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다는 것

 

 

                                                                                            이정하

저녁 아홉시, 강남고속터미널 매표소에서 진주로 가는 버스표를 사기 위해 줄을 섰다. “어머! 표가 매진이라구요?” 내 앞에 선 여자가 당황해 하는데, 심야밖에 없다는 매표원의 말소리가 내게 크게 들렸다. 아뿔사, 오늘이 일요일이라는 생각을, 낮에는 분명했었는데….

요즈음 들어 부쩍 늘어난 시간 불감증을 혼자 투덜거리며 거리로 나왔다. 아들아이가 있는 집으로 되돌아가자니 번거롭기 그지없다. 주변을 배회하다 이것도 놓치면 안 되겠다 싶어 매표소로 뛰어갔다. “혼자 앉는 자리로 주세요.” 14번 출구 앞 대합실 간이의자에 앉았다. 아들애가 다 읽었다며 건네준 책을 꺼냈다. 《눈 먼 자들의 도시》 지금 극장가에서 한창 상영 중인 영화라 호기심을 가졌던 작품이었는데, 시간 죽이기로는 안성맞춤이었다.

대합실 문이 열릴 때마다 스산한 바람이 단추 눈을 비집고 옷 속으로 파고든다. 소매 끝자락을 끌어내리며 《눈 먼 자들의 도시》를 절반쯤 읽었을 때, 귀에 익숙지 않은 말들이 바쁘게 들렸다. 고개를 들었다. 흑인여자 한 명이 차표를 개찰하는 남자 앞에서 뭔가를 열심히 설명하고 있었다.

듣기에 티켓을 잃어버렸다고 했다. 같이 온 남자 친구가 티켓을 잃어버렸는데 다시 살 돈이 없어 같이 갈 수 없다며, 외국인 특유의 몸동작을 크게 취하며 떠들었다. 그 여자를 보았다. 까만 얼굴에 수십 갈래로 가늘게 땋은 머리 모양은 발랄하면서도 현란했다. 언젠가 T.V에 이태원의 어느 미용실에서 저런 머리를 만들어주는 것을 비춰주었는데 가격이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비쌌다.

매표원은 나도 어쩔 수 없다며 ‘아이 돈 노’를 되풀이했다. 책을 덮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자정이 가까워지고 있었다.

그때 웬 젊은 남자가 나섰다. “저 사람들을 같이 가게 해 줘야 하지 않겠어요. 우리말을 전혀 모르는 거 같은데…. 내 것을 주겠소.” 남자는 버스표를 여자에게 내밀었다. 순간이었다. 여자는 뺏다시피 표를 받아들더니 고맙다는 인사는 하지 않기로 작정한 사람같이 어디론가 뛰어가 버렸다. 남자와 그 장면을 지켜본 사람들은 당혹감을 수습 못한 채 어리둥절해 있는데, 흑인여자가 어디에다가 숨겨둔 물건을 꺼내온 것처럼, 남자의 손을 잡고 뛰어왔다. 사람들이 웅성거리자 표를 준 젊은 남자는 멋쩍은 듯 그 자리를 떠나버렸다.

흑인 남자와 여자는 통로를 사이에 두고 내 옆 좌석에 앉았다. 그들은 나를 힐끗 한번 보더니, 킬킬거렸다. 못 본 척 눈을 감고 잠을 청했다. 남자가 무슨 게임기를 꺼내어 두드리며 짧게 짧게 쾌재를 지르면서, 더 세게 자판을 두드렸다. 신경이 곤두서면서 청각을 괴롭혔다. 좀 불편한 일을 겪어도, 참는 것을 미덕으로 살아온 우리의 정서를 저들이 이용하는 걸까? 살아온 환경이 다르다지만, 어찌 그럴 수 있단 말인가.

안전벨트를 풀고 일어나서 청년의 어깨를 흔들었다. “좀 조용히 갈 수 없어요? 다들 자고 있잖아요.” 그러자 여기저기서 불평하는 소리가 들렸다.

새벽녘에 집에 도착한 나는, 남편에게 차에서 만났던 흑인 남녀 이야기를 하는데 참았던 화가 스멀스멀 올라왔다.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남편이 허허 웃으며 조금이라도 자야 출근하지 않겠냐며 그만 하란다.

내가 흥분했나? 괜한 남의 일에…. 자리에 누웠다.

차표를 건네준 젊은 남자가 떠올랐다. 내가 보기에 그는 차표를 스스럼없이 선사할 만큼의 여유 있는 사람은 아닌 거 같았다. 겨우 학생티를 벗어난 삼십대 초반의 직장을 가졌을까 말까 한 사람이었다. 그는 무슨 마음으로 그들에게 티켓을 주었을까. 그 늦은 시각, 엉뚱하게도 타인에게 행선지를 주어버린 그는 괜한 일을 했다고 후회하고 있지는 않을까. 마주치는 것들이 어떠하든, 자신의 불편함을 내색하지 않고, 내가 가진 것을 내어줄 줄 아는 사람, 그는 진정으로 타인에게 관심을 가져준 아름다운 사람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이용당하는 떨떠름한 감정을 나는 떨칠 수가 없었다.

이젠 나라 안 어디를 가든 피부색이 다른 외국인들을 쉽게 만나게 된다. 시대가 빠르게 변화하고 있는 것이다. 그만큼 다른 세계의 물결이 생활 깊숙한 곳까지 파고들면서 고유한 우리 문화와 정서의 경계가 흔들리고 있다. 어딘가 이질적인 사람들, 우리는 대체로 그들에게 호의적이고 따스한 시선이다. 어쩌면 그들에게 다가가는 우리들의 그러한 감성적 측은지심은 맹목적인 건지도 모른다. 그것이 오히려 비웃음을 사는 것은 아닐까. 게임기를 마음껏 두드리며 쾌재를 지르게 하는, 눈인사도 하지 않은 그 흑인 여자는 그 남자가 건네준 차표의 의미를 한국인이 자기네들 앞에서 ‘체’하는 우월감의 발로로 봤을까?

그들이 우리와 더불어 살기 위해 이 땅에 왔다면 이 땅에 유구히 흘러온 가치관을 몸으로 익혀야 할 것이다. 그러기엔 얼마나 긴 시간이 필요할는지 모르지만, 그 또한 우리가 짊어져야 할 짐인 셈이다. 도와줄 필요가 없는 사람을 도와준다는 것은, 도와준다는 이름으로 인간의 심성에 혼탁을 뿌리는 일이 될밖에 없다. 이타에서 얻는 기쁨이란 진정 도와줄 가치가 있는 사람에게서만 가능하다.

 

 

《계간수필》로 등단(2003년). 진주문협 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