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보 서른

 

 

                                                                                         이종화

이봐, 어서 실토하란 말이야! 게임이 시작됐다. 떨고 있는 바보 하나를 다그친다. 죄를 시인하면 형량을 줄여주지. 이게 마지막 기회야. 다시 말해두지만, 확실한 증좌도 있어. 같이 끌려온 그 녀석도 결국 자백했다고. 이대로라면 너 혼자 다 뒤집어쓰고 말겠지. 그 놈 몫까지. 어디 잘 생각해 봐.

증거? 그런 게 있겠어. 저쪽 방 친구가 입을 열었다는 말도 아마 거짓일 게다. 순순히 자백을 받아낸 뒤 적당히 벌주려는 속셈이거늘. 허나, 눈앞의 이익에 목맨 바보들은 대개 잘못을 인정하기 마련이었다. 죄가 없어도. 함께 입을 다묾이 최선이건만, 두 바보는 그렇게 옥(獄)에 갇히고 만다. 용의자 아닌 죄수로.

게이머(gamer)의 맞추기식 수사. 그 안에서 잘도 놀아나는 게임 속 캐릭터들은, 고양이 목에 방울 하나 달지 못한 채 부질없이 회의만 되풀이하는 생쥐들의 우유부단함, 악동 한 명에 학교 전체가 술렁여도 누구 하나 선뜻 나서지 못하는 우리 교실의 나약함을, 꼭 닮았다. 케냐의 코끼리 수가 줄어들고 이 지구별이 온실처럼 변하는 건, 협력과 외면 중 보다 손쉬운 패를 내려놓은 탓이다. 그리고 저 외면이 배신이 되는 순간, 어렵사리 이룬 담합은 산산이 부서지고 웃음의 포커페이스는 가면을 벗는다. 공포탄이 실탄으로 바뀌면, 전쟁은 시작된다.

이 어정쩡한 동행은, 내 안에도 있다. 두 개의 속마음. 남의 아픔이 꼭 아프지만은 않고, 널 사랑하지만 나보다 소중할 순 없는 우린, 늘 빛 속의 그늘을 보며 차마 선택이란 걸 한다. 아니라 하겠지만 좀 비겁한 선택을 하고야 마는 우린, 조물주가 고안한 생이란 게임의 몇 단계쯤 와있는 걸까. 사람의 마음은 마트료시카(matryoshka). 친숙한 나를 열면, 안엔 전혀 다른 내가 있다. 그리고 그 속의 또 다른 나. 아프지만, 그 모두가 나다. 그래서 나와 너. 내 안의 내가 너라고 부르는, 그 ‘또 다른 나’ 사이에 벌어지는 이 게임을, 난 삶이라 적는다.

서른은 ‘너’를 껴안는 나이. 너의 눈으로 너의 너를 한 번쯤 돌아보는 나이. 맑은 샘 위로 비친 골룸의 얼굴에 소스라치던 스미골이 되어, 실망스런 내 모습을 보아야만 하고 또 받아들여야 하는 나이. 그런 널 외면하는 순간, 우린 딜레마에 빠진다. 저 죄수들처럼. 어쩌다 이룬 아주 작은 성취에 커다란 의미를 부여하고, 타인의 업적엔 서슴없이 악플을 다는가 하면, 종종 뜻 없이 용감해지고 만다. 한 몸뚱이를 썼지만, 서로 인정하지 않았던 지킬과 하이드는 자살로, 게임에서 로그아웃되었다. 하나가 삭제(delete)되면 다른 하나도 사라진다. 너와 나는 복제된 하나니까.

서른이다. 한창 게임 중. 심문은 계속된다. 꿈과 현실, 난 꿈을 꾸고 있었다. 생각 좀 해 봤어? 게이머가 묻는다. 저쪽 방에 있을 또 다른 난 지금쯤 뭘 하고 있을까. 설마 자백을? 아니야. 믿어야지. 협력과 배신. 두 개의 카드 중 어느 것을 고를까. 에잇, 모르겠다. “저도 했어요.” 그러자, 그의 입가엔 엷은 미소가 퍼진다. 아차, 덫에 걸렸다. 저어, 이번 판은 연습 아닌가요? 글쎄다. 아, 나는 바보. 바보 서른이다.

 

 

《계간수필》로 등단(2006년).

한국산업은행 근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