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이 빛나는 밤에

 

 

                                                                                        오세윤

“아녜요."

마주앉아 아침을 먹는 자리에서 손녀가 하는 말을 두 번씩이나 못 알아듣고 거듭 되묻자 아이가 답답하다는 듯 얼굴을 찌푸리며 아예 말 자체를 부정해버리고 만다. 알토에 가까운 저음일 뿐 발음이 분명한 아이의 말을 왜 이리 자주 못 알아듣는 걸까.

무슨 버릇이 그러냐며 나무라려다 근자에 들어 모임에서도 종종 남의 말을 놓치던 일이 떠올라 멈칫 입을 다물고 말았다. 청력에 문제가 생긴 건 확실해 보였다. 눈이야 원래부터 좋지 않았으니 그러려니 여겨왔지만 귀마저 어두워지는가 하여 적지 아니 당황스러웠다.

40 중반부터 해마다 돋보기 도수를 올릴 만큼 빠르게 감퇴하던 시력과는 달리 청력은 50대 후반까지도 여전히 멀쩡해 진료에 아무런 불편을 느끼지 않았었다. 하지만 60이 넘자 상황이 변했다. 병적 심장박동과 폐 내부의 이상 호흡음 등 미세한 소리들이 명확하게 잡히지 않는 불유쾌한 상황이 모르는 새 늘어났다. 한동안은 까닭을 모르는 채 고집스레 청진기만을 탓했다. 하지만 좋다는 청진기를 구해 써 봐도 상태는 나아지지 않았다. 그러구러 두어 해 더 진료를 계속했지만 스스로도 불만스러웠고 환자들에게도 죄스러웠다. 손을 놓았다. 최선이지 못하는 것, 밖으로는 득죄요 스스로에게는 형벌이었다.

퇴근하면 일상처럼 오디오를 틀어놓던 일이 뜸하게 된 것도 대략 그 무렵부터였다. 가슴바닥까지 울리며 젖어들던 음악이 점차 쇄골근처에서 머물다 아예 귓바퀴에서만 맴돌게 되면서 음악에 대한 흥취도 시나브로 줄었다.

한창 오디오에 빠져 지내던 80년대 중반에 읽었던, 어느 영국 파견 기자가 음악잡지에 기고했던 글이 충격처럼 되떠올랐다.

그때나 지금이나 오디오마니아들은 대다수 현대판 신기종보다는 오래된 중고품 빈티지를 더 선호하는 건 누구나 아는 사실. 그 또한 같아 영국에 도착하자마자 벼르던 기종의 오디오를 구하느라 매일처럼 벼룩시장 발행 잡지를 빼놓지 않고 뒤적였다고 했다. 그러기 두어 달, 드디어 찾던 기종의 판매광고를 발견한 그는 곧바로 차를 몰아 부랴부랴 그곳으로 달려갔다고 했다. 4시간여의 운전으로 찾아간 교외의 아담한 단층가옥, 72세의 은퇴한 노교수 부부를 따라 들어가 오디오를 마주하는 순간 그는 가슴이 그냥 터져나가는 줄만 알았다고 그때의 감격을 과장스레 묘사하고 있었다. 나무랄 데 없는 음향을 대하면서 기자는 깊은 의혹에 빠져들었다고 썼다. 왜 팔려하는지. 시·청각적으로 완벽한 기기를 어떻게 손에서 놓을 수가 있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며, 더구나 전혀 돈이 궁해보이지도 않는 사람이 왜 그런 귀한 물건을 처분하려 하는지 몹시 의아했다고 썼다.

기자의 속을 꿰뚫어 본 듯 웃으며 교수가 한 말을 기자는 고스란히 그의 글에 옮겨 기술해놓고 있었다.

“2, 3년 전부터 저음이 가슴까지 오질 않아요. 청력이 떨어진 거죠. 듣는 즐거움이 하루 다르게 줄어요. 나야 그런대로 듣는다지만 기계한테 미안해요. 자기는 최선을 다하는데 그걸 온전하게 느껴주질 못하니 죄를 짓는 기분이라오. 제대로 들어줄 사람을 찾아 떠나보내는 것이 도리일 것 같아 임자를 찾고 있던 중이지요.”

놓아야할 때를 아는 노교수의 순명하는 삶의 자세와 지혜가 고개를 끄덕이게 했지만 그것이 뒷날 나의 경우가 될 줄 그때는 미처 예상치를 못했으니.

1950년대 후반이던 고교 시절, 청계천변 좌판상점에서 부품을 구입해 만든 광석라디오로 시작한 나의 음악듣기. 생상스의 첼로독주곡이 시그널뮤직으로 나오던 <고요한 밤에>를 시작으로 <한밤의 음악편지> <밤을 잊은 그대에게>, <별이 빛나는 밤에>를 빠짐없이 청취하던 오롯한 밤들. 돌체로 디-쉐네로 르네상스로, 미 문화원의 목요음악회로, 음악에 푹 빠져 음생음사音生音死하는, 재시험도 겁내지 않는 용감무쌍한 벗들과 어울려 지내던 대학 시절. 단지 오디오시스템을 구하고자하는 욕심에서 자원한 월남전 파병근무. 전세방 얻을 돈이 모자라 눈물로 처분한 전축 파이오니어. 개원하여 여유가 생기면서 시작된 업그레이드 열풍, 켄-우드로 콰-드로, JBL로…. 정신 나간 사람이란 핀잔도 아랑곳없이 온통 혼을 빼앗겼던 광기의 바꿈질. 탄노이 스피커 유닛(몸체)을 구해 케이스를 짜며 맛보던 짜릿한 흥분과 기대와 실망들. 명동으로 충무로로 회현상가로 오리지널 LP판을 구해 쏘다닌 그 많은 날들의 순례. 지금의 진공관시스템으로 자족하기까지 참 오래도 나는, 숨가쁘게 휘돌았다.

산티아고 800km 신의 길을, 벗은 영혼으로가 아닌, 세상적으로 걷는 사람처럼 나도 도전적이고 과시적이고 현학적으로 오디오 순례의 길을 걸어오지는 않았던가.

이곳 작업실을 마련하여 오기 서너 해 전부터 나는 20년 가까이 애착을 갖고 지녀오던 지금의 오디오 시스템을 단순한 세트로 다운 그레이드 해야겠다고 생각은 하고 있었다. 오늘 아침 드디어, 미적이며 미뤄오던 나의 미련에 아이가 금을 그었다.

업무가 시작되는 시간을 기다려 국제전자상가내 ‘금강 전자’ 고 사장에게 전화를 걸어 뜻을 전했다. 오랜 단골의 그는 신뢰를 바탕으로 하는, 거의 가족같이 믿고 지내는 사이로 임의롭게 속을 내보여도 좋은 귀한 지음이었다.

저녁 늦게, 고 사장이 아주 간단한 앰프(증폭기) 하나를 들고 작업실을 찾아왔다. 턴테이블과 CD플레이어만을 구동시킬 수 있는 통합형 중고 저가품, 써라운드 시스템의 후면 음향용으로 쓰던 작은 스피커에 물렸더니 소리가 탱탱하긴 해도 청력이 저하된 귀에는 오히려 제창으로 맞았다. 조심스럽게 내 표정을 살피던 고 사장이 그 정도면 지니고 쓸 만할 거라고, 떠날 때에도 미련 따위 남을 것도 없을 거라며 헤무르게 웃는다. 볼륨을 줄이고 마주앉아 맥주를 마시며 그에게 말했다. 그래도 욕심을 아주 줄이지는 못하겠노라고, 괜찮은 우퍼(저음스피커) 하나 마련해 곁들여 들었으면 좋겠다고 미련을 부렸다. 여름밤의 별빛처럼, 봄밤의 숨결처럼 온몸을 감싸안는 폭 너른 음 하나가 더 있었으면 좋겠다고 그에게 조르듯 부탁했다.

기기가 간결타하여 어찌 음악이 달라지랴. 청력이 약해졌다 하여 느낌마저 그러할까. 귀가 아니면 가슴으로 듣는 게 참음악인 것을. <사계>의 ‘겨울’을 들으면서, 남은 날들도 저렇듯 간결하게, 음악처럼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조용하고 부드럽게 그리고 감미롭게…. 눈에서는 사라졌어도 밤하늘 가득, 별들은 여전히 창공에서 빛나고 있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