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마귀의 카니발

 

 

                                                                                       김열규

‘앗 , 저게 뭐야, 저게 웬일이야?’

여태껏 단 한 번도 본 것 같지 않은 얄궂은 정경에 나는 눈을 연신 흘깃댔다. 대 여섯 마리의 까마귀 떼가 소란을 떨고 있었다.

달막 동산이라고도 하는 중치中峙고개를 차를 몰고 올라가는데, 고개턱에서 까마귀들이 야단법석이 아닌가! 겨울 철새인 몸집이 조금은 작은 갈까마귀가 아니었다. 부피가 큰, 텃새인 참까마귀 떼였다.

몸통은 온통 숯 덩치다. 새까맣기만 했다. 머리부터 꼬리 끝까지 치면 웬만한 암탉만큼 되어 보이는 그 석탄 덩어리는 육중해 보이다 못해 갑갑했다.

그런 주제에도 불구하고 난리를 치고 있었다. 한 패는 고갯마루, 넓은 길바닥을 찍어 누르고 토닥대고 아니면 깔아뭉개면서 춤추고 있었고 또 다른 패거리는 이들 춤꾼 위를 펄쩍펄쩍 날갯짓하면서 중천을 맴돌고 있었다.

때맞추어 우수수, 초가을 갈바람이 소연하게 일어나면서 그들과 어울렸다.

터덕거리는 날갯짓 소리를 ‘까악까악!’ 그 절규하듯 울부짖는 소리가 거들면서 그 소동과 소란은 고요한 산마루를 벌컥 뒤집다시피 했다.

‘아닌 대낮에 저게 무슨 야단일까?’

들판도 아니고 밭머리도 아닌데, 까마귀들로 해서 야단법석이 벌어진 게 아무래도 이상했다. 길바닥을 어지럽히고 그 위의 얕은 하늘에서 수선을 떨면서 이들 검정 덩어리는 돌개바람처럼 설레고 있었다. 그건 사건이라고 부르지 못할 것도 아니었다.

얼결에 차의 속도를 줄였다. 살금살금 다가가자, 네댓 마리의 또 다른 한 무리가 몰려 있는 게 눈에 들었다. 50여 미터 상거를 두고는 차를 멈추었다.

그들은 누가 가까이 온 것쯤 본 척도 않고는 그저 머리로, 아니 주둥이로 뭣인가를 찍어대고 있었다.

그래서는 날름날름 부리 끝에 덜렁대는 것을 입으로 연신 삼켜대고 있었다. 잽싸게 꿀꺽 삼켜대는 녀석 곁에서 천천히 야금야금 씹어대는 축도 있었다.

‘뭘까? 뭘 잡숫고 계시는 걸까?’

햇살이 눈부신 차창 너머로 응시했다. 그들이 연신 찍어대고 있는 그 포장길 땅바닥에 뭣인가 희끔하기도 하고 얼룩대기도 하는 게 제법 길게 가로 누워 있었다. 아니 내뻗어 있었다,

‘앗 뱀이다!’

나는 놀라서 중얼댔다. 상당히 굵고 몸통이 긴 것으로 보아서는 그냥 뱀이 아니고 구렁이임에 틀림없었다.

‘어떻게 된 걸까? 지나가던 차에 친 걸까? 아니면 저 검은 악당들이 부리로 쪼아서는 사냥한 걸까?’

알 수는 없었다.

어떻거나 목숨이 다한 것을 그 검은 새의 무리는 뜯어 먹고 있었다. 할퀴어서는 날름날름 삼키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그들 거무죽죽한 날카롭게 휘어진 주둥이 끝에 얼룩얼룩 핏자국이 묻어 있는 것처럼도 느껴졌다. 만만찮은 살육殺戮의 현장에 나는 소름이 끼쳤다.

맛나게 먹어대는 그들을 호기심 반, 겁먹기 반으로 응시하고 있는데, 아까까지 거리를 두고는 길바닥을 서성대거나 그 위를 날고 있던 다른 무리가 덤비다시피 내려앉았다. 도전과 응전, 그 옥신각신이 퍼덕거렸다. 서로 날개를 우람하게 펴서는 입부리를 창날처럼 휘두르고는 마주 덤벼댔다. 한동안 육탄전이 계속되었다.

하지만 오래 가진 않았다. 먼저 배 불린 녀석들이 입맛 다시면서 물러섰다. 뒤쳐져서 덤빈 패가 밥상을 점령하고 나섰다.

굶주린 탓일까? 아니면 남들 먹는 걸 보기만 하다가 시장기가 심하게 든 걸까? 쪼아낸 뱀의 살덩이를 입부리로 사납게 흔들어대는 겨를에 피가 흩뿌려지는 것 같아 보였다.

‘햐! 까마귀들의 사육제, 저 검둥이들의 카니발’

그렇게 혀를 내두르는데 문득 옛날 생각이 났다.

대학 입시를 목전에 둔 그 무렵, 공부 기피증에 겸해서 계속 시름시름 몸을 앓았다. 그러던 차에, 병원에서 ‘폐침윤’이란 진단을 받았다. 의사는 그걸 폐결핵의 초기라고 했다.

나중에 가서야 다른 병원에서 오진이란 게 드러났지만, 그 병명을 얻고서부터 온 집안이 짙은 병색으로 물들었다 .

그러자 어머니께서는 뱀집에서 끓여 온 ‘뱀탕’을 서너 차례 보약 삼아 마시라고 하셨다. 나는 그 비린 것을 구역질 참으면서 꾸역꾸역 들이켜야 했다.

그 옛 생각이 머리에 떠오르자, 나는 까마귀들의 사육제가 문득 역겨워졌다. 하지만 저들도 한여름에 지친 몸의 보신을 위해서 뱀탕 아닌 뱀의 생회를 잡숫고 계시려니 하고 마음을 고쳐먹자, 겨우 토악질이 가라앉았다. 그건 순간적인 회심回心이었다.

그래서일까? 그 옛날, 뱀탕 먹어대던 때의 나와 별로 다를 게 없는 검은 날짐승의 뱀 사육제를 끝까지 지켜보기로 했다. 초가을 오후의 햇살이 내리쬐는 차창 너머로 응시하기를 계속했다.

그 이심전심以心傳心하는 동류同類 의식 때문에 나는 차를 앞을 향해서 몰아가질 못했다.

‘저는 어쨌는데, 딴전피기는!’

내가 모른 척하고 차를 몰아붙이면, 나를 눈꼴사납게 노려보면서 이렇게 핀잔을 놓을지도 모르는 저 뱀 사냥꾼들!

질색할 수도 있을, 저들과 나 사이의 괴이한 인연이 한참 동안 차를 꼼짝없이 붙들어 매었다.

얼마가 지났을까? 저들의 뱀탕 아닌 뱀의 생회 사육제가 끝나고 다시 차가 움직였을 때는 이미 초가을 해가 뉘엿뉘엿 기울고 있었다.

 

 

서강대 명예교수, 전 인제대 교수 ꠑ

수필집 : 《흔들리는 시대의 언어들》, 《죽음의 사색》, 《빈손으로 돌아와도 좋다》 등 다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