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의 가요

 

 

                                                                                       우은주

우연히 라디오를 틀었는데, 오늘은 웬일인지 프로그램 내내 내가 좋아하는 노래가 나왔다. 이문세의 ‘나는 아직 모르잖아요,’ 이상우의 ‘그녀를 만나는 곳 100미터 전’ 등. 신나게 따라 불렀다. 그 노래들이 한참 인기 있었을 시절, 내 모습이 떠오르기도 하고, 그 시절 그 기분이 되기도 하면서 말이다.

그런데 노래가 끝나고 DJ의 멘트가 압권이었다. 금방 들려드린 노래들은 ‘추억의 가요’들이었다는 것이다. 맞다. 그 노래를 들으며, 그 노래들을 따라 부르며, 내가 추억에 잠겼던 것이 사실이니까. 하지만 추억의 노래라고 하면 나이든 사람들이 좋아하는 흘러간 옛 가요─예를들면, ‘눈물 젖은 두만강’ 이라든지, ‘빈대떡 신사’라든지 하는 노래 말이다-라는 개념이 머릿속에 박힌 나로서는, 내가 좋아하는 노래들이 벌써 추억의 가요로 분류된다는 것이 씁쓸했다.

학교 수업 시간 교재에 미국의 영화배우인 마이클 J. 팍스가 한 말이 인용되어 있었다. 나는 학생들이 마이클 J. 팍스에 대해 모를 것이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어떻게 <백 투 더 퓨처>로 유명한 그 배우를 모를 수가 있다는 말인가? 그런데 아무래도 학생들의 눈빛이 이상해서 물어보았다. “여러분, 마이클 J. 팍스가 누군지 알죠?” 그랬더니, 그들은 너무나 당연히 “아뇨.”라고 대답하는 것이 아닌가? “아니, 여러분, <백 투 더 퓨처>몰라요?” 그들은 내가 너무나 좋아해서, 몇 번이고 되풀이해서 봤던 그 영화를 알지 못했다. 알고 보니, 그 영화는 1985년에 나온 영화이고, 그들은 1990년생이었던 것이다. 격세지감. 이럴 때, 바로 격세지감이라는 말을 쓰는 것일까?

흔치 않은 ‘우’씨 성을 가진 나로서는 역사책에 그런 성을 가진 사람이 몇 명 안 나온다는 사실이 못내 아쉬워서, 어린 시절에는 내가 유명한 사람이 되어 역사책에 올라, ‘우’씨 성을 널리 알려볼까 하는 생각을 했을 정도이다. 그런데, 그 몇 명 안 되는 사람 중에 고려 말 시조 시인인 역동 우탁 선생이 있다. 그분의 시조 중에 늙음을 한탄하는 <탄로가>가 있다.

한 손에 막대 잡고 또 한 손에 가시 쥐고

늙는 길 가시로 막고 오는 백발 막대로 치려 하더니

백발이 제 먼저 알고 지름길로 오더라.

그렇다. 내 머리에도 이제 흰 머리카락이 생겼다. 백발이 지름길로 와버린 것이다. 눈도 노안이 되려는지 작은 글씨를 보려고 하면 안경을 벗고 봐야 더 잘 보인다. 내가 그런 나이가 되었다. 어른들께는 송구스러우나, 나도 이제 불혹의 나이가 된 것이다.

하지만 나는 나의 먼 조상인 우탁 선생처럼 <탄로가>를 부르지는 않으련다. 대신 추억의 가요를 최신 가요처럼 열창하며 ‘성숙하기에 더욱 아름다운’ 사십대를 구가하고자 한다. ‘이십대의 풋풋함도 삼십대의 열정도 이제는 어느 정도 가라앉았지만, 이삼십대가 갖지 못한 성숙함과 삶에 대한 관조가 인생을 더욱 깊고 의미 있게 만들어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와 함께.

나 이제, 언뜻언뜻 보이는 흰머리를 염색하는 대신, 당당히 추억의 가요를 부르련다.

 

 

2006년 《계간수필》천료.

현재, 세종대 초빙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