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아리 장

 

 

                                                                                    문향선

아파트 생활이라는 게 참 건조할 때가 많다. 간밤에 내렸던 비도 아침에 일어나 창밖을 일별할 때에야 알아채는 수가 많다. 흐린 창을 응시해도 잘 모른다. 이층이니 누군가 우산을 쓰고 나가는 모습을 보고서야 비가 온다는 사실을 실감하기도 한다. 그렇지 않으면 베란다의 유리창을 열고 손바닥을 펴서 하늘을 향하여 빗물이 떨어지는지를 확인해야 한다. 비가 오는지 눈이 오는지 온몸으로 느껴볼 수가 없는 것이다. 남다르게 비 오고 눈 오는 것을 좋아하는데 귀로 감지할 수 없다니 뭔가를 제대로 느껴보지 못하고 사는 것 같다.

어린 시절에는 지붕에 떨어지는 빗소리를 들으며 아늑한 잠의 세계로 빠져들기도 하고 낙숫물 소리를 듣기 위해 마루에 쪼그려 앉아 귀를 기울이던 때도 많았다. 빗물이 떨어지던 자리마다 동그랗게 패이던, 마치 파문이 일듯 마음에도 알 수 없는 무늬를 이루던 그런 시절이 있었다. 누군가를 향한 막연한 그리움이기도 했다. 멀리 집을 떠나 혼자 떠돌고픈, 결코 익숙해질 수 없는 생활을 꿈꾸기도 했었다.

내가 가방을 싸들고 집을 나온 날은 비가 내리던 날이었다. 임동이란 오래된 동네에서 낡은 처마 밑의 낙숫물이나 바라보며 살 수는 없었다. 내 앞에는 구만리라는 청춘이 펼쳐져 있었다. 많은 식구들이 북적거리는 집에서 탈출하여 오직 나만의 삶을 꾸리고 싶었다. 미래는 아무래도 좋았다. 박봉의 경찰관 아버지도 무능한 사람이었고 욕 잘하는 어머니도 구질구질하기는 마찬가지였다. 뒤에 남겨질 파장이나 부모의 낙담은 생각지 않았다. 발목 잡을 생각을 한다는 것은 어리석은 짓으로 치부해 버렸다.

내가 친구 L과 함께 둥지를 튼 곳은 광천동이라는 동네였다. 임동보다 더 변두리였고 광주천이 막바지에 이른 곳이었다. 시멘트 블록으로 지은 집이었다. 자취하는 사람들을 위해 방 한 칸에 부엌 하나가 고작인 막집이나 다름없는 집이었다. 다섯 개의 방이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었다. 묵은 동네에 낡은 집들이 대부분인데 그래도 시멘트 블록으로 새로 지은 집이라 산뜻하고 깨끗했다.

그집에서 일 년 가까이 살았다. 그집을 위해 ‘메아리 장’이라는 이름을 선사했다. 우리의 청춘이, 생이, 메아리가 되어 되돌아오기를 바라는 염원이 담긴 의미였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염원은 그저 염원으로 끝나는 것인지, 낙숫물을 바라보며 망연히 꿈꾸던 새로운 삶은 끝내 찾아오지 않았다. 옆방의 능청맞은 청년의 눈길을 감내해야 했고 그 친구들의 청춘의 몸부림도 참아내야 했을 뿐이다.

아, 그러고 보니 생각나는 두 청춘이 있었다. K와 J였다. 주말이면 메아리 장을 찾아오는 우리의 유일한 방문객들이었다. L과 나는 회사에 다니며 생존을 위한 밥벌이를 했다. K와 J, 우리가 나눈 대화들은 어떤 것이었을까. 지금 선명하게 떠오른 게 없다. 다만 J의 시선이 늘 나를 향해 있었다는 것만은 기억해낼 수 있다. J는 친구와 사촌 간이었고 K는 그 친구였다. J는 눈이 유난히 컸고 통 말이 없었다. 거기에 비하면 K는 장난꾸러기였다. 천변을 거닐다가 둑에 앉아 하염없이 먼 곳을 바라보는 일이 고작이었다. J는 내가 퇴근하는 시간을 알아내어 회사 앞에서 기다렸다가 메아리 장까지 데려다 주는 일을 잘했다. J와 나는 거의 말을 하지 않았다. 나는 수줍음을 탔고 그는 원래 말을 잘 하지 않았으니까. 검은 큰 눈을 보기만 해도 되었다.

그리고 그것으로 끝이었다. 비가 오기를 기다려 우리는 다시 가방을 싸서 슬그머니 집으로 돌아갔다. 부모의 질책도 오래 가지는 않았다. 돌아온 것만으로도 다행이라고 생각했을는지도 모른다. 당당해할 일도 아니었지만 움츠러들 일도 아니다 싶었다. 우리의 유일한 방문객들은 군대에 갔고 편지로 근황을 알리다가 시나브로 소식이 끊겼다.

나는 다시 소설 읽는 것이 일상이 되었다. 비 오는 날의 소설은 아련한 마음을 일으키기는 했지만 그렇게 절실하지는 않았다. 소설의 주인공은 되어 보지 못했지만 그 언저리까지는 가보았으니까. 청춘을 귀한 줄 모르고 왜 그렇게 낭비하기를 갈망했을까. 이 나이에 새삼 돌이켜 생각해본들 그럴 듯한 해답을 얻어내기는 어려울 것이다.

빗줄기가 점점 굵어진다. 목마른 대지가 비에 흠뻑 젖어들 것이다. 이제 막 새잎이 나온 대추나무 가지가 무거운 듯 축 늘어진다. 집안이 어두컴컴해진다. 종일 비님이 오실 듯하다. 서둘러 일을 마치고 우산을 들고 집을 나서야 한다. 비 오는 날엔 꼭 집을 나서야 한다는 게 불문율이라도 되는 듯이. 간다고 해야 고작 도서관, 잘생긴 마로니에의 비 맞는 모습도 봐야 한다. 이런 날은 또 소설이 제격이다. 서가를 뒤져 읽어야 할 책을 찾아내는 일, 다정다감한 시절로 돌아가는 길이 거기에 있다.

 

 

《문학과 의식》 수필 부문 신인상 수상.

수필집 : 《오래된 시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