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존엄사

 

 

                                                                                          심규호

사실 이른 아침 비행기로 서울로 올라가 모 대학 앞 작은 카페에서 만날 때만 해도 나는 정말 희망에 부풀어 있었다. 당신이 책을 좋아하여 시내에 나갈 때마다 한두 권씩 사서 모은 책이라고 했다. 그렇게 평생 모은 책 5천여 권을 무상으로 우리 대학 도서관에 기증한다고 하니, 이 어찌 흥분되는 일이 아니겠는가?

그렇지 않아도 도서관의 장서를 늘려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나부터 솔선수범한다는 생각에 집에 있는 책 가운데 일부를 도서관에 보내고, 전체 교직원에게 도서 기증을 요청하는 공문을 보내기도 했다. 그러던 차에 제주 출신으로 서울에 사는 모씨가 소장하고 있는 책 전체를 기증할 곳을 찾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 말을 들은 후 즉시 전화를 걸어 의사를 확인하고 직접 서울로 올라가 만났다. 그 많은 책을 서울에서 제주로 가지고 오려면 꽤나 힘들 텐데. 걱정은 다행히 기우로 끝났다. 연전에 이사를 하면서 대부분의 책을 이미 제주 모친의 집으로 옮겨놨다는 것이었다. 아하, 1, 2백 권도 아니고 수천 권을 그냥 가져가기만 하면 된다니, 이 어찌 즐겁지 아니한가?

도서관장에게 연락하여 소식을 전하고 서고를 정리해 달라고 부탁했다. 이제 책이 들어오면 정리해서 버릴 것은 버리고 거둘 것은 거두면 그뿐이리라. 도서관 담당직원이 갑자기 많은 책을 기증받으면 어떻게 정리하고 어디에 둘 것이냐고 투덜거린다는 이야기를 듣긴 했지만 전혀 개의치 않았다. 나에게 중요한 것은 책을, 그것도 수천 권의 책을 한꺼번에 기증받게 되었다는 사실뿐이었다.

알려준 전화번호로 그분 모친에게 연락을 했다.

“아무 때나 왕 가져 갑서.”

마음은 당장 가서 가져오고 싶지만 사전에 나름의 준비를 하여 예를 갖추는 것이 필요했다. 마침 개교기념일이 얼마 남지 않은지라 그날 기증자에게 감사패를 전달하고 기증 도서를 위한 별도의 공간을 마련하기로 했다.

마침내 책을 만나러 가는 날. 화창한 햇살에 기분이 좋아 콧노래가 절로 나왔다. 도착해서 보니, 제주의 전형적인 집 형태인 안거리(안채)와 밖거리(바깥채)로 이루어진 소담한 주택이었다. 모친께서 직접 나와 우리를 밖거리 쪽으로 안내하셨다.

어? 사람이 살고 있네. 뭔가 불길한 조짐.

조그마한 집안에 그것도 다른 방은 세를 주었다고 하던데, 어떻게 수천 권의 책이 들어갈 수 있지? 함께 간 염 과장은 이미 알겠다는 듯 실망하는 눈치가 역력했다. 서둘러 들어가 방문을 열고 바라보았다.

푸대(부대)마다 가득한 책들, 꽁꽁 묶여 숨죽이고 있는 책들, 장판 아래로부터 전해오는 습기의 눅눅함을 그대로 전하고 있는 책들, 몇 해에 걸친 세월의 무게에 지쳐있는 책들, 서생원의 배설물 냄새에 절어 있는 책들.

“도저히 안 될 것 같습니다.”

“그래도 일단 가지고 갑시다. 정리해서 버릴 것은 버리고 혹시 알아요. 귀중본이 나올지?”

“알겠습니다. 오늘은 일단 돌아가시지요. 남은 일은 제가 알아서 하겠습니다.”

실망만 잔뜩 안고 돌아오는 길. 화창한 햇살이 참으로 거추장스러웠다.

그 다음날 과장에게 전화가 왔다. 책을 모두 옮겼는데 아무래도 폐지로 처분하는 것이 좋겠다는 말이었다. 일단 모아두라고 말한 후 내가 직접 가보겠다고 말했다.

빌라 주차장에 차곡차곡 쌓여 있는 책들. 부대를 찢고 오랜 결박을 풀었다. 투두둑 떨어지는 책들. 이미 생기를 잃고 쇠약해진 책들. 오랜 세월을 지긋이 견뎌온 듯 가만히 눈 감고 있는 책들. 누렇게 변색된 모습에 이름조차 낯선 책들. 흘러간 영화의 제목을 보는 것 같다. 어색한 맞춤법, 그러나 한 시대를 견고하게 반영하고 있는 제목들. 저자의 사인, 책갈피에서 떨어지는 마른 잎사귀와 쪽지, 행간에 적힌 생각의 단상. 그리고 켜켜이 쌓인 먼지와 곰팡이 냄새.

이제 마음을 정할 때가 되었다. 한두 권이라도 챙길 것인가? 아니면 그대로 버릴 것인가? 비가 부슬부슬 내리기 시작했다. 빨리 결정하라는 듯이. 일단 도서관으로 가져가는 것은 포기하기로 했다. 너무 낡은 데다 요즘 학생들에게 어울리지 않는 책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도서관에 아무도 보지 않은 책이 이미 차고 넘치는데 굳이 가져갈 필요가 있겠는가? 제일 먼저 할 일은 기증자에게 연락을 하는 일이었다. 전화를 걸어 상황을 이야기했다. 아주 조심스럽게 혹시라도 마음 상하실까 봐. 일단 자신의 손을 떠난 것이니 마음대로 처리하라고 한다. 그렇다면 헌책방에 연락하면 어떨까? 시내에 유일한 헌책방 주인에게 전화를 걸어 직접 와서 골라가라고 했다. 나머지는 책을 옮기는 데 도와준 사람에게 주기로 했다. 고물상에 넘기면 폐지 값을 받을 수 있다고 했다.

빗방울이 조금씩 거세진다. 주차장 벽면에 기대 서 있는 책들. 한때 화려했던 시절의 품위와 격조는 어디로 갔는가? 시대를 대변하고 포효하던 그 힘찬 목소리는 어디에서도 들리지 않았다. 애절한 사랑, 이별의 아픔을 쓰다듬는 보드라운 손길도 느낄 수 없었다. 단지 허름한 건물 모퉁이에서 마지막 거친 숨을 쉬고 있는 모습에 마음이 저릴 뿐이다. 아쉽고 억울하고 화가 치밀어 오른다.

책은 남기기 위함이다. 한 시대를 살다간 사람들의 삶을 그대로 전하기 위함이다. 책을 통해 사람들은 위안과 용기를 얻고 희망을 가진다. 책은 그저 책일 뿐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책이 아니라 그 안에 담긴 내용이라고 말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육신이 없는 정신이 없는 것처럼 형식이 없는 내용이 어디에 있는가? 하여 책은 그 자체로 귀하고 중하다. 내용과 형식 이전에 책이란 존재의 의미가 깊고 넓다는 뜻이다. 책은 단순히 종이를 묶어놓은 것이거나 어지럽게 뒤섞인 활자의 모음이 아니다. 그것은 누군가에 의해 창조된 새로운 생명이다. 생명은 또 다른 생명을 낳고, 또 다시 생명으로 이어진다. 책은 생명으로 이어져 영원히 썩지 않는다. 그러나 생명이기에 사라짐을 면할 수 없다. 모든 생명은 생겨남으로써 사라지고, 태어남과 동시에 사라짐을 예정하지 않던가. 당연히 어떻게 태어나 어떻게 살다가 어떻게 사라질 것이냐가 중요하다. 문득 존엄사가 생각난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자신의 생명을 다음 생명에게 이어주고 이제 사라지게 될 책에게 우리가 해줄 수 있는 마지막 예우가 바로 존엄사 아닐까? 뜨겁게 타오르던 젊은 날의 열정과 이상에 만족하며 슬며시 웃음짓고 곱게 눕도록 해주는 것이 그에 대한 고마움의 표시가 아닐까? 어둡고 침침한 곳, 죽음조차 선택할 수 없는 막힌 공간에서 수족마저 꽁꽁 묶인 채 밭은 숨을 쉬게 하는 것보다 차라리 햇살 가득한 어느 날 너른 공간에서 그 스스로 불타오르게 하는 것이 옳지 않을까? 팽개쳐지거나 버려진 채로 자신의 의미조차 잃어버린 몰골로 서러움을 당하느니 차라리 숨쉬기를 중지하고 예전 꿈만 같던 시절로 되돌아가게 하는 것이 옳지 않겠는가? 형식이나 방법이야 어떤 것이든 생명으로서 책은 존엄하게 태어나 존엄하게 죽을 이유와 권리가 있다. 책의 존엄사. 책의 죽음을 보장하라!

 

 

《계간수필》로 등단(99년). 제주 포럼 대표.

제주 산업정보대학교 중어과 교수 겸 동대학 총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