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들은 어디로

 

 

                                                                                    민명자

1

앞집은 우리 집과 골목 하나를 사이에 두고 대문을 마주보고 있다. 자그마한 한옥이다. 쪽마루와 부엌, 그리고 올망졸망한 항아리들이 놓여 있는 장독대까지, 우리 거실에서는 그 집 안마당이 훤히 보인다. 모녀만이 살고 있는 그 집은 늘 고즈넉하다. 이른 아침 모녀가 직장과 학교로 가고 나면 하루 종일 검둥개가 빈 집을 지키고 있다. 남의 집 안마당이 내 손바닥처럼 내려다보여 조심하던 터이니 빈 집의 정적은 민망함을 다소나마 덜어준다. 그런데 그 집을 자꾸 내려다볼 일이 생겼다.

그날따라, 참새들 소리가 유달리 시끄러워 창밖을 내다보니 앞집 지붕 위로 어지럽게 얽혀 있는 전깃줄에 참새 여러 마리가 앉아 방담이라도 나누듯 재잘대고 있었다. 아침 햇살과 청명한 하늘, 멀리 보이는 남산 탑과 참새들의 지저귐이 만들어내는 정경에 마음이 팔린 나는 한동안 창가에 서 있었다.

그때 참새 한 마리가 포르륵 날더니 앞 집 마당으로 내려앉았다. 나의 시선도 자연스럽게 참새를 따랐다. 참새는 검둥이의 밥그릇 주위에서 종종거리며 눈치를 살피더니 이내 밥찌꺼기를 쪼아대기 시작했다. 검둥이는 쫓을 생각이 아예 없는 듯, 그저 멀뚱히 엎드려서 참새의 거동을 바라만 보았다. 이들의 공존은 이전부터 얼마 간 지속되어 온 듯했다. 남아서 지켜보던 참새들도 따라서 방앗간 드나들 듯 마당과 전깃줄 사이를 오갔다. 하기야 농촌이라면 몰라도 이런 도심에서 날짐승들 먹이 찾기가 쉽진 않으리라 생각하니, 배가 불러서든 심드렁해서든 제 밥그릇을 내어줄 줄 아는 검둥이의 여유가 한편으로는 기특하게도 여겨졌다.

그 후부터 참새들의 거동을 눈여겨보게 되었다. 먼저 다녀간 참새들이 입소문이라도 퍼뜨렸는지, 삼사십 마리가 족히 될 때도 있었다. 보송보송한 털로 겨우 날기를 시작한 앙증맞은 새끼들도 몇 마리 눈에 띄었다. 어느 새 식솔이 늘어난 거였다. 아들, 손자, 며느리, 대가족이 모두 모여 구수회의를 하는 것 같은 날도 있었다.

하루는 참새들의 호들갑이 예사롭지 않아 내다보니 황조롱이 한 마리가 저만치 공중에서 유유히 선회를 하고 있었다. 참새들은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황조롱이가 갑자기 참새들을 향해 휙, 꽂히듯 날았다. 순간, 참새들은 약속이나 한 것처럼 일제히 날아서 골목 끝에 있는 느티나무 사이로 숨었다. 눈 깜짝할 사이의 일이었다. 저희들끼리만 통하는 암호라도 있나 보다. 참새들이 나무에 몸을 숨기고 머리만 빠끔히 내놓고 보는 동안 황조롱이는 전깃줄에 앉아 거드름을 피우더니 잠시 후 다른 쪽으로 날아갔다. 그때서야 참새들은 ‘후유’, 안도의 숨이라도 쉬는 양 다시 제자리로 날아와 일렬로 앉았다. 이어 위기를 모면한 참새들은 환호작약, 허공을 배경으로 이리저리 떼를 지어 날면서 멋진 풍경을 연출해냈다. 마치 군작도 한 점을 보는 것 같았다.

차츰 참새들의 수가 늘어가면서 앞집 여자도 그들의 행동거지를 눈치챈 듯했다. 그녀는 아침마다 장독대에 떡 부스러기나 찬 밥 등을 놓고 나가기 시작했다. 신바람이 난 건 참새들만이 아니었다. 어떻게 알았는지 비둘기도 오고, 고양이도 와서 배를 불렸다. 고양이는 가끔 위협적인 태도로 새들의 접근을 막기도 했다. 이들이 도심 한복판에서 벌이는 먹이다툼은 안쓰럽지만 아름다운 구석이 있다. 이들에게는 자연의 섭리에 따라 생명을 유지하려는 최소한의 욕구만이 있을 뿐이다.

그러나 이런 정경을 볼 날도 얼마 남지 않았다. 앞 집 여자도, 새들도, 고양이도, 그리고 나도, 이곳을 떠나야 한다. 나라에서 ‘뉴 타운’을 건설한단다.

2

나는 살던 곳을 떠나 Y시로 온 후부터 우울한 날이 많았다. 이사를 하기 전에는 골목만 내려가면 여러 가지 가게가 있고 시장도 그리 멀지 않았다. 대형서점이나 도서관 등도 이삼십 분 안에 닿을 수 있었다. 그러나 Y시는 그런 편리함을 허락하지 않았다. 내가 자주 이용해야 할 곳들은 대부분 멀리 있거나 이용이 불편했다. 내 모든 삶의 근거지였던 서울에서 일을 보려면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도 한나절 이상을 소비해야 했다. 길에서 허비하는 시간이 아까운 것은 물론이고, 마음먹은 대로 일을 보기가 쉽지 않다보니 발이 묶인 채 갇힌 것 같은 심정을 떨쳐버릴 수가 없었다. 편리함도 하나의 자유였다.

마치 옮겨 심은 모종이 새 땅에 뿌리를 내리려 안간힘을 쓰듯, 나는 몸에 익숙했던 습관들을 버리고 낯선 곳에서의 생활에 스스로를 길들여야 했다. 자신을 길들인다는 건 때로 고독을 수반한다. 아파트 좌우로 보이는 산등성이는 고독한 아웃사이더의 등줄기처럼 보였다. 하늘은 맑았지만 마음의 먹장구름은 자연을 즐길 만한 여유를 주지 않았다. 자발적인 선택과는 무관하게 떠나야 했던 곳에 대한 애착과 그로 인한 박탈감이 불편함 못지않게 컸기 때문이다.

서울은 나의 고향이라서 수도首都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그곳에는 나의 유년과 청춘이 있고 그동안 쌓아온 삶의 편린과 추억이 있다. 더구나 이곳으로 오기 전에 내가 살던 집은 내 인생의 결실물이었다. 신혼 초부터 시작해서 열손가락을 다 꼽아야 할 만큼 이사를 다니다가 느지막한 나이에 가진 것을 모두 털어 옥상이 달린 삼층짜리 집을 지으면서 더 이상 타의에 의해 이사를 할 일은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벽돌 한 장, 타일 한 장에도 온 꿈을 담았다. 게다가 많지는 않지만 세를 받는 재미도 쏠쏠했으니 ‘뉴 타운 건설’이라는 정책이 달가울 리 없었다.

굳이 주거의 자유를 들먹이지 않더라도 내가 정성들여 지은 집에서 살 권리는 있어야 했다. 더구나 나는 나라에 집을 지어달라고 부탁한 적도 없다. 그러나 도편추방 같은 다수결의 결과를 받아들여야만 했다. 막상 이사를 하려고보니 조합이라는 곳에서 준 이주비로는 살던 곳 근처로 돌려 앉기에는 어림도 없었다. 결국 골목 사람들 대다수가 그렇게 자신의 의지와는 다르게 보금자리를 내놓고 변두리 혹은 지방으로 떠났다.

요즘 연일 보도되는 재개발 참사현장의 뉴스를 보면 이런저런 생각이 든다. 텔레비전에는 도심의 한 건물 옥상에서 재개발 철거를 반대하는 농성자들을 진압하는 장면이 화면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경찰은 물대포를 쏘고 반대하는 사람들은 화염병을 던졌다. 화염이 치솟고, 검은 연기가 꾸역꾸역 하늘을 덮었다. 거기서 경찰도 죽고 철거민도 죽었다 한다. 잘못이 어디에 있든, 목숨보다 더 가치 있는 것은 없다. 환상일까. 누추한 지상에서 비상하지 못하고 불에 탄 새 몇 마리, 검은 연기 속을 영혼으로 날아간다.

얼마 전에는 내가 살던 곳을 가봤다. 정든 터전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땅은 깊숙이 파인 채 거친 밑바닥을 드러내고 있었다. 그곳에 세워질 아파트, 아파트.

그런데 골목의 그 많던 새들은 모두 어디로 갔을까. 골목의 새들처럼 터전을 잃고 뿔뿔이 흩어져 떠난 ‘올드 타운’의 골목 사람들에게 그 신생의 아파트 숲은 신기루처럼 바라만 보아야할 허상의 공간이 될지도 모른다. 그곳에 몇 명이나 다시 문패를 달 수 있을지는 아직 미지수다. 앞집 여자도, 막다른 골목의 칠 공주집도, 그리고 이사를 하던 날 골목에서 나를 붙들고 언제 다시 보느냐며 끝내 눈물을 보이던 최씨 할머니도 ‘뉴 타운’으로의 귀환은 어려워 보인다.

 

 

2002년 《계간수필》 천료.

3인 공저 《한국여류수필선-동경문예관2008》

현, 충남대 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