 반란보다 내면적 반란을 더 기대하진 않을까. 글 속의 변화는 30대 그것도 세 아이를 둔 전업주부라면 누구라도 겪을 수 있는 회의요 불안일 수 있지 않을까. 물론 아이 셋에 남편까지 내조해야 하는 입장에서 자기만의 시간 얼마를 만들어낸다는 것은 대단한 결단이요 사건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글 쓴이에겐 대단한 사건일지 몰라도 독자에겐 그저 아무것도 아닐 수 있다. 즉 작가의 감동이 독자의 감동이되는 것은 아니라는 말이다. 그래서 제목이 주는 기대와 내용이 주는 부응이 만족지 못하면 수필은 감동을 잃고 만다. 그래서 반전, 전환이 수필에도 쓰인다. 용두사미처럼 끝이 나버리면 맥이 풀리고 만다. 촌철살인으로 기대를 웃도는 그 무언가를 독자는 기대하기 때문이다. <30대의 반란>이 주는 무언가의 아쉬움은 그렇게 조용한 변화였다는 점이다. 또 하나 수필은 3인칭 문학은 될 수 없는 1인칭 문학이다. 결미에서는 아주 짧게라도 그 3인칭이 작가 자신임을 밝히는 글쓰기가 되어야 한다.

《계간수필》 가을호는 우송 선생에 대한 안타까움만으로 가득했지만 이 땅에 이만큼 수필이 자리를 굳게 한 것은 바로 선생 같은 분이 계셨기 때문이라는 감사와 자성을 낳는다. 남기신 작품들을 보면서 선생의 뜻을 기리고 늘 자세를 바로 하는 우리가 되어야겠다는 생각을 다시 한다. 가신 분의 큰 아쉬움 속에서도 아직 많은 어른들이 살아계심에 감사한다. 그분들에 대한 예우를 더욱 중히 해야 하겠다는 생각도 해본다. 그리고 겨울호엔 가을호에 못 실었던 작품까지 싣게 될 테니 풍성한 수필의 잔치가 될 텐데 그 또한 심히 기대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