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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침

 

                                                                                         김원길

목조각을 하기 위해 나무를 사러 나섰다. 무엇을 새길 것인가는 결정했으니, 재료만 구하면 되었다. 느릅나무나 벚나무를 염두에 두고 목재상을 찾아갔다. 그는 제주산 녹나무를 권했다.

“녹나무요?” 내가 물었다.

“이걸 보세요. 나뭇결이 맑고 고와 가구나 악기의 소재로 많이 쓰이지요. 게다가 독특한 향기가 불면증을 치료한다는 소문이 있습니다. 그래서 목침의 재료로도 쓰이지요.”

내 어릴 적, 목침 하나가 있었다. 모서리가 닳고, 때 묻은 것이었다. 머슴방이었다. 서까래엔 해묵은 볏단 같은 누리끼리한 메주들이 달려 있고, 송진을 태운 방은 그을음투성이였다. 방구석에 던져진 구멍난 골무처럼, 옛 절터에 뒹구는 기왓장처럼 아무도 눈여겨보지 않던 목침이었다. 담배냄새, 쇠죽냄새, 홀아비 냄새가 나뭇결 속에 깊숙이 스며있었다.

어쩌다, 나는 머슴방에 들어갔다. 머슴은 손바닥에 퉤퉤 침을 뱉으며 새끼줄을 꼬았고, 나는 목침을 가지고 놀았다. 이모저모 살피기도 하고, 눕히거나 세워보기도 하면서.

머릿속에 숲이 떠올랐다. 맑은 냇물이 조잘거리고, 실바람 부는 잔 메. 흰 구름 하늘에 둥실 떠가고, 사슴의 무리 한가로이 노니는 풀벌에 살았을 게다. 어쩌다 목침이 되었지만 이 작은 나무토막 속에는 따뜻한 피와 영혼이 살아 있는 것이다.

거기서 목침은 밤마다 머슴을 지켰다. 머슴의 들숨과 날숨을 살피며, 혼곤히 잠든 그를 측은하게 바라보았다. 마을의 모든 소리에도 귀를 기울였다. 바람이 봉숭아꽃 잎을 스치는 소리, 옆집 정길이네 늙은 말이 코를 벌렁거리는 소리, 두 집 건너 체쟁이 영감의 가쁜 숨소리. 강아지의 하품소리며 감나무 위로 기어오르는 도둑고양이의 조심스런 발걸음. 이 모든 소리를 들으며 목침은 누가 아픈지, 누가 악몽에 시달리는지 가슴앓이를 하였다.

시골 장터의 옛집이었다. 땅거미가 질 때면 부랑자가 우리 집을 찾아오곤 했다. 대체로 눈은 초점을 잃었고, 목소리는 두려움으로 떨고 있었다. 떠돌이는 보리밥 한 덩이와 김치 조각을 게눈 감추듯이 먹어치웠다. 고향은 어딘가요. 나이는 몇이고 처자식은 있는가요. 머슴이 묻곤 했다. 고향도 가족도 없습니다. 구름처럼 바람처럼 팔도를 떠도는 나그네지요, 딴청을 부리는 떠돌이도 있었다.

그런 밤, 목침은 온몸으로 떠돌이의 머리를 괴어 주었다. 나그네의 설움은 바다처럼 깊고, 마음은 바위처럼 무거웠을 것이다. 땡전 한 푼도 없이, 배운 기술도 없이 무연히 떠도는 부평초. 장끼가 우는 산골을 지나며 배고픔을 못 이겨 풋살구를 깨물진 않았을까. 가을날 우수수 지는 낙엽을 바라보며 산고로 죽은 아내 생각에 목이 메진 않았을까. 그의 호흡은 거칠고, 괜스레 맥박이 뛰었다. 푸욱 한숨을 쉬거나, 각혈을 했다. 하룻밤 짧은 인연이지만 목침은 떠돌이의 신세타령을 들어주어야 했다. 눈물을 훔쳐 주거나, 등을 토닥여 주어도 좋았다. 꿈길 따라가며 그가 냇물을 건너면 징검다리가 되어주고, 강둑에 나서면 나룻배가 되어 주는 것이다. ‘아침엔 가벼운 발걸음으로 가시오. 세상에 흐르지 않는 것이 있나요. 설움도 아픔도 강물처럼 흘러가는 것이지요.’ 가만히 속삭이면 떠돌이는 어린 새처럼 새근거리는 것이었다.

팔베개를 하고 누워 담배연기 자욱하던 머슴방을 떠올린다. 거기 행장을 풀었던 무지렁이들과 목침을 생각한다. 목침은 눈물로 얼룩진 편짓장, 땀에 절인 풍찬노숙의 손수건이었다. 그걸 펼치면 그들의 한숨과 서러움이 물씬거렸다. 목침은 가고 없지만 귓전에는 그들의 후회와 탄식이 저벅거리고, 그리움과 눈물이 스멀거린다. 고갯마루를 넘는 바람도 육자배기 한 자락을 울리고 있다.