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약돌 삶는 사람

 

 

                                                                                       허세욱

내가 출강하고 있는 여의도의 S문화재단에는 그 창립자 S선생의 서재가 그대로 보전되고 있다. 서재에는 장서와 금석들 사이로 그분이 생전, 세계를 여행하면서 주워 온 조약돌들이 성황당의 그것처럼 쟁반에 쌓여 있다.

살며시 눈여겨보면 모두가 신기하고 소중했다. 주워 온 날짜와 주워온 곳이 적혀 있어서였다. 채집한 사람이라면 오죽하랴! 더구나 조약돌 하나 하나를 따로 달랑 두었다면 하나 하나가 미술품이거나 명품일 수 있겠지.

20년 전, 중국 남경엘 갔었다. 친구가 날 우화대雨花台로 안내했다. 꽃비가 내리는 언덕이라니 얼마나 시 같으랴! 그것은 높이 백 미터쯤의 언덕이었다. 오나라 때부터 오색 난석卵石을 많이 캐냈던 곳이었다. 그것은 영롱한 채색들이어서 마노석 또는 우화석이라 했고, 그 언덕을 우화대라 했다. 그 언덕이 역대의 싸움이 빈번해서 사적지로도 꼽혔다.

거기에도 참새가 지나는 곳간이 있었다. 바로 명승지마다 따라다니는 기념품 가게다. 그런데 나를 홀딱 반하게 하는 풍경이 있었다. 회백색 쟁반이 편종처럼 늘어져 있었다. 거기에 정갈한 물이 저마다 담겼고, 쟁반마다 낙화의 채색으로 영롱한 조약돌이 동그마니 앉아 있었다. 더러 예쁜 신록의 잎새 하나씩 숙녀의 손수건처럼 옆에 놓여 있었다. 이게 바로 우화석이로군! 그 주제가 쟁반에 반사되고 물살에 굴절되어 훨씬 크게 보였다. 그것은 창공만리에 사라지는 기러기 한 마리나 만경창파에 가물거리는 황포 돛대, 어쩌면 코발트빛 가을 하늘에 혼자서 떨고 있는 까치밥 같은 것일지도 모른다.

물고기라야 물을 만나면 제 세상인줄 알았다. 적어도 수만 년의 주검으로 생각했던 돌의 파편이 저 투명한 물 속에서 저토록 살아날 줄이야! 아니 저 우화석 말고 장미꽃보다 더 진한 계혈鷄血석 한 송이 저 청수에 던져두면 얼마나 선연할까? 더구나 우리나라 청자 쟁반에 은행잎 한 장 띄우고 꽃비 내리는 우화석 한 점, 버린듯 놓아두면 정녕 한 폭의 문인화가 아닐까?

옛날 도사들에게 자백석煮白石한 기록들이 더러 보였다. 신선의 설화는 물론 시에도 자주 나온다. 산중에서 가시나무 땔감을 주워다가 까만 질그릇에 하얀 돌 한 주먹 넣고 세월아 네월아 끓여서 그 돌 삶은 물로 양식을 삼았다는 이야기다. 하긴 내 어렸을 적, 주린 배를 달래거나 잘못 걸린 고뿔을 쫓으러 백비탕을 마신 일이 있었다. 그래서 허기를 견디었고 감쪽같이 감기를 눌렀었다. 그때 도사들이 흰 돌을 삶아 먹었다는 이야기는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

백비탕 맛은 지금도 내 혀끝에 남아 있다. 어려서부터 커피에 아이스크림, 조미료와 소스 등에 혀를 담그었던 사람이면 벌써 우리들이 타고난 침샘이 달라질지도 몰랐다. 마치 너무 사랑하거나 너무 미워하면 가슴이 닳아지듯 침샘이 무디어질 것이 뻔한 일이다.

소박하고 담박한 사람이라야 담박한 맛을 안다. 소素란 물감 한 방울 들이지 않은 생명주를, 박朴이란 칼질 대패질 전혀 손대지 않은 질박한 원목을, 담淡이란 소금 하나 넣지 않은 심심한 맛을 각각 일컫는다. 모두가 타고난 세포 타고난 본질 그대로다. 그런 세포와 본질이 수만년 입을 다물어왔던 돌의 맛과 침묵의 체질을 음미하고 들을 수 있을 것이다.

중국에도 김정호가 있었다. 중국 전 국토의 험산·악토를 30여 년이나 실지 탐험했던 중국 제일의 지리학자·탐험가·수필가였던 서하객徐霞客(1586~1641)이란 사람이다. 그는 놀랍게도 대지주의 아들이었다. 그럼에도 따뜻하고 넉넉한 집을 마다하고 비바람을 자청했다. 그런데 습벽이 있었다. 떠돌며 괴석怪石 하나를 침상 앞에 두고 그걸 무시로 어루만졌다. 우리 어머니의 정화수처럼.

하객은 입을 꼭 다물고 있는 그 차가운 침묵을 만지며 그의 끝나지 않는 방랑을 묻고 그에 따르는 불안과 노독을 달랬는지 모른다. 그리고 고향과 가족을 묻지 않았다고 한다. 돌을 믿고 돌을 물으며 한평생 산 것이다.

조약돌 한 개·괴석 한 점을 두고 누구는 보면서 열락을, 누구는 삶아 마시며 신선을, 누구는 만지며 우주를 캐어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