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 그러면 살 수가 없어요

 

 

                                                                                    한혜경

요즘 각료후보자들의 인사 청문회를 두고 말들이 많습니다. 위장전입은 기본이고 탈세와 투기, 병역기피 등 석연치 못한 구석들이 계속 나타나기 때문이지요. 그 중 총리 후보자는 점잖은 인상 덕에 본인 말대로 ‘바른’ 사람같이 보여 호감가는 인물 중의 하나였는데, “바르게 살려고 애써 왔다.”면서, “종합소득세 누락은 실수였다.”고 하고 기업인에게서 받은 천만 원을 해외에서 ‘궁핍하게’ 살지 말라고 준 ‘소액’ 용돈이었다고 표현하는 것을 보며 씁쓸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어요. 이 정도의 위법은 ‘바르게’ 사는 것에 크게 해가 되는 것은 아닌가 봅니다. 이 정도의 불법이나 거짓말은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저지르고 있거나 저질러 본 게 아닐까요? 그러지 않고서는 대한민국에서 살기가 어렵거나 살 수가 없는 걸까요?

어느 택시기사 말이 떠오르네요. “안 그러면 살 수가 없어요.”

학교 가는 길에 택시를 탔는데, 기사분이 나이가 지긋한 분이었어요. 나중에 들어보니 일흔이 넘으셨더라구요. 그런데 연세에 걸맞지 않게 (아니면 경력이 오래 되었으니까 당연한 결과라고 해야 하나?) 급하게 꺾기, 옆 차선 갑자기 끼어들기, 신호 위반하기 같은 기술을 자유자재로 구사하더군요.

우회전해야 할 길인데 직진 차선에 서 있어서 “저기, 조 다음에서 우회전해야 할 것 같은데요.” 라고 말하면 다음 길에서 해도 된다는 식이에요. 제가 알기로 그 다음에서 우회전하면 안 되거든요. 그래서 그 얘기를 했더니 조금의 주저함도 없이 “아, 거기가 안 되면 아무데서나 돌리면 되지요.” 하고는, “안 그러면 살 수가 없어요, 살 수가 없어.” 덧붙이더군요. 신호등이고 차선이고 지키며 운전하다간 거덜나기 딱 좋다네요. “택시기사는 경찰이 좀 봐주나요?” 하고 물었더니, “웬걸요. 걸리면 그냥 여러 말 할 거 없어요. 단도직입적으로 젤 싼 거 끊어주쇼, 하면 대개는 싼 걸로 끊어줘요.”

그러더니 갑자기 화난 목소리로 ‘오토바이 탄 놈들’을 욕하기 시작했어요. 좀 지위가 높은 경찰을 뜻하는 거 같은데, “오토바이 탄 놈들은 봐주는 게 없어요. 그냥 있는 그대로 끊는다니까. 나쁜 놈들. 쳐다도 안 봐, 아주 못된 놈들이야. 그 놈들한테 걸리면 볼 장 다 본 거에요.”하며 목청을 높였어요.

운전경력이 50년 넘는데, 원래는 버스를 몰았다고 해요. 택시로 바꾼 지가 9년 되었다는데, 옛날에는 버스기사 대접이 아주 좋았다네요. 월급도 좋았고 대우도 좋았고, ‘삥땅’하기도 좋았고…….

“차장애가요, 하루 일 끝나면 그날 빼돌린 토큰을 한 뭉치 슬쩍 주머니에 넣어줘요. 그때 토큰 한 개가 120원 할 땐데 그걸 90원에 팔거든요. 그럼 그게 꽤 괜찮았지요.” 순간, 뭐라 대꾸해야 할지 몰라 가만히 있었더니 좀 계면쩍은가, “그땐 모두들 그랬어요. 안 그러면 살 수가 없으니까……. 다들 그렇게 해서들 살았지요.”

그런 식으로 월급 외 수입이 있었기 때문에, 또 술 담배도 끊고 남들 15일 일하는데 20일 일했더니 3년 지나니까 집을 한 채 살 수 있었다고 합니다. 방이 4개인데 식구들은 한방을 쓰고 나머진 하숙을 쳐서 돈을 또 모았다고, 그집을 좀 고쳐 비싸게 팔고는 다른 집을 사고 또 그렇게 모아서 또 다른 집을 사고, 해서 집이 세 채가 되었고 4남매 모두 대학까지 가르치고 다 결혼시켰다고, 자녀들 혼인할 때 모두 집을 사줬고 지금은 아내와 둘이 산다고.

얘기를 듣다보니 대단하다는 말이 저절로 나오게 되더군요. 술 담배도 안하고 남들보다 더 열심히 일해서 결국 부를 얻었다는 성실한 가장의 성공담으로 들리니까요. 문제는 ‘삥땅’이지요.

부지런하게 살아가는 인물이 채만식의 유명한 단편 <치숙>에도 나옵니다. 대학까지 나왔지만 사회주의를 하다가 감옥살이를 하고 폐병으로 누워있는 오촌 고모부 아저씨를 비난하는 ‘나’라는 인물. 어릴 때 부모를 잃어 보통학교 4년 다니고 말았지만 앞날이 창창하다며 부자의 꿈에 부풀어 있어요. 일본인 주인이 자신을 귀여워해서 10년 후면 따로 장사를 시켜줄 눈치니 그것을 언덕삼아 30년 동안 환갑까지만 장사를 해서 십만 원을 모아 ‘떵떵거리고’ 사는 것이 그의 ‘이상과 계획’ 이지요.

그의 또 다른 꿈이 ‘내지인처럼’ 사는 것이라는 대목만 아니면 모범적인 인물이라고 할 만합니다. 실제로 이 작품에 대해서 학생들과 이야기를 나눠보면 생각보다 많은 학생들이 ‘나’를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꾸준히 노력하는 착실한 사람이라는 거죠.

부지런한 민족성 때문인가, 우리는 ‘열심’이라는 것에 꽤 높은 점수를 주는 것 같습니다. 열심히 살아가는 자라면 자기성찰이나 반성과는 거리가 멀어도 좋은 쪽으로 생각하고 ‘삥땅’ 정도의 사소한 불법은 애교로 봐주는 것이지요.

그런데 그렇게 열심히 노력해서 도달한 지점이 집 몇 채와 ‘떵떵거리고’ 사는 삶이라면 글쎄, 좀 서글픈 건 왜일까요? “안 그러면 살 수가 없어.” “이 정도쯤이야….” 위안하면서, “모두들 그러는데, 뭘.” “털어서 먼지 안 나는 사람 봤어?” 합리화하면서 부자가 되고 높은 지위에 오른 것이라면, 그리고 평소 ‘바르게’ 사는 것이 소신이라고 하면서 ‘적당히’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다면, 우리 인생이 그리고 우리 사회가 너무 초라한 건 아닐까요?

네? 뭐라고요? 집이나 한 채 갖고 있으면서 하는 말이냐구요?

 

 

1998년 《계간수필》 천료.

현 명지전문대 문예창작과 교수.

평론집 : 《상상의 지도》, 《말 글 삶》 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